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의 소설 쓰기

글쓰기의 고통과 행복

by 은하수

2년 전 어느 겨울날,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책, 여행, 글쓰기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한비야와 김남희를 읽고 자랐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블로그를 끄적이며 전업 여행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100/28, 좁고 낡은 자취방에 살던 시절이 지긋지긋해 삼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악착같이 참고 버틴 덕분에 그제야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금을 놓치면 접어둔 꿈을 다시는 펼칠 수 없을 것 같단 직감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 모임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소설 쓰기 모임을 발견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년 남짓. 퇴직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여행 에세이를 독립 출판했더라면 오히려 후련한 마음으로 작가의 꿈을 접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하필 소설이었을까. 역시 호기심이 문제였다. 매주 4페이지 남짓한 엽편 소설을 제출하는 과제였는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크나큰 몰입감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시점조차 일관되지 않은 글을 썼지만 점점 욕심이 났다. 이야기를 완결내기 위해 매주 제출하는 분량이 길어졌다.


그렇게 태어난 글들은 마치 자식 같았다.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태어난 아테나처럼 머리를 끙끙 싸매고 산고를 겪어 탄생한 자식들이었다. 물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레벨 0에서 시작한 탓에 글은 빠르게 늘었지만 쉽게 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내가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장이 수려하거나 구성을 잘 짠다거나 천재라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엉덩이도 꽤 무거워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컨트롤 프릭 같은 면모가 있어서일까 내 손끝에서 창조된 세상에 푹 빠져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이름이 박힌 종이책을 갖고 싶었다. 독립 출판이 빠를 것 같아서 수개월간 강의도 들었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없어졌다.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하던 날, 사람들은 내게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정말이지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소설을 쓰고 있지만 이름이 없는 나를 작가라고 해도 될까?


회사를 나온 순간부터 세상을 부유하는 주변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하게 됐다.

"회사 그만두고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어요. 아직 출간된 작품은 없지만요."

변명하듯 나를 소개하게 된다. 자기소개 인사말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무를수록 나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글 쓰는 백수 시절이 좋았다. 백수의 신분으로 소설 쓰기의 세계에 빠져 탐닉하던 삶도 얼마 가진 못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자 사무직 파트타임을 구해 글쓰기와 병행해야 했다. 소설을 쓴다는 내 말에 부장님은 한강이 되려는 거냐고 물었다.

"아뇨. 저는 SF 써요."

부장님은 SF가 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토지> 같은 책 얘기를 몇 번 꺼내다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계속되는 연락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집에 돌아와 글 쓸 기력이 없었다.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자 급속도로 불행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올해 여름 생애 첫 권고사직을 겪었다.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이 살짝 꺾였지만 그래도 내 진짜 일은 소설 쓰기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다시 글을 쓰자 정신이 맑아졌다. 불행이 씻긴 듯 사라졌다. 대신 미래와 생계에 대한 불안과 실력의 한계를 직면하는 고통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작은 출판사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내 이름이 적힌 책이 곧 세상에 나오게 된다. 고백하자면 싸인 연습도 해보고 작가 소개 글도 고민했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작가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또 다른 공모전 낙선 발표가 났다. 다음 작품은 언제쯤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소설 쓰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신내림을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내게 소설 쓰기를 점지한 기분이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길이 없지만,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될 수도, 마흔 살에 등단한 박완서도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내가 완벽주의와 불안과 맞서 싸우며 고독한 소설 쓰기의 여정을 이어 나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