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많고 많은 직업군 중 하나일 뿐이지만 제겐 초등학교 때부터의 '유일했던 꿈'이었기에... 그꿈을 이루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정말 방송작가가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벅찬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 것인지 자주 반성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작가'로 살 수 있을까...
오랜 고민 중 하나인데요, 그래서, 작지만 큰 도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마흔셋, 이제야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정확히 만 22년 동안 방송작가로 살아온 나는,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해 왔습니다.
회의 테이블에만 수개월 올랐다 사라지는 프로그램들이 부지기수, 그나마 조기종영은 행운에 가까운 요즘의 방송가에서 좀 더 오래 버티는 방법은 이미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프로그램에 몸담는 것이라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이전에 SBS, tvN 등에서 연예뉴스를 해 왔던 경력을 살려 작은 방송사의 연예뉴스 팀으로 왔고, 다행히 만 9년 동안 밥줄을 꽉 붙들고 있습니다. (물론 '폐지 위기다'라는 협박(?)을 개편 때마다 듣고 있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걸로는 되지 않을 거 같았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약 80세까지는 생존을 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다고 80살까지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회사가 내게 '작가'의 이름을 보장해주는데 분명 한계가 있을 거였고 결국 그 길은 내가 찾아내야만 했지요.
아기가 태어나고 그 고민은 더 깊어졌던 거 같습니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학생이 되는 동안에도, 욕심을 내자면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엄마는 작가야'라고 말하고 그걸 자랑스러워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세상에 나라는 작가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고급진 표현으로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하던데요,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오랜 꿈을 이뤘고 20년 넘게 한 길을 가고 있고 있다는 나만의 스토리를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제일 먼저 했던 건, 블로그 작업과 전자책 집필이었습니다. 블로그의 주제를 고민하며 전문가의 컨설팅도 몇 차례 받아봤는데요, 어쨌든 나의 가장 큰 무기는 '20년 이상 경력의 현직 방송작가'이니 그런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주제로 시작을 하는 게 맞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래서 블로그에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써 나가기 시작했고 전자책으로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었습니다.
작년에 블로그를 통해 무료 배표 했던 전자책의 표지입니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무료 상담도 진행했었어요. 다행히 블로그 상위 노출도 어렵지 않게 됐고 작가 지망생들의 문의도 꽤 있었으며 이렇게 인연을 맺은 지망생 몇 명은 실제로 제가 하는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로 발탁하기도 했죠.
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더라'는 거였어요. 잠자기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가면서 이 과정을 지속하는 힘은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데서 나오는 걸 텐데, 방송작가를 소재로 하는 글쓰기는 일의 연장 같기만 해서 의미는 있었을지언정 재미가 없었던 거지요.
그럼 또 어떤 게 있을까? 고민을 했고요, '나의 강점'에 대해 꽤 진지하게 들여다봤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모임에서 뻑하면 동생들이 여보한테 고민 상담했었잖아~ 경청하면 또 박경청! '다 들어주는 작가 언니' 이런 콘셉트로 뭘 해보면 어떨까?'
제가 직접 대본을 쓰고 남편과 함께 연기까지 해 가며 녹음을 했지요. 아기를 재우고 작은방에서 조용조용 녹음하다 서로의 발연기에 빵 터져서 10분 넘게 거의 데구루루 굴러가며 포복절도했던 적도 있었는데요, 너무 재밌는 과정이긴 했지만 육아, 본업과 함께 이 작업까지 하기가 버겁더라고요. 포기한 건 아니고요, '잠시 멈춤' 상태... 이길 바랍니다^^
지금 상황에서 지속할 수 있을 만한 건 영상 콘텐츠가 아닌 글 콘텐츠라는 판단을 내렸어요. 그래서 브런치 글쓰기에 좀 더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고요, 블로그도 병행을 하되 주제를 선회해보기로 했습니다.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인 '아기', 그리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마음을 위로해주는데서 큰 보람을 느끼곤 하는 '내 성향',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인 '글쓰기'... 이 모두를 녹여낼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아주 많이 고민하다 '맘맘(엄마 마음) 치유 글쓰기'라는 이름을 생각해 냈습니다.
엄마로서 내딛는 새로운 세상이 마치 벼랑 끝인 것처럼 너무 버겁고 막막하고 위태로웠던 그때의 나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숨죽인 채 눈물 흘리고 있거나 어쩌면 위험한 생각까지도 하고 있을지 모를 육아맘들을 친정 언니의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었고요,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었고 마음 치유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글쓰기'로 말이죠.
그래서 '맘맘 치유 글쓰기' 네이버 밴드도 만들었고 블로그에 글쓰기 관련 포스팅도 올리기 시작했고 브런치에도 육아맘, 육아 대디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 나가기도 했지요.
그러던 중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한 강의 사이트 측으로부터 '맘맘 치유 글쓰기' 강의 영상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은 거였어요. 사실 처음 그쪽에서 원했던 건 방송작가 입문에 관한 강의 영상이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도록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제게 다른 방향의 제안을 해 주신 거죠.
강의 경력이라곤 1도 없고 가진 거라곤 20년 넘게 쌓아온 작가 경력과, 피(?) 튀기는 육아 전쟁 속에서 만들어진 '마음의 근육' 정도뿐인데 과연 누굴 가르칠 자격이 되나... 수십 차례 자문을 해 봤는데요, 일단 저질러보기로 했습니다. 육아맘들이 글쓰기로 행복을 찾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찐이니까요.
얼굴 공개를 하냐 안 하냐, 자막은 어떻게 넣고 그림은 어떻게 채울 것이냐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소개 영상과 1강 영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리고 틈틈이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고 제 경험들도 더듬어가며 나머지 강의 원고들을 써 나가고 있어요. 물론 아직 굉장히 미흡합니다만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제 강의로 인해 용기를 얻는다면, 자신을 다독이고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에요. 단 하루라도 더 '작가'의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시작했던 모든 일들... 그 끝에서 그래도 저와 나름 잘 어울리는 일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강의를 준비하며 주변 엄마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도요. 그간의 '삽질들의 합'에서 나온 용기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날 달라지게 했어요.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가능성도 크겠지요. 창피할 정도로 조촐(?)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될지도요. 하지만 마지막 강의에 대한 촬영과 편집까지 모두 마치고 강의를 정식으로 오픈할 때쯤 저는 분명 한 단계쯤 성장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척 기대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