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 친엄마가 있다고 했다

by 타프씨

북극한파로 한국에 연일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본다.

새벽까지 소소하게 비가 내렸던 이곳도

회색 구름들이 태양을 가리는 바람에 오늘은 꽤 선선하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내 엄마를 찾겠다며 혈연단신 집을 나왔던 그때가.

대문 밖을 나서자마자 겉옷을 안 챙겨 입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고

에이씨... 를 내뱉으며 몇 초간 옷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었다.

한겨울은 아니었으나 겨울의 초입이었던 당시도

바람은 시리고 차디찼기 때문에.


기껏해야 초등 1학년이나 입학 전이었을 수도 있던 그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은 어른 못지않았는지

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집안에서 입고 있던 모습인 채로 초겨울 난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짓궂은 둘째 외삼촌은 나만 보면 그렇게 놀려댔다.

나이가 들면서 장난이었다는 걸, 철없는 삼촌의 애정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걸 깨닫기 전 까지는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쏙 빠져야 짓궂은 장난이 끝이 났었다.


"봐라, 오빠 언니 다 이쁘게 생겼는데 너만 못생겼지?"

"오빠랑 언니는 '진'짜 돌림인데 너만 가운데가 '은'이지?"

"아빠랑 오빠는 남자라 B형이고 엄마랑 언니는 여자라 A형인데 너만 이상한 AB형이지?"

"주워 온 애라 그래~"


못생겨서 그랬다는 말은 그냥 무시할만했다.

돌림이 다른 것도, '진'을 쓰면 이름이 이상해서 그랬다고 우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갔을까 말까 한 나에게 혈액형 얘기는

삼촌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믿게 만드는

가장 대항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빨리 니 엄마한테 가~"

"니 친엄마 저기 매굣다리 밑에 있어~"


아니라고, 삼촌이나 가라고 빽빽 울고 소리치긴 했지만

내 머리 한켠에는 항상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내 친엄마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겨울의 시작에 있던 그 날,

삼촌도 오지 않았던 그날, 드디어 난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방을 박차고 집 밖으로 나가게 됐다.


엄마와 언니와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귤을 까먹고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오빠는 제일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려 했고

난 밀리지 않기 위해 엄마와 언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치열하게 내 자리를 확보했다.


집안에서 제일 쪼그맣고 어린 게 말도 제일 많고 욕심도 최고였으니,

오빠 언니 눈에 난 정말 꼴 보기 싫은 동생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도 어린애였으니 엄마 곁이 좋았을 나이였는데

항상 엄마 옆은 당연히 내가 차지하려 하고

제일 따뜻한 곳도 당연히 내 것인 양 굴었으니...

결국 그날은 삼촌 대신 오빠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야 너는 니네 집에나 가. 왜 계속 여기서 우리 귀찮게 굴어!"

"그러게 니네 엄마 다리 밑에 있대잖아. 빨리 가봐"


오빠에 이어 언니 엄마까지 장난에 합세하며

난 점점 궁지에 몰렸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척 오빠나 가라며 맞섰지만

상황이 진행될수록 더 이상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나 진짜 갈 거야! 친엄마 찾으러 나 갈 거야!"


발끈하는 내 모습에 재미가 들린 세 사람은

잘 가라~며, 잘 살라며, 날 순순히 보내줬고

난 당당히 방을 박차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루로 나와 신발을 신고 그대로 마당을 거쳐

대문까지 꽝-

그제서야 멈출 수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시간이었지만

정작 방에서 나와 문 밖에 서있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바보같이 겉옷을 들고 나오지 않았음을 한탄하며

스르륵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막상 집을 박차고 나오니

어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할머니네'라 불렀던 엄마의 외가 친척 집.

당시 내 주변 친척 중 가장 잘 사는 집이었다.

이층 집에 대문도 엄청 크고 무엇보다 설날에 가장 우릴 만족시키는 집이었다.


설마 가라고 하진 않겠지?

며칠 정도 있을 수 있을까...

거기서 며칠 있다가 이모네로 갈까...?

이모네 가는 길에 매굣다리가 있으니까..


사실, 난 정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내 친모가 다리 밑에 있다는 삼촌의 그럴싸한 그 말을

아니라고 박박 우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짠가.... 하는 생각이 뒤통수 한 모퉁이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난, 어렸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정말 웃기는 추억이 된 그날의 사건 이후

오빠와 언니도 더 이상 친엄마 소리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철이 없던 삼촌만이 가끔 들려

막내 조카의 우는 모습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한동안 악행을 이어갔다.


그날, 겉옷도 가지러 가지 않게 한 대단한 내 자존심은

차디찬 겨울바람에 몸뚱이와 함께 얼어붙었다가

따뜻한 아랫목의 온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겨울이 되고 차디찬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문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머릿속이 복잡했던 그날의 내가 생각난다.

그 다리를 진짜 가지 못했던 건,

추워서기도 했지만

사실 진짜 친엄마를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거 같다.


그때가 겨울이 아니었다면,

그곳이 한국이 아니라 더위만 있는 곳이어서

추위에 떨 일은 없는 곳이었다면

내 자존심은 그렇게 녹아버리고 사라졌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어린것이 참 당돌했다 싶다.

그런 막내 키우느라 고생하셨을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다.

진짜, 내, 친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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