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감각하는 방법

군산여행 03.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행객들

by 뭉게


길을 걷다 보면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켜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오직 나와 노래만이 존재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길 위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이어폰을 착용할 때가 많으니, 내 삶에 있어서 필수품이자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와 이어폰의 애틋한 사이는, 여행지에서는 잠시 이별한다.


이번에 다녀온 군산은 뚜벅이 여행이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짧으면 5분, 길면 2~30분 정도 걸으며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나의 취향이 가득한 플레이스트를 재생하고, 약간의 리듬을 타며 걸었다. 노래와 함께라면 어떤 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다가 문득, 여행지까지 와서 이런 노래를 들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는 공간인 만큼 익숙한 노래는 굳이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어폰을 빼서 가방 깊은 곳에 넣었다.



여행의 소리는 특별하지 않았다. 매일 듣는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뿐이었다. 다시 노래를 들을지 말 지 고민하는데, 머리 위로 갈매기가 날아갔다. 바닷가는 아니지만 바다 근처여서 갈매기가 종종 날아다녔는데, 갈매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조그만 더 걸으니 갈매기 집결지(?)가 보였다. 갈매기는 누가 끼룩끼룩 이랬나. 까악 까악, 끄억, 끽- 하는 괴상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가만히 서서 갈매기를 관찰했다. 울음소리는 메아리치는 것처럼 온 바다를 가득 채웠다. 갯벌이라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갈매기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웠다.



날씨가 계속 흐리다가 날이 맑아져서 잽싸게 선유도를 지나 장자도, 대장도로 향했다. 하늘은 깨끗하고, 미세먼지도 많이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뜨거운 햇빛 때문에 겉옷을 하나씩 벗으며 걸었다. 그곳에는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대화 소리. 날씨가 너무 좋다, 오늘 온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야. 라며 여러 번 강조하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날씨가 정말 좋긴 했는데, 나라를 구했을 정도로 좋은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행에는 날씨 운이 중요하기에, 특히 풍경이 멋진 관광지는 날씨를 따질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래서 맑은 날을 골라 방문했던 것이고. 그들의 대화는 더위로 인한 불쾌함을 한 순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선택받은 관광객이 된 것 같았다.



이어폰을 꼈다면 듣지 못했을, 혹은 그냥 무시했을 소리들은 내 여행을 만족스럽게 만들어 줬다. 바닷가의 갈매기 소리, 지나가는 여행객의 기분 좋은 대화까지. 사람, 도로, 차 모두 내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행의 소리는 그곳만의 분위기를 느끼며 감각하게 한다.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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