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던 이유

무엇이 '갓 엄마'인 나를 그토록 치열하게 살게 했었나

by 온작가

2019년 7월 16일 오후 12시경 비몽사몽 간에 갖게 된 또 하나의 이름 '엄마'.


마흔 인생 최고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너무도 어색한 그 이름의 주인이 됐지만 엄마의 삶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들 투성이었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젖몸살에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했던 그때, 그 상태로 어디론가 끌려(?) 가서는 아기한테 모유를 줘야 한다며 유축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었죠.


가만히 놔둬도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픈데 '최소한 이 정도는 나와야 해요'... 가뜩이나 찢어진 눈꼬리를 한층 더 올려가며 그 조그만 젖병을 들이대던 간호사.


더럽게 재미없는 B급 코미디 영화 같기도 했고 무슨 재난영화 같기도, 공포 스릴러 영화 같기도 했던 날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수유실에서건 병실에서건 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닌 거더라고요.

아무나(?) 막 들어와 가슴을 떡 주무르듯 만지질 않나 칼로 난도질해 놓은 것 같은 배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막 눌러대질 않나 모유 양과의 한 판 승부에 나선 다른 엄마들은 그 와중에도 결연한 표정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유축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질 않나...


그것은 흡사 짐승의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괴기스러운 그 공간에서 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지요.

"나는 짐승이 아니다!"


필사적으로 나를 지키기에 나섰던 거 같아요. 모유수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요, 또 누군가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러 들어오면 그만하겠다고 정색을 했더랬어요.


엄마이기 이전에 수치심을 충분히 아는 여자이고 그보다 앞서 인권이란 걸 가진 인간이니 날 건드리지 말라!

무슨 운동가도 아니고 꽤나 비장했죠.



그런 채 일주일이 지나고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했어요.


전신마취를 했던 터라 아직도 정신이 온전(?)치 못 했고, 흘러넘쳐 바다를 이룰 태세의 '호르몬' 때문에 뻑하면 눈물이 터져 오열까지 가기 일쑤...


그야말로 쌩 난리였지만 따뜻하고 깨끗한 분위기의 조리원에서 그나마 내가 '짐승'이 아닌 '사람'이 맞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 기뻤고요, 맨 처음 한 일은 노트북을 꺼내 든 거였습니다.


'나 아파 죽겠는데 젖이나 짜고 있어야 되는 짐승 아니고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살아온 나름 '전문직' 여자야, 이거 왜 이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조리원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물론 돈도 중요하긴 했지만 최소한 스스로에겐 자랑스러웠던 이름 '방송작가', 그걸 한 순간이라도 빨리 되찾고 싶었던 마음이 훨씬 컸던 거 같아요.


그렇게라도 며칠 사이 지하 100층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을 조금 회복시키고 싶었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같은 팀 후배 작가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메인작가 한 명에, 10년 차 이상의 서브작가가 유독 많은 우리 팀...


팀을 이끄는 큰언니인 제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층층이 줄줄이 피로가 누적돼 결국 어디서 어떻게 터져버릴지 모를 일이었던 거죠. 가뜩이나 데일리 연예뉴스를 하며 격무에 시달려 온 그녀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너무나도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팀에 피해를 끼치는 건 제 성격상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였어요.


신혼여행 때도 매일 새벽마다 호텔 한쪽 귀퉁이 또는 화장실에서 (혹시 남편이 깰까 봐) 조용히 시청률을 확인하고 아이템을 체크하고 후배들이 쓴 원고를 검토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지요.


남들이 보기에 '오버'일지 몰라도 최소한 저에겐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철칙 같은 거였다면 그 역시 '오버'라 느끼실까요?


아, 그리고 작가 후배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결혼하고 아기 낳고도 이렇게 작가란 이름을 유지할 수 있다, 육아 휴직 따위 없는 비정규직에 희한한 일용직(?)이지만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심지어 산후조리원에서도 이렇게 업을 이어갈 수 있으니 엄마로서 참 좋은 직업이기도 하다... 그걸 말이죠.




그로부터 만 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작가로서의 삶을 나름대로 평온하게 이어가고 있는 저...


그 원동력은 그때 그 조리원에서 저를 노트북 앞에 앉게 했던 무거운 책임감과 그때 그 조리원에서는

절대 알지 못했던 아이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귀신 산발을 하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아내의 모습조차

어여삐 여겨 주고 '할 수 있다'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의 무한 긍정 에너지...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엄마로, 또 아빠로 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힘은...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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