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어르신 의식이 없으시고 산소포화도가 자꾸 떨어지고 있어요.
가족분들 지금 바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가 극심한 섬망 증상으로 보이던 지난 1월부터 아빠의 또 다른 집이 돼 준 대구 한 요양병원. 그곳 간호사의 긴박한 목소리였습니다.
2019년부터 췌장암을 앓으셨으니 햇수로 벌써 7년 차 암환자. 꽤 오랜 기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도 '의식이 없다' 한 마디에 무너진 저는, 아빠를 부르며 한참 울다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아빠는 먼저 와 있었던 엄마와 언니, 형부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요. 갈 곳을 잃은 듯한 동공, 뼈만 남은 앙상한 몸... 너무도 연약해져 '이제는 그만하겠다'라는 아빠의 육신과, '그래도 조금만 더'를 외치는 아빠의 정신이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는 것만 같았어요.
다행히 혈압도 심박수도 안정적이니 집에 가서 쉬다가 다시 와도 될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엄마와 언니, 형부, 남편과 딸까지 모두 집으로 보냈지만 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와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를 그 귀한 시간을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혼자 남겨진 아빠가 너무 무서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빠 옆에 앉아 손을 꼭 잡았습니다. 무척 따뜻했습니다. 차라리 '뜨거움'에 가까울 정도로요. 온몸의 증상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손의 온기는 아빠의 마지막 의지인 듯 느껴졌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뜨거운 의지...
밤새 아빠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아빠의 너무나도 까다로운 면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정말 멋진 사람이고 우린 꼭 다시 만날 거니 무서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만나서 '막내아들 먼저 왔습니다' 인사 잘 드리고 그토록 드시고 싶었던 회도 마음껏 드시고 극심한 섬망 증상들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책 출간의 꿈을 거기에선 꼭 이루시길 기도하겠다... 정말 밤새 몇 번을 반복해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호흡은 갈수록 더 거칠어졌고 아빠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제 그만 편안하게 떠나시길 바라기도 했지만 아빠는 아침까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우리 막내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데 조금 더 버텨볼게" 산소호흡기 속 벌어진 아빠의 입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오전 7시 조금 넘은 시각. 엄마와 언니, 형부가 다시 왔고 9시 10분경 온 가족의 배웅 속에서 아빠는 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20년 넘게 수많은 연예인들의 부고를 전하며 아무렇지 않게 써왔던 한 글자, 故... 그게 아빠 이름 앞에 있으니 정말 마음이 덜컥, 하더라고요. 정말 가셨구나,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 한 글자의 무게는 사실 어마어마한 것이었구나...
그런데 희한하게도 장례식 내내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지긋지긋했던 암 덩어리가 이제는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돼 있으니 절대 이별한 게 아니라는 생각, 더 좋은 나라에서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 그런 것들 때문이었을까요.
아빠의 장례는 생전 그토록 좋아하셨던 바다에서의 '해양장'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병원 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근처 횟집에서 회 한 접시 먹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아빠... 하지만 거동조차 불편했던 아빠가 혹시나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가족 모두는 극구 반대했었는데요, 아빠는 지금쯤 진한 바다 내음 지겹도록 맡으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계실까요?
때론 아빠가 무척 밉기도 했는데 이젠 그립기만 합니다. 그토록 따뜻했던 아빠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아이고 우리 꼭지 장하네~ 그렇지! 누구 딸인데!!"
늘 하셨던 그 말씀이 귓가를 맴돕니다.
"아빠, 마지막 밤 제가 한 약속들 반드시 지킬게요.
아빠 곁에 가는 그 순간까지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 것,
하온이를 책 속에서 키울 것,
엄마 잘 챙기고 우리 식구 건강도 잘 돌보면서 아주 잘 지내다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그날, 반드시 아빠를 찾아갈 것...
꼭 꼭 꼭 지킬게요.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