멍군은 산 중턱에 앉아있었다.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멍군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멍군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다시 그 날의 그 표정이 떠올랐다. 윤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부터 샘솟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특별히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윤의 눈은 늘 단단했다. 멍군은 윤이 나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농담이든 뭐든 결혼 상대자로서 까지 거론하는 것이 듣기 불편했다. 멍군은 한 번도 나나가 다른 남자의 여자로 살 거라 생각해보지 않았다. 반면 자신과 가정을 꾸리고, 서로를 꼭 닮은 아이들 손을 잡은 채 여행을 가고, 백발이 되어서도 공원 벤치나 강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상상을 했다. 멍군이 나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부부로 만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나는 당시 연극반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멍군은 나나의 연기를 보며 나나가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 나나는 왠지 연극보다는 영화가 더 어울렸다. 멍군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멍군의 서랍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공책들이 쌓여갔다. 어느 날 나나가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고 했을 때, 서랍 속의 주인공은 나나가 될 수 없음을 멍군은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멍군은 그것 때문에 시나리오 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멍군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나나와 공유하려고 했다. 먹을 것이든, 가족이든, 새롭게 사귄 친구든, 삶 속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까지. 멍군이 딱 한 가지 나나와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돈이었다. 나눠 가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눠 가질 것이 없어서였다. 멍군은 육신의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를 좇았다. 다행인 것은 나나 역시 마음의 풍요를 좇는 쪽이었다는 것이다. 그 점은 둘의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주는 끈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나나가 재료를 살 돈이 없어 당분간 작품은 쉬고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말할 때마다 멍군은 그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어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런 나나에게 변사장과 같은 대형 고객이 생긴 것은 참 행운이었다. 변사장은 지속적으로 나나에게 그림을 주문했고 전시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나나는 그림만 그려서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너무 잘 된 일이고 축하할 일이었지만 멍군은 <여인이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 나나의 모습이 싫어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여인이 있는 풍경> 속에는 나나가 없었다. 그게 멍군이 <여인이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 나나의 모습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변사장도 싫어졌다. 멍군에게 있어 나나를 그렇게 만든 건 모두 변사장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윤은 뭔가. 멍군은 윤이 싫은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유명한 초밥집의 요리사로 일한다는 것, 한 달에 한 번씩은 나나와 초밥을 먹는다는 것, 이것이 멍군이 윤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런 윤이었는데 그 날은 다른 어느 때보다 자신이 넘쳐, 그래서 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표정을 하고 나나에게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정도면 된다는 따위의 말을 지껄였으니 멍군은 이제 윤을 싫어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셈이었다. 그 말이 결혼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게 맞다면 결혼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그렇게 진지하지 못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는 점에 있어 이유가 되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찔러본 것이라면 그건 나나를 농락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유가 되었다. 멍군의 수첩에는 수많은 원들이 분노의 형태를 띠고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차가운 액체가 멍군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잠시 후 멍군의 두 발은 산 정상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멍군의 수첩에는 불규칙적으로 글자들이 새겨졌다. 그것들이 조합을 이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