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부터 술 취한 여행객

군산여행 02. 여행의 맛

by 뭉게


그 사람, 바로 나예요.


취객이었지만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거다.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발걸음만큼은 온전했다. 그러니까, 여행 중 대낮부터 술에 취한 이유에는 꽤나 낭만적인 변명이 숨어 있다.




군산 여행 중 수제 맥주집은 무조건 방문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술 자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수제맥주를 꼭 마셔보고 싶었다. 군산의 재료로 만드는 로컬 맥주라는 점, 바다를 보며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날 이끌었다.


역시나 평일 오후의 맥주가게는 한적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 앞에 섰다. 사실 점심에 먹은 것들이 아직 소화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조금 욕심을 부려서 맥주 샘플러와 나쵸를 주문했다.



왼쪽부터 페일에일, 바이젠, 스타우트다. 색도 맛도 향도 달라서 다채롭게 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맥주는 두 번째다. 바나나향과 부드러운 맛 때문에 알-쓰인 나에게 딱이었다. 심지어 색도 예쁨


항상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어서, 여행길에 혼자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야기보다 음식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며 맥주를 즐겼다. 묵직함과 탄산의 강도를 비교하고, 향과 맛을 느끼며 내 취향을 천천히 찾았다. 한낮에 여유롭게 맥주를 즐기는 나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인데,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조금씩 올라오는 취기에 순순히 항복하며 창밖 갈매기만 구경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를 음악 삼으며 응시할 뿐이었다. 오직 그 순간만을 즐겼다. 나쵸는 짭짤했고, 소스는 진한 치즈맛에 매콤함이 맴도는 맛이었다. 바삭한 나쵸 한 입, 그리고 맥주 한 모금. 부지런하게 천천히 먹었다.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입에 털어 넣고 일어났다. 아 좀 취하네.



게스트하우스 체크인하기 위해 길거리를 걸었다. 정신이 살짝 몽롱한 느낌이었지만 걷기에는 문제없었다. 지도를 보며 열심히 걸었지만 잘못된 길이었다. 다시 돌아 돌아... 30분 거리를 1시간이나 걸어 도착했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걸어서인지 몸이 너무 무거웠다. 설상가상으로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체크인하자마자 뻗었다. 침대가 있었지만 바닥이 더 뜨끈해서 그냥 바닥에 누워서 잤다. 나 홀로 여행은 내 마음대로.




웃긴 건, 피곤에 쩔어 술 취한 와중에 이성당 야채빵도 사 먹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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