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초코칩쿠키
요즘 들어 날이 부쩍 쌀쌀해졌다.
재희는 입김을 불어 본다. 하얀 연기가 허공을 스치며 금세 사라졌다.
‘춥네... 그냥 집에 갈까.’
버스로 두 정거장만 가면 단골 카페가 있다.
K가 좋아하던 곳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재희는 충동적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집에 있을 땐 몰랐는데 밖은 초저녁임에도 어둑어둑했고,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 다가오는 듯했다. 그 생각에 괜히 마음이 허해졌다.
그때 정류장 스피커에서 “970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미리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나온 덕분에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추웠는데, 잘됐네.’
재희는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빈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두 정거장쯤은 그냥 서 있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없었다.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 퇴근 후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과자를 샀다.
요즘엔 혼자 술을 마시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생각해 보니 거의 매일이었다.
한 달 전, 재희는 K와 이별했다.
둘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CC였다. 스무 살의 봄, 재희는 첫눈에 K에게 반했다.
하얀 피부, 가늘고 고운 손.
대화 내내 시선은 그 손끝에 머물러 있었다.
‘남자 손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그 후로 자주 만나며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어느새 7년이 흘렀다.
재희는 K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통하는 것도 많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이 사람만큼 날 아껴줄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K는 달랐다.
그는 “이제 지쳤다”라고 말했다.
“너무 버겁다. 행복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야. 우리,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재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걸 알았기에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K는 그렇게 떠났다.
그 후로 한 달.
재희는 K와 자주 오던 그 카페에 혼자 왔다.
문을 여니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따뜻한 느낌의 은은한 조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리고 부드러운 음악.
모든 게 여전했다.
씁쓸한 커피 향까지....
‘이곳은 원래 K의 취향이었지.’
그래서 재희는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K가 좋아한 노래, 영화, 카페...
재희는 그가 좋아한 모든 걸 좋아했다.
재희는 따뜻한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유리창 너머로 가을빛이 스며들었다.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아팠던 적은 없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 허무한 자리에는 깊은 절망감만이 남았다.
라떼를 다 마신 뒤 재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 옆 진열장에는 K가 좋아하던 초코칩쿠키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항상 k는 커피와 잘 어울린다며 그 초코칩쿠키를 샀다.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쿠키 하나를 집었다.
“이건 나도 좋아하니까.”
작게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밖으로 나서자 찬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덜 춥게 느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재희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 한켠은 조금 덜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