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숨결을 따라

– 하가시노 게이고의『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

by 기빙트리

책방 문을 열고, 조용한 오후가 시작됐다.
거리는 느릿했고, 창밖으로 바람이 천천히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던 중, 유난히 눈에 밟히는 책 한 권이 있었다.
하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
평소라면 ‘추리’라는 키워드로 먼저 다가갔을 작가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 책은 아주 조용한 이야기였다. 마치 책방 한구석,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나무 의자처럼 고요한.

주인공 ‘나오’는 자신도 모르게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다.
그가 지키는 녹나무는, 죽은 이들의 마지막 인사를 위한 장소다.
잠시 머무는 그 짧은 틈 사이, 망자들은 한 번 더 사랑을 말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혹은 미처 하지 못한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 말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 아주 늦은 편지처럼 전달된다.

책장을 넘기면서 몇 번이나 멈춰 읽었다.
너무 조용해서 더 크게 들리는 감정들이 있었다.
망자들이 전하는 말은 대부분 짧고 단순하다.
“그때 미안했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실, 널 좋아했어.”
그런 말들이, 책방의 적막함 속에서 더 크게 마음을 흔든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그래서 좋다.
누군가와 마주하지 않아도, 책 속 인물들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녹나무의 파수꾼』은 마치 그런 대화를 대신 나눠주는 책 같았다.
우리가 전하지 못한 말들을 조용히 꺼내서, 슬픔이 아닌 온기로 감싸 안는 이야기.

읽고 나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고, 동시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돌아보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용서하고, 또 이해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책.

책을 덮고 난 후,
나무라는 존재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
가만히 머물며 바람과 빛을 받아주는 것,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이 소설이 알려준 것 같았다.

책방에서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책이
이렇게 하루를, 마음을, 조용히 움직여줄 줄은 몰랐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그런 책이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

오늘도 책방은 조용하다.
하지만 책을 읽은 마음만큼은, 나무처럼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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