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차이

아라비안나이트

by 플러스발상

초등학교 때는 왜 그리 장기자랑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체육시간만큼이나 싫었던 게 장기자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담임선생님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갑자기 번호 순서대로 나와서 각자 장기자랑 하나씩 하라고 시켰다. 당연히 교실은 난리가 났다. 소심한 아이였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며 들떠있었지만 나는 어떤 걸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45명 중 32번이었던 나는 제법 생각할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조차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 내가 잘한다고 할만한 건 없었다. 공부도 그저 그랬고 피아노를 6년이나 배웠지만 꾸준히 다니지 않아서 인지 실력도 그럭저럭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피아노 연주뿐이었다.

그 당시엔 문방구에 가면 가요나 클래식 악보를 쉽게 살 수 있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악보를 몇 개 사서 집에서 연습하곤 했다.

그 악보들 중에 악보를 보지 않고 칠 수 있는 곡이 있는지 떠올려봤고 다행히 딱 한곡이 생각났다.

제목은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당시 꽤 인기 있던 곡이라 그 음악으로 정하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내 차례를 숨죽여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피아노 앞에 앉아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그날따라 건반이 유난히 낯설어 보였다.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지만 다행히 손가락은 악보를 기억했고 미숙하게나마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계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몇 번이나 틀렸지만 어쨌든 한곡을 끝까지 연주했다.

연주하는 동안 내 귓가에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긴 했지만 나는 내가 틀린

부분들만 계속 떠올랐다. 연주를 마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로 돌아왔다. 박수소리를 듣긴 했지만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렇게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시간이 훌쩍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초등학교 친구 몇 명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사는 곳도, 환경도 달랐지만 우리는 옛 추억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그때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6학년 말에 했던 그 장기자랑이었다.

정말 놀라웠던 건 아이들의 기억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피아노 연주가
친구들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장기자랑이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같은 시간을 지나왔어도
기억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 일을 떠올린 뒤로
나는 과거의 나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실수투성이였고 떨렸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연주했던 아이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괜찮았고, 더 용기 있었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꽤 반짝이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부끄러웠던 기억들도
조금은 다정하게 바라봐 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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