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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아빠를 떠나보내며 깊게 남은 물음표 하나

by 온작가


아빠가 하늘의 별이 된 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아빠는 지금쯤 어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까?

늘 그랬던 것처럼 아주 두꺼운 정치, 경제, 역사 관련 전문서적들을 탐독하고 계실지, 또 늘 그랬던 것처럼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든 채 뾰족하고 예민하게 그 세상의 곳곳을 지적하고 계실지, 아니면 이곳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참 평화' 가까운 것을 발견하고 매일 매 순간 그것에 집중하고 계실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아빠가 떠난 후 내게는 크고 두꺼운 물음표 하나가 남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에 가까울까" 하는 것.


지금까지의 나는 주로 '달리기'를 하는 편이었다. 25년을 방송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으면서 '미래'에도 글 쓰는 사람, 그것도 아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글을 쓰면서 돈까지 잘 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나섰다. 나는 반평생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니 결국 유튜브를 하는 게 맞다며 수백만 원짜리 강의를 망설임 없이 결제하기도 했고 일어나자마자 강의를 듣고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면서는 오디오북을 듣고 버스에서는 강의 복습과 유튜브 대본 작성을 하고 퇴근길에도 똑같이 반복했으며 아이가 자고 나면 촬영과 편집 등에 집중했다.


그러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재택근무 날에는 밀린 넷플릭스 드라마 보기, 배달의 민족 어플을 한참 들여다보다 당기는 거 아무거나 시켜 먹기 등으로 2-3시간쯤은 좀 느슨해지곤 했는데 늦은 오후가 되면 그 '허비한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아빠를 떠나보내고 맞이한 재택 데이에 문득 아빠가 지금의 나 혹은 나보다 더 젊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선생님이던 아빠는 늘 공부를 했었다. 어릴 때부터 영재 소리 듣고 자라셔서인지 단 한순간도 '초등학교 선생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좀 더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셨다. 하지만 학교 생활과 어려운 공부를 같이 해 나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는 않았던 것 같고 애먼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퍼붓는 날이 많았다.


그때의 아빠는... 불행해 보였다. '그럼에도' 분명히 아빠를 웃게 하는 순간들이 일상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었을 텐데, 아니 그냥 눈에 훤히 보이게 펼쳐져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빠는 갖지 못한 것, 좀 더 크고 빛나는 것들을 좇으며 '불행해지는 삶'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젊은 아빠와 지금의 내가 문득 겹쳐 보인 건 왜일까. 몸은 '여기' 있으면서 영혼은 '저~~~~기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빈 껍데기. 저~~~~기 어딘가에 다다르면 분명 나는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지금 내 앞에 확실히 놓여 있는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올지 안 올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미래' 말고, 확실히 내 눈앞에 와 있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글 속에 녹인 게 아주 여러 번이었음에도 정작 나는 그러질 못했다. 아마 지구상에서 제일 그걸 못 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 같을 정도로. 내 모든 영혼과 의식이 미래 어딘가를 헤매는 사이 우리 아이는 어느덧 예비 초등학생이 됐고 그 예뻤던 꼬물이의 앙증맞은 순간들은 어디론가 다 흩어져 버렸다.


이제 나는 정말 행복해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나를 좀 더 귀하게 여기고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주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좀 더 마음과 시간을 나눠줘 가면서 하루하루를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싶다.


아빠가 못 살아본 그 인생을, 이제는 내가 성심성의껏 빚어낼 차례다.



이제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 기꺼이 진심을 쏟고 싶다. 그건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다시 조율하는 것이 될 테니까. 누군가는 그걸 허송세월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는 오히려 인생을 만끽하는 법에 가장 가깝다. -최서영 <어른의 품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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