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정

2.

by 타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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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마!”

위협적인 외침에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해 질 녘 창가에 서서 세상 밖을 내다보는 지금은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이승이 아닌 곳의 존재가 된 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평온한 마음을 느끼는 시간을 훼방받게 된 셈이다.

조금 전 여자의 한바탕 소동은 끝난 줄 알았는데, 이번엔 경찰이 테이저건까지 겨누며 집에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남자는 구석으로 발을 옮겼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의 행동은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탁-

거실의 불이 켜졌다.

경찰은 거실과 안방을 조심스럽게 훑어보았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휴...

남자는 구석에 놓인 공기청정기 뒤로 기대서며 그들이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설사 코앞으로 다가가 욕을 하고 나가라 삿대질해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다른 세상의 존재로 사는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에, 남자는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귀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듯, 그도 아직은 사람의 시선이 겁났다.

언제쯤 나에게 적응하려나...

남자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죽으면 하늘나라로 직행하는 줄 알았다.

천당이나 지옥, 이런 데로 친절하게 안내받는 줄 알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나 우아하게 손을 잡아주거나, 시커먼 저승사자라도 등장해서 이것저것 설명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도 죽어본 건 처음이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짐작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그는 죽은 채로 똑같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나 깨달은 건,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가 제한적이라는 것.

귀신이 되면 눈만 감았다 떠도 상상한 그곳에 짠- 나타날 줄 알았지만, 그가 드나들 수 있는 구역은 어느 정도 정해진 듯했다.

처음엔 실려 왔던 병원 주변만 배회했다.

병원엔 그와 같은 저승의 사람들이 지나가다 부딪힐 정도로 많았다.

죽었으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배회하거나, 깨끗하고 긴박한 그곳이 취향에 맞아 아예 기거하기로 한 존재들이었다.

<어 새로 왔나 보네~>

<아직 좀 어색하죠?>

<그냥 지금부터 안 먹고 안 늙고 산다- 이렇게 생각해요>

지나치듯 만난 나 같은 존재들은 꽤 친절하게 남자에게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그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왜냐. 무서웠으니까.

귀신이 된 그였지만, 귀신인 그들이 무섭고 소름 끼쳤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나와 인근 동네를 배회했다.

가능하면 저승 인들을 덜 마주칠 수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어느 날, 병원에서 10km 정도쯤 되는 반경을 벗어나자 몸이 더는 움직이질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혔다고 해야 할까.

바로 앞에 보이는 곳으로 몸이 나아가질 못했다.

남자는 그 반경 안에서 살 곳을 찾아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괜찮은 집을 찾기 위해 며칠을 밤낮으로 돌아다녔다.

집을 구한다는 건, 산 자들에게도 죽은 자들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된다는 건, 아주 큰 장점이자 혜택이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선택한 곳이 바로 대장동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오래된 건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최근에 지어진 건물도 아니었다.

적당히 오래됐고 적당히 깔끔했다.

그곳은 그가 실려왔던 병원이나 근처 학교로 출퇴근하는 미혼의 직장인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조용히 지내고 싶어 비어있는 집 위주로 하나하나 꼼꼼히 방문했다.

꽤 정성 들여 골랐다는 거다.

<전망도 괜찮고, 하수구 냄새도 안 올라오는 거 같고, 이 정도면 괜찮겠어>

1055호.

적당히 높고, 적당히 낮은 층.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공원이 알맞게 시야에 들어오는 그런 층이었다.

돈이 없어도 되는 것 말고 또 편해진 건 벽과 문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습관 때문에 어느 곳이건 손잡이부터 잡으려고 했다.

당연히 이승의 것들은 남자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벽과 문을 통과하는 게 어떤 능력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이승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1055호로 거처를 정한 후, 꽤 마음이 안정됐다. 그리고 비로소 친구가 생각났다.

‘보검이 새끼는 어떻게 된 거야...’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였다.

아직 같은 존재로 만난 적은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긴 했지만 살아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고로 정신을 잃는 순간 시간이 멈춘 셈이니,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었다.

현재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고 직후 병원에 실려온 것 같으며 어느 정도일지 모를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육체에서 공기도 연기도 아닌 지금의 존재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마치 초능력이라도 생긴 듯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픽션은 픽션이었다.

병원을 나와 주변을 배회하던 그는 또래 남자들이 그렇듯 많은 시간을 피시방에서 보냈다.

페이커가 그랬다. 우리나라가 게임을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재양성 시스템이 되게 잘 되어있어서라고.

바로 그, 피시방.

저마다 프로 게이머 급이었다.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쩌다 특이하게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횡재한 기분이었다.

최근 유행 영상을 보는 초딩들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대체로 불만 없는 그곳이었지만 때때로 고난의 시간이 찾아오곤 했는데, 바로 아는 맛이 더 무서운 피시방 음식들을 마주할 때였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그 욕망 덕에, 이승의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잠재능력을 깨우치고 말았다.

어느 날, 한 무리의 게임을 빠져서 보고 있었다.

몸풀기로 한판을 마친 고딩들은 헌데, 곧바로 다음 판을 시작하지 않았다.

“야, 일단 먹고 빡시게 달리자. 콜?”

<아니야, 얘들아, 뭘 먹어. 겜방에 왔으면 달려야지->

간절한 그의 바람과 손짓과 표정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했다.

<얘들아, 여긴 식당이 아니라고..!>

하지만 기어이 고문 같은 시간이 다가왔다. 더불어 하필 밀폐된 공간이라니.

미친 음식 냄새는 왜 죽은 자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인지...!

후루룩 거리며 입에 들어가는 라면과 푸짐하게 참치가 들어있는 김밥, 시각을 자극하는 시뻘건 떡볶이..

돌아 있으나 보고 있으나 못 먹는 건 매한가지여서, 동공으로라도 먹을 심산으로 그는 그 애들의 음식과 입과 젓가락 사이를 집요하게 쫓았다.

주룩-

저도 모르게 침이 흘렀다.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눈이 매워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왜 게임을 하러 와서 처먹고들 있냐고 이 새끼들은!!>

화가 났다.

<에이 씨발!!>

몸을 태울 것 같은 분노를 담아 마지막 김밥이 놓인 접시 옆 테이블을 내리쳤다.

틱. 접시가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한 아이가 그걸 감지했다.

“어, 야.. 지금 이거 움직였지...?”

다른 놈들은 먹느라, 틀어놓은 게임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래, 미친놈이. 남은 거나 처먹어”

고딩들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끄럽게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놀란 건, 움직임을 목격한 학생도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다.

<대박...! 역시, 할 수 있는 게 있었어..!>

그렇게 하나씩 그는 저승 인의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한 달 전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


“들어와 보세요. 층수도 적당하고 이쪽이 전망이 트여서 딱 좋아요”

한눈에 봐도 부동산 중개인 모습의 중년 여자와 한 여자가 그의 집에 들어섰다.

그는 겁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이사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각성한 능력을 뽐내고 싶기도 했다.

창문을 열리게 하려고 그 앞에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간절함이 똘똘 뭉치면, 이승의 물체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그렇게 열라 집중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금세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뭐야...?! 괜히 힘쓸 뻔했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집이 맘에 안 들어 그렇게 가버렸나 했다.

헌데 오늘 아침, 이삿짐과 함께 쓰나미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적해진 저녁엔 웬 여자가 나타나 핸드폰을 치켜들더니 비명을 지르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테이저건을 손에 든 경찰 둘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내 집에 들이닥쳤다.

그 여자 때문이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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