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맘, 육아 대디 여러분, 오늘도 피(?) 튀기는 육아 전쟁터에서 승리하셨나요?
세상이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 아마도 당신은 커다란 패밀리 침대에서 가족들과 뒤엉켜 자다가 아이의 발길질에 한 대 제대로 맞고 정신이 버쩍 들어있거나 자꾸 깨서 이유 없이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넋이라도 있고 없고'인 상태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깬 김에 화장실에 갔다가 세상 부스스한 내 몰골을 보고 기겁을 했을지도요.
아무튼 다들 오늘 하루도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24년 차 방송작가 박은경이라고 합니다.
브런치에서나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온작가'라는 필명을 쓰고 있지요. 저희 아기 이름에 '온'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따뜻한 작가'로 많은 분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것이 최종 목표이기에 그런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동안 그저 일밖에 몰랐던 저는 서른일곱의 어느 날 천주교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천주교의 그 주님보다 다른 주님을 더 열렬히 만나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특별한 관계가 되어갔지요.
그 나이에도 소년 소녀의 그것처럼 무척이나 풋풋했고, 열정적이었던 우리의 연애. 그리고 1년 후 우리는 부부가 됐습니다.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나이 ‘마흔’.
하지만 저의 마흔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휘청이다 못해 맥없이 꺾여버린 날도 숱하게 많았죠. 그해, 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되는 과정부터가 녹록지 않았던 저입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던 아기가 7주 만에 유산이 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 남편과 부둥켜안고 참 많이도 울었었고요, 몸이 좀 회복된 뒤부터는 더 건강하게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며 별의별 짓을 다 했던 거 같아요.
임신에 좋다 하는 영양제를 몇 가지씩 챙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요, 소고기를 입에 달고 살았고 쑥즙에 포도즙에 두유에... 매일 먹어야 할 것 리스트만 봐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죠.
유명한 난임센터도 찾아갔는데 아주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괜찮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나이' 였죠.
아이 키울 자신이 없다며 호기롭게 딩크족을 외치던 그 여자는 온데간데없었고, 점만큼 작았던 생명체에 대한 그리움인지 오기인지 모를 감정들이 뒤죽박죽 된 채 매달 심판대 앞에 섰었지요.
유산한 지 8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배테기(배란테스트기)' '임테기(임신테스트기)'의 충성스러운 노예로 살고 있던 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시술을 결심했습니다.
당연히 확률이 높은 '시험관 시술'로 직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으나 그전에 딱 한 번 시험 삼아 인공수정을 해 보기로 했었어요. 호르몬 주사에 대한 반응이나 과배란에 대한 부작용 같은 것도 미리 한 번 알고 시작하면 좋을 거 같아서 그야말로 '워밍업 단계'로 인공수정을 선택한 거죠.
물론 기대는 0.1도 없었어요.
나이도 어리고 아무런 이상소견이 없는 분들도 인공수정 성공 확률은 참담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전까지 임테기의 노예로 살던 제가 그땐 피검사 당일까지도 아예 임테기를 꺼내 볼 생각조차 안 했다면
얼마나 얼마나 기대가 없었던 건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으세요?
심지어 남편이랑 막걸리를 마구 퍼마시며 신나는 밤을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그게 임신이 된 겁니다.
그렇게 그렇게 기를 쓰고 긴장하고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던 땐 매 달이 지옥이었는데 마음을 완전히 비워내 버리니 그 비어진 공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벅찬 감동이 훅 들어오더라고요.
"피검 150이 넘네요. 안정적입니다."
"네?? 임신이라고요??"
작가실 앞 복도를 서성이며 간호사와 통화하던 제가 일순간 소름과 함께 얼어붙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엔 매주, 좀 안정기가 되고 나선 3-4주에 한 번 병원에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간 적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심장은 잘 뛰고 있나 다른 문제는 없나 늘 전전긍긍이었죠.
대기실에 앉아있으면서 많은 예비엄마들을 보았어요. 난임센터였기에 모두 꽤나 날이 서 있는 표정들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픈 그 결과물들을 수도 없이 받았던 걸까. 이제는 어떤 충격적인 소견을 들어도 그다지 충격을 받을 거 같지 않은... 단단함과 침착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그들에겐 있어 보였어요.
하여튼 단 한 번의 이슈없이 주수에 맞게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우리 부부의 이름 앞에 '아빠' '엄마'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달아주며 세상에 나온 아이.
아기를 본 첫 느낌은 정말 이상했어요.
드라마에서처럼 막 감동적이거나 눈물이 줄줄 흐르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그냥 굉장히 현실감이 없었지요.
칼로 난도질하고 휘저어놓은 것 같은 뱃속이 그저 욕 나올 정도로 짜증 날 뿐 가족들은 이쁘다고 난리인 이 핏덩이에 대한 감흥 같은 게 신기하게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건 현실이더라고요.
제가... 20년 넘게 일만 사랑했던 제가 아기란 걸 낳았더라고요.
그것은 분명 무척이나 고결하고 거룩하고 황홀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글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제게 그 순간부터 펼쳐졌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지상 최대의 난제 그 이상이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거라고, 나이가 많으니 하루빨리 갖고 낳자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결혼은 무조건 좋은 거지만 임신과 출산은 정말 정말 더 신중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저 매달 한 줄이었던 임신테스트기가 내 오기를 자극했고, 무슨 게임을 하듯 성공만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왔던 게 아닐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배 주사를 맞아가며 버스 대신 지하철 대신 걷기를 선택했던 걸까...
이렇게 덜컥 아기라는 생명체를 받아 들고 보니 겁이 났어요.
다시 작게 만들어서 뱃속에 쏙 넣어버릴 수도 없는, 진짜 웃기도 하고 하품도 하고 똥도 싸고 내내 울기도 하는 찐 사람이 내 아기고, 내가 그의 엄마라니 그야말로 멘붕 그 자체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아빠, 엄마가 되셨나요?
아기와의 첫 만남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