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인해 무한대로 확장된 엄마의 세계
이제 겨우 24개월인 나의 아기에게
아가, 엄마야.
천사보다 더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채 자고 있는 우리 아기.
언제 이렇게 자랐니?
무척이나 넓고 길어 보이던 네 침대가 어느새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키도 손발도 길쭉길쭉 자라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무언가 뜨거운 게 훅 올라와 뭉클할 때가 있다.
이 방에 네가 처음 왔을 땐 신생아용 작은 원목 침대에 주로 누워 있었고 가끔은 엄마 아빠 침대로 옮겨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우릴 가만히 응시하곤 했는데... 그러다 하품이라도 한 번 하면 엄마 아빠는 인형이 하품도 한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었지.
그러다 길이가 1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범퍼침대로, 또 지금 쓰는 특대형 범퍼침대로... 넌 안방에서의 네 지분을 자꾸만 넓혀갔고, 자유롭게 걷고 뛰는 지금은 안방이 아닌 온 집이 네 무대가 됐어.
이제 24개월 하고도 보름 정도 산 내 아기.
도대체 왜 우는 건지, 도대체 왜 칭얼대는 건지, 도대체 왜 딸꾹질을 하는 건지, 도대체 왜 열이 나는 건지... '도대체 왜'가 가득했던 초보 엄마의 연차도 어느덧 2년을 꽉 채웠네.
참 울기도 많이 울었던 지난 2년... '엄마'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는 그래도 나름 많이 미성숙하지는 않다고 자평하며 살았던 내가,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는 줄곧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확인하는 시간들을 살아왔다고나 할까? 잠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기본적인 생리 현상까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벼랑 끝에서 맞닥뜨렸던 나의 민낯은 참... 짐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더라. 목이 터져라 울고 괴성을 지르고... 네 외할아버지에게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 대한 두려움까지 겹쳐서 지독한 산후우울증이란 것도 겪었지. '내가 지금 잘못된다면 아픈 아빠 먼저 가시는 걸 보지 않아도 되겠지?' 이런 끔찍한 생각까지 하며 그야말로 낭떠러지 직전의 어느 지점인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그때의 나.
다시 뱃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는 너라는 생명체를 두고 겁도 많이 났었어. 이젠 그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이 아이를 최소한 20년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공부시키고 이 사회의 번듯한 구성원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게 참 무서웠지.
너를 만나기 전, 아빠를 만나기 전 엄마는 그야말로 일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회사, 집, 대본, 책, 또 회사, 또 집, 또 대본, 또 책... 어릴 때부터 오직 '방송작가' 말고는 꿈이란 게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완벽하게 해 내고 싶었어. '작가'라는 두 글자가 그렇게 가슴 뛸 수가 없었고, 엄마 이름 뒤에 그 두 글자가 붙는다는 게 정말이지 좋았고 감사했지. 그래서 아주 오래오래 작가로 살고 싶었고, 내가 사는 이유는 그냥 그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네 아빠를 만나고 또 운명처럼 너를 만나고 엄마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 거야. 굉장히 고요했던 그곳은 아주아주 시끌벅적한 곳이 되었고 하품 날 정도로 똑같았던 매일매일은 재난 영화, SF 영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스펙터클해졌지.
그리고 너를 산책시키며 '우리 동네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여기 이렇게 예쁜 꽃도 피어 있었구나' '놀이터엔 이런 이런 놀이기구들이 있었구나' '하늘이 참 높고 예쁘구나' 엄마의 시야가 무척이나 확장됐어. 요즘엔 '이건 뭐야?'를 달고 사는 네 덕에 '우리 냉장고에 이런 것도 들어 있었구나' '거실 창문을 열면 이런 게 보였었구나'... 늘 기계적으로 무미건조하게 보던 것들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됐달까. 문구점을 가면 예전엔 관심 1도 없었던 풍선이며 크레파스, 스티커북들을 지나치지 못하게 된 엄마와 아빠... 분명 이전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우리의 눈과 마음은 완전히 다른 걸 보고 있더라.
최근 목이 부어서 39도 가까이까지 열이 오른 널 재우며 엄마가 그랬지? '아픈 거 다 엄마 줘, 울 아긴 절대 아프지 마'라고... 그 말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려 했던 걸 억지로 참았던 거 아니? 그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될지, 몇 년 전의 엄마는 상상이나 했을까.
하루 만에 아픈 거 다 떨쳐버리고는 자기 직전 뒹굴뒹굴하며 '할머니 보고 싶어' '꼬모 보고 싶어' 했던 너. '할아버지는?' 이란 물음에 당연히 '할아버지도~'라고 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아파서 하온이한테 올 수 없어'라며 우릴 놀라게 한 너. 몇 개월 사이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우리 집에 오시면 늘 앉아만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었구나... 저런 말을 언제 배웠지? 언제 저렇게 컸지? 대견하면서도 아주 건강하시던 그 시절의 할아버지를 보지 못 했던 네가 안쓰럽기도 했지. 더불어 서울엔 올라올 엄두도 못 내시고 늘 전화기 속에서 이마만 보여주는 (영상 통화를 해 본 적이 없어 각도 조절 실패....) '대구 할아버지'는 네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는 할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루하루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며,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하며 정말이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우리 아가. 내 세상의 규칙과 질서들이 어긋나는 꼴을 못 보는 엄마도 이젠 많이 무뎌져서, 네가 마구 헤집어 놓은 세상도 나름 볼만하구나... 마구 틀어져버린 규칙과 질서, 그 사이사이의 빈틈에서 이전엔 보지 못했던 행복의 꽃이 피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해봐.
아가, 오늘 엄마의 편지는 여기까지야. 그냥 다 떠나서 널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거, 그거 하나만 기억해주면 된단다. 오늘도 네가 좋아하는 어린이집 원장님이랑 윤우 오빠랑 뽀로로랑 같이 재미난 여행을 하는 꿈을 꾸며 잘 자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