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검사로 치매에 걸릴 확률을 진단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내 옆의 남자는, 한번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말에는 농담도, 그리고 진담도 섞여있다는 걸 난 안다.
나를 좀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꽤 여러 번 그 기사에 대한 정보를 전해 받기도 했다.
며칠 전 또 한건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교민들이 많은 곳이라
주변에 고깃집, 치킨집, 중국집, 일반 음식점 등 한국 식당이 꽤 많다.
매장에 가지 못하니 한 번씩 집밥이 지겨울 땐 식당 음식을 시켜먹곤 한다.
그날 선택받은 메뉴는, 짜장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
난 핸드폰 전화번호를 켜고 통화를 눌렀다.
"소레~ 사야 마우 뿌산 마까난~"
/ 안녕~ 나 음식 주문하고 싶어~
"이야~ 뿌산 야 아빠?"
/ 엉 그래. 뭐 주문할래?
"짜장면 사뚜, 짬뽕 사뚜, 탕수육..."
/ 짜장 하나, 짬뽕 하나, 탕수육...
"쏘리 뇨냐~ 민따 비짜라 라기?"
/ 미안한데 아줌마~ 다시 한번 말해줄래?
목소리에 좀 힘을 주고 다시.
"짜 장 면 사 뚜, 짬 뽕 사 뚜..."
'새로 온 앤가,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살짝 짜증이 났다.
"쏘리 뇨냐~ 민따 끄뜨랑안 라기~ 수아라냐...."
/ 미안 아줌마~ 정확히 다시 좀. 소리가...
난 더 목소리를 높이고 더 정확히 말했다.
"짜! 장! 면! 사! 뚜! 짬! 뽕!....."
"뇨냐~ 아다 메뉴냐 양뇸 사마 후라이드 사마 오븐...."
/ 아줌마~ 메뉴가 양념이랑 후라이드랑 오븐....
여기까지 듣고 난 얼버무리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쏘리, 사야 난띠 텔레폰 라기 야~"
/ 미안해~ 이따 다시 전화할게~
그리고 주저앉아 한참을 깔깔거렸다.
그렇다.
난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과 짬뽕을 주문하고 있던 거였다. 못 알아듣는다며 살짝 짜증까지 얹어서.
혼자 배꼽 잡고 있는 모습을 본 눈치 빠른 큰 딸은
또 무슨 짓을 저질렀냐며 물어댔고
우르르 합세한 나머지 두 김 씨들까지 나를 추궁했다.
대체, 뭔 헛소리를, 또, 했는지.
결혼 후 지금까지 거의 18년 가까이 글쓰기에 소홀했다.
소홀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절교 상태였다.
고작 쓴다는 건, 달력에 각종 생일과 집안 경조사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그나마 큰 애 때 육아일기랍시고
한 얼마간 성장 모습을 나열했고,
읽는 책도 대부분 육아서적들 뿐이었다.
학부형이 되면서는 달력도 모자라 폰 다이어리에 각종 학교 일정이며 행사들,
챙겨야 할 준비물이나 시험 준비에 대한 것들로도 넘쳐났다.
브런치를 알게 된 일 년 전쯤, 아무 생각 없이
'슬 다시 글 좀 써볼까~'하며 서랍을 열었다.
소재로 적어뒀던 몇 개의 재료 하나를 내 서랍이라는 곳에서 꺼내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줄,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내 손을 자판 위 허공에 그냥 멈춰버렸다.
대화를 하다 단어가 생각 안 나거나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경우는 정말 허다했다.
세 글자면, 한 글자 정도는 다른 걸로 바꿔 말해도
말하는 나나, 듣는 상대도 대충 걸러 듣는 게 지인들과의 일상이었다.
서로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며 "몬살아 몬살아~" 이 한마디로 퉁 치고 지나쳤었다.
막상 글을 쓰는 상황에서 그런 나를 마주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실, 절망적인 느낌에 더 가까웠다.
왕년엔 떠오르는 생각을 손이 따라가질 못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판을 두드렸는데
몇 번의 연습으로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회복한 손가락과 달리
고속도로 같았던 내 머릿속은
일 미터 간격으로 신호등이 깜박이는 그런 답답한 곳이 되어있었다.
조금 달렸다 싶으면 뭐였지..? 하며 또다시 멈춰 서야 했고
꼴랑 몇 줄 되지도 않는 글을 쓰기까지
내가 허비해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았다.
스스로에 대한 쪽팔림과 자괴감에 일 년간 브런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펜데믹이라는 상황은 내가 다시 이곳을 기웃거리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집으로 축소된 좁은 행동반경과 넘쳐나는 시간과 마주하면서
오래 걸려도, 자꾸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서게 되어도
치매 없는 나의 노후를 위해선 글쓰기가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희석된 나의 쪽팔림과 자괴감도 좋은 거름이 되어 주었지만.
아직도 머릿속 고속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꽤 많이 먼지가 쌓였고, 또 노후됐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멈춰 서서 조금씩 닦아보려 한다.
브레이크 한번 밟지 않고 달릴 순 없겠지만
한 번씩 멈춰 섰을 땐, 일부러 멈춘 것처럼 괜히 여유 부리며 하늘도 한번 보고 바람도 느끼면서
천천히 가보려고 한다.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끝이 보이지 않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