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을 견디다

아끼며 견디는 여름

by 기빙트리

지리하게 이어지던 폭염이 서서히 물러나는 걸까. 요 며칠,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던 에어컨도 이제는 한 텀씩 쉬어가며 켤 수 있게 됐고,
건물 앞뒤로 뿜어대던 실외기의 열기도 한풀 꺾였는지, 공기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이 덜하다.

모든 생명이 타들어갈 것 같던 여름이었다.
이 계절을 '보낸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견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씻어대던 아들놈도 이제 샤워 한 번으로 마무리한다.
온 집안에 드리웠던 두툼한 커튼은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함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더 오그라들고, 더 우울해졌다.

시골집 앞마당에 매해 어김없이 피어나던 소담한 수국은
이번 여름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일찍 시들어버렸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여름을 나는 담담하게 지나고 있다.
희로애락보다는 ‘그저 살아남는 마음’으로,
생존을 위한 조용한 방어기제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예전 같았으면 앞서 걱정하고, 조바심 내고, 예민해졌을 상황들에도
이제는 무기력과 무덤덤함이 앞선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계절이었으니까.

그래서 말도 아끼고, 웃음도 아끼고, 걱정도 아끼고,
심지어 발걸음마저 아끼게 되는 여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여름을 견뎌냈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keyword
이전 19화폭염.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