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버릴 눈처럼
2024년 가을. 한강 작가의 책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 조용한 시골 구석의 책방에도 때아닌 독서 열풍이 불어닥쳤다.
누군가는 작가의 책을 조심스레 꺼내 들고 책 내용을 묻고,
누군가는 추천을 청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때문인지 나 역시 책장을 붙잡고 앉아 하루 종일 활자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쩌면 미뤄두었던 숙제를 꺼내는 기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의 문장이 품고 있는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강의 글은 침묵처럼 조용하지만,
그 안엔 침묵 이상의 슬픔과 통증,
그리고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의미들이 층층이 깔려 있다.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깊은 사색 속에 빠지고 만다.
이미 우울한 기질에 다시 우울을 얹는 셈이다.
결국, 더 조용해지고 더 고요해진다.
입은 닫히고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문득
내가 이따금씩 끄적여온 글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치 일기처럼, 혹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써내려간 문장들.
그것들이 혹시
감정의 쓰레기통은 아니었을까.
무심코 꺼낸 감정들, 다듬어지지 않은 단어들,
쏟아내는 데에만 익숙했던 나의 글쓰기.
한 문장, 한 단어마다 고요한 사유를 품은
한강의 글을 읽을 때면 괜스레
내 글에 대한 죄의식 비슷한 감정이 따라온다.
책방에서 손님들과 나누는 짧은 북토크 시간 속에서도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남는다.
“마치 허공에 흩뿌려졌다가 금세 녹아버리는 눈처럼.”
녹아버릴 것을 알면서도 흩뿌려지는 눈.
그 허무와 무의미 속에서도
우리는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건넨다.
그래서인지 생각해본다.
결국 이 끄적임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한강의 글을 읽는 날이면,
글을 쓴다는 행위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에도 계속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 꺼내지 못한 이들이 있을 테니까.
흩뿌려졌지만 녹아버리지 않을 어떤 문장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