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홀린 듯

3.

by 타프씨

.

“그쪽은 어때?”

중년 경찰이 부엌 뒤 팬트리를 둘러보고 나오는 젊은 경찰에게 물었다.

“이쪽도 별거 없는데요”

“뭐야.. 잘못 본 거야, 벌써 튄 거야..”

중년 경찰이 거실 창가로 다가가자 젊은 경찰도 그쪽으로 향했다.

모서리 벽에 기대 있던 남자는 그들이 가까워지자 내쉬던 한숨도 멈췄다.

경찰들은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뛰어내린 거 같진 않은데요..”

젊은 경찰이 높이를 가늠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CCTV 확인해 보면 알겠지. 신고자분 좀 오시라고 해”

“넵”

젊은 경찰이 복도로 나가고, 중년 경찰은 창문을 닫고 돌아서다 모서리에 놓인 공기청정기에서 시선 멈췄다.

<왜..? 뭐..?!>

남자는 이제 숨까지 참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선이 마주칠까 눈길도 피하고 있던 참이다.

중년 경찰이 천천히 남자 쪽으로 다가왔다.

<아씨 이 양반 왜 이래...!>

식은땀이 확 올라왔다.

코앞에서 멈춰 선 중년 경찰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길은 마치 남자의 어깨라도 잡으려는 듯 가까워졌다.

“아무도 없다구요?”

예라의 목소리에 뻗은 손을 거두며 중년 경찰이 돌아섰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끄러미 들여다보는 예라 뒤로 젊은 경찰도 따라 들어왔다.

“네. 보시다시피 아무도 없는데요”

중년 경찰은 예라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잘 보신 거예요? 키도 크고 몸도 꽤 좋았는데..”

예라는 불신 가득한 얼굴을 하고 제집을 남의 집 들여다보듯 기웃거렸다.

'말도 안 돼.. 분명히 봤다고 내가'

미친 듯 건물 밖으로 나간 예라는 일부러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인파에 자신을 희석하고 나서야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입구를 주시했다.

분명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가 휘둥그레한 표정으로 나와 내가 사라진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오피스텔의 출입구는 하나뿐이다. 계단으로 내려왔건, 엘리베이터를 탔건, 어쨌든 건물을 나오려면 그녀가 볼 수밖에 없었다.

“서에 가서 도로 CCTV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 같지도 않구요”

중년 경찰은 그만 돌아가자는 듯한 눈짓을 젊은 경찰에게 보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이사를 했거든요. 근데 제가 와보질 못해서, 아까는 저도 여길 처음 오다 보니까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두 경찰은 예라의 말을 끊진 않았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아무도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집에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가 전망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하고, 제가 잘 몰라서 친구가 구해준 집이거든요. 이 동네 사는 친구가요”

제이는 엄마의 동창의, 아들의, 부인이 하는 부동산을 소개받았다고 했다.

이곳에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 말고도 예라에게 제이는 특별한 친구였다. 그 애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친구였다.

제이라면 기필코 팥메주를 만들고야 말 위인이니까.

하루 휴가까지 내 가며 이사를 도와줬는데..

예라는 답답했다. 새 보금자리를 이런 식으로 들어오게 될 줄이야.

실내는 이사 한 첫날답게 어수선했다.

큰 짐들은 자리를 잡았지만, 자잘한 짐들이 아직 여기저기 대충 쌓여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거 아니면 아마 출입구로 나간 거 찍혔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거실 가운데 꽂아놓은 깃발처럼 꼿꼿이 서서 예라는 눈으로 집안을 훑었다.

그녀에게 그들의 말은 이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저희는 일단 돌아가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라는 스캔하듯 안방을 둘러본 후 다시 부엌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그녀에게서 멀어져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예라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가려던 중년 경찰은 젊은 경찰에게 눈짓을 보냈다. 젊은 경찰은 윗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현관에 놓인 이사 박스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연락하실 일 있으시면....”

“저기요....!”

순간 예라가 소리쳤다.

“네??”

날카로운 예라 목소리에 놀라 젊은 경찰은 명함을 떨어뜨렸다.

“뭐가 있어요?”

중년 경찰이 다시 거실로 들어오며 예라 쪽으로 향했다.

“저.. 저기...”

예라는 한 곳을 주시한 채 돌덩이가 된 것처럼 굳어있었다.

예라 옆에 다가선 중년 경찰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공기청정기가 보이는 모서리를 보며 그녀는 떨고 있었다.

“저기가 왜요? 신고자분?”

보였다. 예라 눈에는 그 뒤에 몸을 감추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눈도 깜빡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또 감쪽같이 사라질 것 같았다.

젊은 경찰까지 다가와 예라의 시선을 쫓았다.

하지만 그곳은 거실 모서리와 그 앞에 놓인 공기청정기뿐이었다.

젊은 경찰은 중년 경찰을 보며 어떡하냐고 입으로 물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중년 경찰이 다시 예라를 보며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고자분. 저기도 그렇고 다른 데도 봤는데 아무도 없거든요. 지금 좀 흥분하셔서..”

<쉿.......!!>

그놈이 움직였다.

기다란 집게손가락을 세로로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마치 경고라도 하듯.

“....흡....!”

예라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칼이 곤두섰다.

“저희는 일단 돌아갈 테니까, 무슨 일 있으시면...”

“으악-----!!”

천장이 내려앉을 듯한 고함과 함께 예라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도, 경찰도 남겨둔 채 저 혼자 정신없이.

“저기요! 신고자분! 잠시만요!!”

황당한 표정의 두 경찰도 그녀를 따라나섰다.


*


경찰차가 조용히 달려오다 길가에 멈췄다.

몇 시간 사이 일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예라가 경찰들에게 인사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감사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중년 경찰이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시고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라는 반은 정신 나간 얼굴을 하고 허둥지둥 멀어졌다. 친구네 집으로 간다고 했다.

중년 경찰이 창문을 올리자 젊은 경찰은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젊은 경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귀신.. 보는 여자예요..?”

“모르지 뭐, 진짜 웬 놈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근데 아까 왜 거기 계셨어요? 신고자분 들어가기 전에요”

“아. 공기청정기가 좋아 보이더라고. 어디 껀가 자세히 좀 보려고 했지”

“아.. 얼마 전에 새로 나왔어요. 저희도 하나 샀는데..”

두 경찰은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며 경찰서로 향했다.


*


예라는 제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분명히 있었는데....!’

분명히 거기 있었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환상을 본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남자와 예라는 정말 눈이 마주쳤다.

그리라면 조잡하나마 그 낮짝을 그릴 수도 있겠다.

그 눈도, 조용히 하라며 입게 가져갔던 그 기다란 손가락도. 또..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제이가 신발을 벗어던지고 뛰어 들어왔다.

“야 뭔 소리야?! 어떤 놈인데?!”

“제이야--”

예라는 다가온 제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참고 있던 눈물이 확 쏟아졌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괜찮은 거지?”

제이의 질문에 예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경찰은 뭐래? 어떻게 한 대?”

“연락 준대. 씨씨티비 확인하고”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이사 첫날부터”

“근데 제이야...”

“어, 또 뭐?”

제이는 조용히 예라의 말을 기다렸다.

“근데... 나만 보여..”

“뭐...?!”

얘가 정말 많이 놀랬군. 순간 제이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내 눈에만 그놈이 보인다구. 나도 모르겠어..”

아직도 체력이 덜 회복됐나 보다. 그래서 여전히 기가 약한가 보다. 제이는 이해된다는 얼굴이었다.

“설마 뭐, 귀신같은 거...?! 너 귀신 보였어?”

“아니! 보고 싶었지, 한때는”

제이도 안다. 예라가 귀신이라도 보고 싶어 했던 그 심정을.

갑작스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예라는 엄마 아빠의 혼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몸이 허약해지고 기가 빠지면 헛것이 보인다기에, 그렇게라도 몸을 만들어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죽을 만큼 기운이 없어져도, 사람이 아닌 뭔가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니까. 니가 귀신보다 더 한 몰골이었어도 안 보였잖아”

“모르겠어. 근데 아까, 나랑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는데...!”

“진짜?! 눈이 마주쳤어? 어떻게 생겼어?!”

“키도 막 이렇게 크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손가락도 길고”

“무섭고 막 징그러워?”

“어? 어.. 그치. 귀신이니까..! 당연히 무섭고 징그럽게 생긴 거 같은데..”

예라의 말꼬리가 웬일인지 쪼그라들었다.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또 그렇게 무서운 것 같진 않고..”

제이는 예라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얘, 괜찮은 거 맞아..? 속마음이 말했다.

“뭐야, 진짜 귀신 맞아?”

“그러게...”

아까처럼 예라는 또 중얼거리며 말꼬리를 흘렸다.

처음엔 놀랬던 게 컸다. 내 집인데 떡하니 앉아있으니, 차은우였어도 아마 놀라 소리쳤을 거다.

경찰과 함께 있을 땐, 소름이 돋았다.

난 보이는데 다른 사람은 안 보인다고 하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제이가 대화하는 이제야 예라는 정면으로 마주했던 남자의 얼굴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떠올릴수록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한번.. 본 사람 같기도 하고..”

“정말? 아는 사람이야?”

“누구라고 떠오르는 건 아닌데.. 알던 사람 같은..”

“잘생겼어?”

제이의 질문에 예라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야, 귀신이 무슨..”

“무섭게 생긴 건 아니라며?”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가 귀신이라서 놀랐던 거지 그가 무섭게 생겨서는 아니었다.

“무서운 건 아니고..”

오 마이 갓..

눈, 코, 입.. 하나씩 떠오르는 그의 얼굴에 예라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헐.. 잘생겼다.

솔직히 잘생긴 남자, 아니 귀신이었다.

예라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생겼어..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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