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최연소 아기 입성

백일 '핏덩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by 온작가


육아와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보면 절대 빠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어요. "어린이집, 언제부터 보내는 게 좋을까요?"


반드시 최소 36개월은 돼야 한다, 돌만 지나도 괜찮다, 정답이란 건 없고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하는 거다... 의견들도 분분하죠.


물론 세 돌 정도 지나고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보내는 게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또 선생님들에게도 훨씬 평온한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엄마가 일 복귀를 일찍 해야 하는데 시터 선생님을 쓸 만한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거나 설령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믿을 만한 타인'이 있을 확률은 극히 드물 것 같고요, 또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람'보다는 '생명체'에 가까운... 그냥 울고 웃고 똥 싸고 그저 본능에만 충실한 아기를 영아 전문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기도 하는데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재택근무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제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게 데스크와의 아이템 회의거든요. 그래서 이전의 제 롤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출퇴근이 불가피했는데요, 그 시점을 아기 백일 때쯤으로 잡았기 때문에 아기가 두 달쯤 됐을 때 영아 전문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주변 지인들에게 정말 많이 들은 얘기였는데요,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제 세상... 그 낯선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매일매일 지옥을 경험했던 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참 위태로웠거든요. 하루빨리 예전의 나를 완벽히 되찾지 않으면 무슨 사달을 내도 낼 것만 같은... 초점 없는 눈에 귀신같은 몰골, 영혼이 싹 다 빠져나간 듯한 빈 껍데기의 형상이 거울 앞에 무섭게 서 있더라고요.


'남들 다 하는 육아 뭐 그리 난리야?'


맞아요. 남들 다 하는 육아. 그래서 그 남들이 정말이지 존경스러워지더라고요.


아기를 낳은 그 순간부터 '이건 아니다' 했던 나란 사람. 작고 보드라운 아기를 가슴팍에 올려놓으면 감격의 눈물이 나야 정상인 거 같은데 전 그냥 조금 이상했고 많이 무서웠어요. 병원, 조리원에선 그나마 24시간 나와 아기를 돌봐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정말... 그때의 그 막막했던 감정과 숨 막히는 공기가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날 정도니까요. 아기는 하루 종일 이유 없이(자기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해석 불가능) 울고 떼쓰고 저는 귀신같은 몰골로 비명도 질러봤다가 악을 쓰고 울어도 봤다가... 서로 다른 이유로 '사람 같지 않았던' 그 두 여자 사이에서 남편은 말도 못 하게 힘들었겠지만 힘든 기색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달까요. 그나마 이성의 줄을 붙들고 있는 남편의 힘듦이 끼어들 만한 공간은 1도 없어 보였거든요.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육아에도 체질이 있고 적성이 있다는 걸요.


뜻밖에도 육아가 체질이고 적정에 맞았던 저희 남편은,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일을 잠시 쉬고 위태로운 두 여자와 함께 해 주기로 했었어요. 눈만 뜨면 울고 보채고 똥 싸는 작은 여자와 눈만 뜨면 신경질에 신세 한탄에 결국엔 또 울어버리는 큰 여자가 있는 집. 그 사이에서 희한하게도 평정심을 지키며 두 사람을 다독이고 안아주고 지켜줬지요.


제겐 슈퍼맨과 다를 바 없었던 남편도 아기 백일쯤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그래서 어린이집을 알아보게 된 거죠. 조그마한 아기를 '바구니 카시트'에 '담고' 다니면서요.


그렇게 어린 아기에겐 선태의 여지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은 생후 7-8개월은 지나야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딱 한 군데, 집에서 살짝 떨어진 아파트 내 가정 어린이집에서 받아주실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얼른 아기를 데리고 방문해 보았어요.



참 선해 보이기도 깐깐해 보이기도 한 중년의 원장님이 우리를 맞이해 주셨어요. 40 평생 내 인생 사전에 '어린이집'이란 게 들어있었을 리 만무했기에 뭘 물어봐야 될 지도 알 수가 없었는데, 먼저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신 원장님. 뭔가 마음이 탁 놓였달까요. 다소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아주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어 보였고 뭣보다 '생후 한 달에 온 아기도 있고 지금까지 아주 잘 다니고 있다'는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더랬죠.


그리고 한 번 더 방문을 했을 때 그 아이를 직접 보게 됐습니다. 등원하던 길이었는데, 엄마가 인사를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나게 선생님 품에 안겨 들어오던 아이. 표정이 너무너무 밝았어요. 어린이집의 '산 증인'인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내보자! 적응될 때까지는 2시간 정도만.


그렇게 최연소 아기로 어린이집에 입성하게 된 우리 아기. 자다가 바구니 카시트에 담긴(?) 채 어린이집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분유 한 번 먹고 응가 한 번 싸고 또 쌔근쌔근 잠이 든 채 돌아왔던 아기. 낯선 공간이라고 크게 울고 보채지도 않고 너무 잘 적응해 줬고 그제야 제 일상에도 '숨 쉴 구멍'이 생겼습니다.


얼마 뒤 저희 부부는 각자의 일터로 완전히 복귀를 하게 됐고 아기는 조금 오랜 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내게 됐어요. 우유병 6개 정도와 함께 등원한 아기는 깨끗해진 우유병, 하루 일과가 담긴 알림장과 함께 하원했지요.


"이렇게 어린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는지 어떤지 뭘로 알 수 있어?"


당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던 절친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 표정으로 판단해야지. 편안해 보이고 잘 웃고 그러면 잘 지내는 거야"


아기 표정은 늘 밝았고 어린이집 등원, 하원 길 내내 참 잘 웃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오직 선생님들을 믿고 아기를 믿는 마음, 그걸 뼛속 깊이 넣어두는 거 외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더 열심히 살아내는 것 밖에는요.



집이 아닌 낯선 공간의 천장을 보며 종일 누워 있던 아기. 그 곁을 원장님은 참 따뜻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가장 어린 아기라고 내내 마음 써 주셨어요. 분유 물의 온도부터 기저귀나 물티슈 재질, 낮잠 이불과 베개의 느낌까지 공유하며 아기에게 최적일 수 있는 환경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동안 아기의 볼은 하루가 다르게 오동통해졌고 웃음도 참 많아졌죠. 잘 자라고 있구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초보 엄마들이 고민하고 있을 거예요. 어린이집에 언제 보내야 하나, 그 문제를 두고요.


무조건 빨리 보내라, 그래야 엄마가 산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그 외의 어떤 선택지도 없다면 영아를 케어해 본 경험이 반드시 있는 곳을 잘 찾아보고 주위의 반응도 들어보고, 그 이후엔 정말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겨도 괜찮다... 잘 지내고 있는지는 아기의 표정과 볼살이 말해줄 것이다... 이렇게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0세 반 최연소 꼬맹이였던 저희 아기는 어느새 6살 언니가 됐고요, 지금은 주말에도 '왜 어린이집 안 가?'를 반복하는 '어린이집 사랑꾼'이 됐습니다. 물론 따뜻한 진심과 세심한 배려로 아이의 성장기를 함께 걸어주신 원장님 공이 너무 컸지요. 원장님 덕분에 늘 불안했고 위태했던 쌩초짜 엄마도 차츰차츰 사람의 모습으로 진화(?)될 수 있었습니다. (원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아기를 보내셨나요?

아기에게 어린이집은 어떤 느낌으로 기억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