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건강을 위해 운동한 시간인가? 무언가 취미생활을 위해 투자한 시간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저의 수면 시간입니다. 앞은 밤 잠, 뒤는 아침잠.
보통 빠르면 10시 반, 늦으면 11시 정도에 꿈나라 여행을 떠나는 우리 아기. 잠은 무조건 엄마와 자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10시 반 11시까진 꼼짝없이 아기와 함께 해야 하고 그 후부터 어린이집 간식 준비, 알림장 기재, 집 정리, 잠시 잠깐의 간단한 야식 시간 등을 거치고... 남편이 잠들기 전까지 서로 자신만이 목격한 아기의 '하루치 귀여움'을 공유하고 나면 작가로서의 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빨라도 12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새벽 두 시엔 잠을 자자는 혼자만의 규칙을 정해놓긴 했지만 아무리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도 2시간 안에 일이 다 끝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지요.
성격 상 해야 될 일을 남겨두고 잠을 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3시가 넘을 때도 있지만, 몇 시에 잤든 저의 기상 시간은 6시, 늦어도 6시 반.
전날 못다 검수한 후배들의 대본을 봐주고 센터장님과 심의팀에 당일 방송을 위한 큐시트, 대본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이템을 준비하는 등등의 일들을 하려면 최소한 40분에서 1시간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과를 마친 후 남편이 기상하면 같이 아침밥을 먹고 그 사이 잠에서 깬 아기랑 잠깐 놀아주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면 그때부터 저만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귀한 시간에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바로 '청소'.
'아기 있는 집이 어쩜 이렇게 깨끗해요?'
집에 오는 사람들 중 열이면 열이 다 하는 얘긴데 원래도 청소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기를 낳고 희한하게도 거의 강박에 가까운 결벽증이 생겨버려서 금쪽같은 그 시간에도 창문들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킴과 동시에 아기가 흩트려놓은 것들은 각 잡고 열 맞춰 정리하는 저. 참 피곤하게 산다 싶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냥 흩트려놓고 사는 게 더 스트레스여서 그냥 이젠 기쁜 마음으로 정리와 청소에 임하곤 해요.
여하튼 저의 오전 일과를 마친 후 다시 잠자리에 드는데, 이때 주어지는 시간은 두 시간에서 길어봐야 두 시간 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아침잠 시간에 거의 기절해서 쭉 자야 그나마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깨지 않고 잔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아요. 제가 자야 된다는 걸 알 리 만무한 이들의 전화 공격, 카톡 공격 때문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수면 시간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생겼지요. 밤 잠과 아침잠을 합쳐 6시간 정도는 자야 최소한 사람 꼴로는 살 수 있었다는 '경험치'들이 만들어낸 집착.
그래서 아기를 재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어 책을 더 느릿느릿 읽어주는 것으로 아기의 하품을 유도해 보기도 하고 수면등을 더 어둡게도 해보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해 봤지만 웬걸... 두 돌이 지나고부터는 잠자리에서 더 활발하게 살아나는 아기인 겁니다.
애착 인형인 토끼 인형에게 당근 수프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불을 목에 두르고 (앞치마라고...) 당근 장난감으로 열정적인 요리 시간을 갖는가 하면 끝도 없는 '이건 뭐야?' 공격으로 혼을 쏙 빼놓기도 하고 의태어 의성어 책에 나오는 오빠를 따라 '엉금엉금' 소리를 내면서 침대 가장자리를 몇 바퀴씩 기어 다니기도 하는 등 레퍼토리도 어찌나 다양하고 참신한지... 엄마를 괴롭히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나 싶을 정도로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정도를 꼬박 채우고서야 쌔근쌔근 잠이 드는 아기.
11시 넘어서야 쉬야 기저귀와 책들을 주섬주섬 들고 방에서 나오며 너무 지쳐하는 제가 못내 안쓰러웠던지 남편은 며칠 전부터 아기에게 반복적으로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인 즉 '책 읽는 건 엄마랑, 잠자는 건 아빠랑'. 이왕 일찍 자기는 틀린 거 같으니 잠자리 놀이의 고통(?)을 분담해 보자는 취지였죠. 그럼 제가 30분 책 읽어주고 '아빠랑 자~' 하고 나오면 남편이 들어가서 잠드는 순간까지 함께 있어주는 것.
처음 며칠은 먹혔습니다. 유난히 말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칭찬받는 우리 아기는 무슨 수학 공식, 영어 단어라도 암기하듯 '자러 가자~' 하면 '책 읽는 건 엄마랑, 잠자는 건 아빠랑'을 반복했고 평소보다 30분이 더 여유로워진 저는 '와 이 정도만 유지돼도 훨씬 살만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 여유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엄마 갈게' 하며 나가려던 순간 너무도 촉촉한 눈으로 간절하게 외친 아기의 한 마디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엄마 나가지 마'...
아침 9시에 등원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더 오랜 시간 어린이집에 있으면서 왜 집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이제 겨우 세 살인 아기가 왜 엄마 품이 그립지 않았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다 전하기에 아직 말이 맘처럼 다 나오질 않기도 했겠고, 하루 종일 피곤해 보이는 엄마를 보며 눈치가 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엄마, 나가지 마'...
가슴을 강렬하게 친 한 마디, 거의 외마디 비명에 가까웠던 그 짧은 말은 아마도 아주 오래, 어쩌면 평생토록 생생하게 남아있지 않을까요.
그리고는 어제, 또 한 마디를 덧붙이더군요. '오늘은 엄마가 더 보고 싶었어! 엄마 사랑해'
누구보다 아기에게 자랑스럽게 '이런 걸 쓰는 작가가 네 엄마'라고 얘기하고 싶고 누구보다 아기에게 인정받고 싶어 잠을 줄여가며 일했는데 정작 아기에게 필요했던 건 그냥 엄마 냄새, 엄마와 손 잡고 웃는 것 그거면 충분했던 거예요.
이젠 또 다른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야겠습니다. 아기와의 밤 데이트만큼은 줄일 수 없을 테니까요. 줄이지 말아야 하는 거니까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꿈나라 여행은 엄마가 보내줄게. 엄마도 오늘 하루 종일 많이 많이 보고 싶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