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위기 3대장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날이라면 아마도 2019년 10월의 어느 날. 아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던 때였던 것 같다.
출근하는 버스에서 '놀라지 마'로 시작하는 엄마의 메시지를 받고 일하는 동안 꾹꾹 참았던 울음이, 퇴근 후 남편을 보고는 제대로 터져버렸었다. 의사들도 무서워한다는 최악의 암이 췌장암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우리 아빠에게, 그 많은 병 중에 왜 하필 췌장암이... 억울하기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빠에게 전화했는데 아빠는 더 담담한 척 태연한 척해서 진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빠는 다음날부터 무려 20여 차례 항암 치료를 했고 항암 부작용이 하나 둘 고개를 들 때마다 우리 가족은 함께 마음 졸이고 또 마음 놓으며 위기의 허들을 넘었다.
생애 가장 큰 위기 두 번째도 아빠로 비롯된 것이었다. 암투병을 하며 거의 몇 년간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던 아빠. (내 생각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늘 아빠를 깨어있게 한 것 같기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폭언을 하고 자꾸만 집을 나가고 경찰, 119 대원들을 폭행하기도 하고 언니를 불러 수백 장의 유언장을 쓰게 하는 등... 그땐 정말 엄마가 곧 어떻게 될까 너무 무서웠다. 알고 보니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됐던 거란걸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직원분께 안부만 전해 듣고 있는 요즘, 내 삶에 닥친, 진짜 가장 큰 위기에 대해 생각한다. 아빠와 이제 다시는 정상적인 통화를 할 수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
늘 무슨 말을 해도 "우리 꼭지 너무 잘했네" "누구 딸인데! 최고지" 이렇게 오버하며 내 작은 선택들에 감탄해 줄 아빠가 이제는 없다는 게 정말 슬프다. 어떤 세상에서 어떤 생각으로 헤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빠가 정말 단 하루라도 온전한 내 아빠로 돌아와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