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뜨거웠던 선택에 관하여
지난해 7월경 나는 백수 아내가 되기를 '선택'했다.
40대 초반... 누군가는 이미 인생의 방향이 다 정해진 게 당연한 나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뭘 해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특히 우직하고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소년 같은 내 남편이라면 더욱더.
나는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직장을 구해 여태껏 무미건조하게 살아온 남편이 지금이라도 자기 꿈을 찾고 한 발이나마 담가보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 남편에게 퇴사를 종용했고 수많은 고민의 밤을 보낸 남편은 정말 퇴사했다.
우린 그간의 무탈하고 안정적이었던 삶 대신 그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것 없이 아슬아슬 곡예하듯 사는 삶, 그 길 위에 덩그러니 섰다.
남편은 그때부터 무슨 강의중독자라도 된 듯 온라인 무료 강의들을 하루에도 몇 개씩 찾아 듣기 시작했다. 기술강사였던 이전의 이력을 살려 1인 기술창업을 해볼까도 했지만 선택의 기준이 너무 명확했기에 그쪽은 일단 제외시켰다. 남편의 기준은 오직 딸.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될 아이가 마음이 힘들거나 몸이 아플 때 언제든 맘 놓고 일찍 귀가해도 되게끔 몸이나마 좀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싶다는 거였다.
남편이 이런저런 도전을 이어가는 사이 내가 한 건 뜨거운 응원과 소비다이어트. 이제는 외벌이 가정의 가장이 된 입장인지라 난생처음 가계부라는 걸 써보기도 했는데 세상에 그동안 이렇게나 돈이 줄줄 세고 있었구나 새삼 절감하기도 했다 (반드시 써야 할 곳에만 돈을 쓰다 보니 삶이 심플해져 좋았다).
자발적 백수아내가 되고 이제 근 11개월째. 남편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의류사업가로 아주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옷도 좋아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꽤 즐겨 한 때 패션모델을 꿈꿨다는 그는 직접 소싱한 옷들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 사진작가는 나. 카메라를 통해 보는 남편은 꽤나 멋져서 또 한 번 반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7월, 그 여름의 뜨거웠던 선택은 우리를 더 끈끈하고 막강한 한 팀으로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