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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너무도 정직하다

홀로 고군분투한 왼쪽 다리에 심심한 위로를

by 온작가


왼쪽 다리가 너무 무겁고 저리고 때로 발바닥 감각까지 이상해진 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앉아있는 시간이 긴 직업 이어서일까, 후배 작가들을 보면 목이나 허리 한 번 심각하게 고장 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난 25년 동안, 심지어 출산을 하고도 딱히 큰 통증을 경험하지 않았는데 다리의 요상한 불편함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이제 나를 좀 더 돌보는 삶을 살자 결심도 했기에 운동치료센터에 방문했다.

선생님은 나를 눕히고 이리저리 보시고는 단번에 말씀하셨다.

"오른쪽 골반이 뒤로 완전 틀어져있어서 왼쪽 다리에 모든 하중이 다 실렸을 거예요 왼쪽 다리가 안 아픈 게 이상할 정도의 상태입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당연히 앉는 자세가 불량해서 (습관적으로 다리를 꼰 채 일하곤 했다) 그랬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당황해하는 내게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아니 무슨 일을 하시기에 몸의 긴장도가 이렇게까지 높으세요?"

"아... 방송작가예요"

"(너무 이해한다는 듯 잠시 짠하게 보시더니) 그러시군요... 어떤 장르 쪽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연예뉴스 프로그램 하고 있습니다"

"(거의 소리라도 지를 기세로) 아이고... 그럼 하루 종일 속보에 예민한 상태로 지내셨겠군요"


그랬다. 내 방송 경력 25년 중 못해도 20년은 연예뉴스를 했는데 엄청난 단독 기삿거리를 물어(?) 올 능력도 안 되고 화려한 연예계 인맥이 있지도 않은 나는 수시로 '뉴스 작가로서의 경쟁력'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그리고 결론은 늘 하나였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누군가 음주운전을 했다든가 송사에 휘말렸다든가 그런 기사 하나가 뜨면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또 다른 이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다. 누군가 구속 수감이 되면 거의 옥바라지를 하는 수준으로 그의 근황을 수시로 체크했고 사건 관련 공판들도 절대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매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몰랐다. 그런 생활이 내 몸을 상하게 하고 있었다는 걸... 소화 좀 안 되고 잠 좀 못 자는 건 '누구나 그러니까'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터였다.


운동 치료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거의 24시간을 무겁게 짓눌렀던 그 엄청난 긴장감이 내 몸의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했다. 이제는 거의 친구(?)가 된 위염, 변비, 불면증에 근 2년 넘게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구강작열감, 최근 생긴 다리 통증 등이 그 증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건 정말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아이를 수술로 낳고 사후 관리를 제대로 못했던 것도 문제의 중요한 시발점이었단다. 아이를 꺼내기 위해서는 배와 자궁 피부를 7겹이나 깊게 절개한다고 듣긴 했는데 이걸 꿰매고 특별히 관리를 안헀으니 세월이 가면서 수술 부위가 말려들어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이 늘 둥그렇게 굽은 상태였을 거라고. 거의 소름이 끼칠 정도의 해석이었다. 등 좀 펴라는 말을 남편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것도 금세 떠올랐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긴 상담을 마치고 '살기 위해' 재활 필라테스를 등록했고 일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긴장감이나 불안을 내려놓기 위해 좋은 음악을 듣고 있다. 생각해 보니 그간 내 삶에 음악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더 팍팍했던 것 같아서. 그리고 길거리를 걸을 때는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대로 보폭을 넓게 하면서 발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 모든 부위가 다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그간 너무 당연한 것처럼 해오던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아보고 있다. 내게 너무 중요한 거라 여겨왔던 '루틴'들을 펼쳐놓고 여러 번 자문했다. "이거 정말, 꼭 필요한 거니?"... 내겐 그렇게 '더하기' 말고 '빼기'가 너무나도 절실한 때인 거다.


몸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정직하다. 오늘 몸에 나쁜 걸 먹고 안좋은 자세로 걷고 '예민함 대폭발' 상태로 산다고 해서 오늘 내일 바로 탈이 나는 건 아니겠지만 훨씬 더 무서운 게 '적립'의 힘이다. 그 보잘것없고 하찮은 순간 순간들이 모이면 천하무적(?)이 되는 것.


내년이면 40대 '중반'이라 우길수도 없는 나이가 되는데, 그전에 이상한 불편함으로 내 관심을 끌어준 왼쪽 다리에게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혼자 다 지고 가느라 정말 고생했어. 이젠 덜 힘들 수 있게 내가 많이 노력할게."


세상 어떤 통증도 어떤 불편함도 당연한 건 없을 거다. 내 몸이 전하는 이야기에 시시때때로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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