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시간이 멈춰버린 엄마들에게

by Eeun


내 아이가 어쩌면 또래와 다를 수도 있겠다는 것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짐작하는 것과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나의 경우, 아이가 12개월이 될 때까지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부정의 기간이 2년여간 이어졌다. 분명히 그 작은 입으로 ’ 마, 엄마, ‘하는 옹알이를 내가 여러 번 들었는데, 우리 아이에게 다른 문제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아이에게 어떤 발달상의 문제가 있다면, 말을 아예 못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여느 부모들처럼 나도 내 아이가 너무 예뻤고,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문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어른스럽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굉장히 어른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가 한없이 아이 같고 철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른이 훌쩍 넘어 삼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이 시기에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난과 실패를 겪어봐야 성장한다고 했던가, 그리 진취적이진 않았던 나의 젊은 20대는 평탄했다. 실패도 했고 나름의 고난도 있었지만, 모두 무리 없이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서른 살, 첫 아이 출산 이후의 내 삶에서 아이와 관련된 어려움과 좌절은 내가 쉽게 이겨내거나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수없이 곱씹었고, 선행을 베풀며 살진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고의로 상처를 주려 하지 않고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울분이 끓어올랐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분명히 앞선 몇 년의 기간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매일 울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던 나는 이제 없다. 내 아이와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내어놓는 것이 옳은 것일지에 대한 고민도 없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 뿐, 나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엄마이고 미성숙한 어른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첫 아이를 만나기 전의 내 삶은 사실 주변을 돌아보는 삶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신경 쓰기 바빴고, 친구들과의 소소한 고민이나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또래 관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펴봐 주기에는 나는 미성숙했고, 나 자신만 알았다. 학창 시절 언제인가 특수학교 개설과 관련하여 부모님들께서 무릎 꿇고 울부짖으며 특수학교의 설립 필요성,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분들의 울음이 날 울리진 못했다. 아이들이 그런 문제가 있게 태어난 것은 사실 부모의 잘못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과한 흡연을 했다거나, 임신 중에 술을 마셨다거나,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술이라고는 꼭 마셔야 할 상황에 한해서 늘 세 잔을 넘기지 않게 마셨고, 담배는 입에 대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부모님의 바람 아래에서 착실하고 어찌 보면 지루하게 살아온 모범적인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특수학교 설립을 무릎 꿇고 부탁하는 부모님들의 영상을 몇 년 뒤 우연히 다시 보았다. 나는 그분들과 함께 울었다.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몰려왔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내 일이 아니었던 일이, 이제는 내 일이었다. 우리 첫 아이는 2019년 1월생, 꽉 찬 7살로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발달장애도 자폐스펙트럼도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도 많이 다르다. 정도의 차이는 크다. 부모님들이 각자 놓인 환경과 상황은 모두 다르다. 내 아이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더 묵묵히 이 어려움을 현명하게 이겨나가며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고 계실 부모님들도 분명히 많을 것임을 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주는 매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이 놓쳤다. 나만 힘든 줄 알았고,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보아 주지 못했고, 아이 아빠를 원망 섞인 모진 말들로 힘들게 했으며, 늘 누구보다 곁에서 든든히 딸을 지원해 주시던 친정엄마에게도 종종 가시가 돋친 말을 쏟아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엄마의 시간은 멈춰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계속 부정해 가며,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가 푹 젖도록 울다가 눈물을 닦으며 핸드폰을 집는다. 느린 아이 부모님들이 가입되어 소통하는 온라인 카페에 글을 써본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의 행동을 더듬어 떠올리며 장문의 글을 쓴다. 글의 마무리는 대부분 질문으로 끝난다. 자폐가 아니지 않냐, 그냥 느린 것 아니냐, 다른 아이도 이렇게 행동하냐는 내용들. 일말의 희망을 품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며 또 눈물을 쏟다가, 저쪽에서 사고를 치고 있는 아이를 보며 화가 치민다. 아이에게 가서 타일러보고 하지 말라 하고 화를 내다가 아이를 안고 펑펑 운다. 엄마 속도 모르는 아이는 웃고 있고, 그 모습을 보는 엄마 마음은 또 무너진다. ‘너는 왜 엄마를 힘들게 하니,’라고 하며 울부짖던 엄마의 모습은 사실 몇 년 전의 내 모습이다.


남편은 결혼하고 늘 바빴다. 이전보단 덜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바쁘다. 결혼하고 6년간 남편은 저녁 11시나 되어서야 귀가했다(출근은 9시 이후이긴 했다). 귀가가 늦는 아빠 덕분인지, 아이들도 아빠가 돌아올 시간쯤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남편은 주말에도 연구한다며 집을 나갔었고, 나는 신혼도 없었다시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 긴 기간을 버텼나 싶지만, 그 당시에는 꿈을 이루겠다며 홀로 묵묵히 자신과 싸우는 남편도 짠해 보였다. 지금도 주말 약속이 잦고, 평일에도 일찍 귀가해야 8시 30분인 나의 남편은 내게 넘겼던 독박 육아라는 짐을 언제 덜어줄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좀 같이 할 때도 됐는데 말이다. 며칠 전에, 평일과 주말의 회사 일정을 조금은 미안해하는 눈치로 내게 말하던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있잖아, 좀 너무한 거 같지 않아?”, 남편이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집을 떠나 회사로 간 남편의 시간은 흐른다. 전업으로 집에서 아이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지만, 보육 기관에 보내지 않고 아이와 집에 있는 동안 엄마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과도 같다. 특히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과 버거운 감정들은 엄마들의 눈을 가리며, 귀를 막는다. 발목을 잡고, 주저앉게 하려고 한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또래의 정상 발달 아이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리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무력함도 느껴진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눈물 안 훔쳐본 엄마 없고, 내면이 아주 강인하고 단단한 엄마라면 몰라도 우울증의 문턱까지 안 가본 엄마는 없으리라 감히 생각한다. 느린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아이의 엄마다. 지금은 거리가 멀어, 다니지 못하게 된 센터지만, 우리 아이가 3년 넘게 만났던 언어치료사 선생님과의 첫 상담 장면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어머님, 어머님이 행복하셔야 해요.” 그 말을 듣고 정말 펑펑 울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몇 년 동안 행복을 잊고 살았고 불행했다. 잊고 있었던 행복을 찾는 일은 오래 걸렸다. 멈춰있었던 톱니바퀴가 이제 서서히 돌아간다. 내 아픔은 시간이 무디게 해 준 것일까? 아니면 멈춰있던 나와 달리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해 온 우리 아이가 달래준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조금만 울 것이다. 울고 화내는 대신에,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봐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줘야지. 내 시간은 이제 멈춰있지 않다. 아이에게 못 해줬던 표현과 사랑들을 충분히 하기에 시간은 짧고 아이는 빠르게 큰다.


이 글을 읽을 부모님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자신을 내려놓지 말고 아이와 함께 매일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면 쉬어가도 좋지만, 그 쉼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걱정과 원망과 분노로 자신을 옭아매지 말고, 우린 우리대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엄마, 아빠.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이 여정은 분명 다른 이들보다 힘들겠지만, 분명 어떤 뜻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가피한 고통이라면 현명하게 부딪치고 상처를 서로 보듬어가며 딛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나, 아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를, 큰 힘이 되어주진 못할지라도 도움은 되어줄 수 있기를, 한없이 마음이 아플 때 위로를 줄 수 있는 토닥임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글을 쓰며 치유받고 성장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