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1.

by 타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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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남자는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예라는 그대로 돌이 되어 거실에 우뚝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가만, 저 남자... 생각 하려던 것도 잠시,

2미터 정도 되는 키에 단단한 근육과 골격을 갖춘 몸으로 저절로 시선이 갔다.

체형만 보면 헬스 트레이너라도 되는 것 같지만, 생김새는 반전이었다.

날렵하고 오똑한 콧날과 부드럽게 잘 빠진 턱 선.

짙게 색칠해진 눈썹 아래로 긴 속눈썹 때문에 깊어 보이는 눈매까지.

대략, 티비나 잡지, 그런데서나 볼 수 있는 비주얼이었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몇 초 전의 놀람도 잊고, 예라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그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소파로 걸어가 앉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넘어 온 지 얼마 안되는 모양인데, 여긴 내 구역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구사하는 단어들이 좀 생소하긴 했다.

어쨌거나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내가 잘못 들어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예라는 뒤돌아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오려다, 어 잠깐-

잡고 있는 현관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번호 누르고 열었는데....”

문 밖에 붙어있는 번호를 확인했다.

1055.

내 집 맞는데...?!

헉, 뭐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무단 침입...?!

순간 예라를 구성하고 있는 온몸의 신경세포가 일렬로 정렬했다.

뒷덜미로 싸한 바람이 지나갔고 모든 솜털이 빳빳한 가시처럼 바짝 곤두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꽈악- 현관문을 잡고 고정 한 채, 예라는 핸드폰을 치켜 들고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경찰 부르기 전에, 다, 당장 나가..!”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고작 그녀의 의도에 불과했다.

실제 들린 그녀의 목소리는 폭우에 휩쓸리는 종이 배 마냥 위태롭고 애처로웠다.

<아가씨, 여기 내 집이라고. 딴 데 찾아 보시라구요!>

곱상했던 얼굴이 순간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눈에 빡 힘까지 주었다.

깊어 보였던 눈매가 돌연 위험천만한 범죄자의 눈빛으로 돌변했다.

예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쳇, 아직 제 정신이 아니구만....>

남자는 그런 예라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며 비웃었다.

“여, 여보세요, 여기, 여기 대장동 삼호 오피스텔인데요, 저희 집에 왠 남자가...”

가만히 예라를 보고 있던 남자가 슥-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지를 표현하듯 문고리를 잡은 예라의 손은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손에는 땀이 비오 듯 했다.

[여보세요. 지금 집에 낯선 남자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네 빨리요! 천 오십오호요. 빨리요! 빨리 와주세요!!”

남자는 표정 없이 예라를 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네, 대장동 삼호 호피스텔요. 전화 하시는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악-! 절 죽이려고 해요! 악!!”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속 남자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배경 음악이 되었고 예라는 뒤도 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녀 인생에서 그렇게 까지 빨리 뛰어본 적은 없었다.

오피스텔 복도는 마치 동굴 같았다.

그녀의 외침은 쩌렁쩌렁하게 그곳을 채웠다.

문 밖까지 나온 남자는 정신없이 사라지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헐 뭐야... 진짜 사람이었어...?>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지금, 내가 보인 거야..?>

귀신인 자신을 알아보기에, 그녀 역시 같은 상태인 줄 알았다.

<처음이네, 나 보인 사람...>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작게 되돌아오다 그마저도 들리지 않게 희미해졌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헐-을 연발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


시간을 되돌려, 그날 오후 시간.

역시 평일로 이사 날을 잡는 게 아니었다.

일하는 내내 예라는 몸만 학교에 있을 뿐, 온 신경은 이사 현장에 가 있었다.

제이가 없었다면 얼굴도 못 본 이삿짐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살림을 맡길 뻔했다.

광장 고등학교.

스물아홉 살 예라는 이 학교의 영양 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이 학교로 오게 된 후, 근처로 이사를 결정했다.

원래 살던 집과 거리도 멀었고, 절친인 제이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고 있었다.

“포장 잘 하고 있지? 귀중품은 미리 잘 챙긴 거지?”

점심 준비로 식당 안도 바쁘고 예라의 마음도 바빴다.

오늘의 메뉴 ‘후라이드 윙’으로 변신하기 위해 뽀얀 속살을 드러낸 닭 날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함께 일하는 이모님 중 예라의 사정을 아는 몇 분이 눈짓을 주셨다.

‘괜찮으니까 통화해’

마스크 속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았지만 예라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뒷 문으로 향했다.

[야 하예라, 너 일은 안 하냐? 왜 계속 전화야. 신경 끄라니까]

“내가 그냥 하루 연차 쓸 걸 그랬나봐”

출근한 지 두 달도 안 된 직장이라 눈치가 보였다.

한 달 전 이삿짐 센터에서는 분명 토요일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주일 전, 연락이 왔다.

직원이 실수로 예약을 잡았다며 토요일은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취소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사람은 예라였다.

당장 일주일을 남기고 원하는 이사 날을 잡는 건 무리였다.

사정을 알게 된 제이가 대신 연차를 쓰고 봐주기로 했다.

[걱정마시구요, 애들 밥이나 맛나게 만드세요 영양사 님]

“고마워. 저녁엔 병원 갈 거지? 너무 안 늦겠어?”

[그 전에 끝날 거 같아. 이삿날인데 같이 짜장면 못 먹어줘서 미안]

저녁에 볼 일이 있는 제이는 예라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미안은. 내가 미안하지. 주말에 집들이 거하게 하자”

[당연하지! 아, 현관 비번은 니가 말해준 대로 세팅해둔다]

“그래, 수고하고~”

전화를 끊은 예라는 뒷문을 열고 다시 삶의 현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


예라의 부모님은 5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대학 졸업 후 받은 첫 월급으로 예라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맞춰 통 큰 선물을 준비했었다.

속초에서 제일 비싸다는 호텔을 예약하고 유명하다는 맛집도 알아뒀다.

두 분이 오롯이 보낼 고급진 호텔 방엔 값비싼 샴페인과 꽃도 부탁해 뒀었다.

그날 아침 두 분은, 딸의 기특한 선물에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나셨다.

속초로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10 중 추돌 사고가 났다.

사고를 당한 차량 중에 예라 부모님의 차량도 포함됐다.

그렇게 부모님은 행복을 만끽하시던 순간, 원치 않게 생을 마감하시고 말았다.

갑작스레 두 분을 보내고 덩그러니 남겨진 집에서 예라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종종 제이가 찾아와 예라가 살아있는 지를 확인했다.

처음 입사했던 회사엔 그대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렇게 일 년, 이년.. 몇 년인지도 모를 시간을 폐인처럼 지냈다.

제이는 예라에게 이사 할 것을 제안했지만 예라는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다.

그 집을 떠나면 부모님 곁을 떠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 머물면 매일이 슬픔이었고 그리움 투성이였다.

그렇게 우울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쉽게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이의 끈질긴 돌봄 덕에 결국 예라는 다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집과도 이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결정한 이사였다.


**


오피스텔 근처 버스 정류장.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차가 나타났다.

사람들 사이에 몸을 피하고 있던 예라는 경찰차를 보자 은인을 만난 듯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왔다.

“여기요! 여기요!”

예라를 확인한 경찰차가 오피스텔 앞에 멈춰섰다.

“신고하신 분 맞으세요?”

경찰 두 명이 차에서 내리며 예라에게 물었다.

“네! 저에요. 저의 집에 누가 있어요! 어떤 남자가 무단 침입했어요!”

그 말을 입에 올리려니 또다시 가슴이 콩닥거렸다.

경찰들은 예라에게 주소를 묻고 서둘러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예라의 집 앞. 두 경찰관이 조심스럽게 위치를 잡고 서서 안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했다.

예라도 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신의 집이 보이는 복도 쪽으로 들어섰다.

경찰관은 예라가 알려준 번호를 눌렀다.

띠 띠 띠 띠.....

철컥-

“꼼짝마-!!”

부서질 듯 문을 열고 두 경찰관이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복도 끝에서 광경을 보고 있던 예라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