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식모는 아주 눈치 빠른 아줌마였다.
남편 혼자 있던 집에서 제 살림 인양 지내던 그녀는 왠 젊은 뇨냐(아줌마)가 들어와
하루하루 말을 배워가며 제 양식처럼 집어먹던 계란이며 식용유며 설탕, 소금을 간섭해오자
결국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ㅣ시골에 있는 엄마가 돌아가셨다.. 미안하다. 내려가 봐야겠다.
남편은 단박에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이곳 사람들이 아주 흔히 쓰는 말, 딱 잘라 거절하거나 싫다 소리를 잘 안 하는 이나라 사람들 습성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은, 곧 나가겠다는 소리와 같다는 걸, 남편은 알고 있었다.
처음엔 난 그래도 설마.. 부모 죽었단 소릴 그렇게 쉽게 할까... 했다.
"부모가 보통 열두명씩은 있어. 일 년 전에도 죽었대고 몇 달 전에도 죽었대고, 그래"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인니 생활 선배인 남편의 말이 맞았다.
남편은 인력소개소 같은 곳에 연락해 소개비를 치르고 3명까지 교체해준다는 조건으로 사람을 들였다.
첫 번째로 온 아줌마는 지난번 아줌마와 비슷한 또래였다.
하루 밤이 지나고, 둘째 날 저녁, 그녀는 퇴근한 남편을 할 말이 있다며 부엌 밖으로 불러냈다.
잠시 후 들어온 남편이 말했다.
ㅣ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지금 바로 가야 된대.
황당했다. 하지만 뭐, 나가겠다데 어쩌겠나.
두 번째로 보내 준 아이는, 정말 아이였다. 17,8세 정도 남짓 보였다.
빼빼 마른 체형에 표정도 없고 어두워 보이는 아이였다.
돈을 주고 시키는 일이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어리고 작은 아이였다.
일단 며칠 지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사람을 바꿔 달라 할 참으로 아이를 들였다.
하루, 이틀, 다행히 그 아이는 부모가 죽어 고향에 가야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 애가 좀 어두 워보이 긴 하지만 사람을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
그렇게 그 어두운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낮, 한창 입덧이 심해, 간신히 고구마, 토마토로 요기를 하고 보던 책도 던져버리고
벌러덩 차가운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한껏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고 있던 때였다.
딸랑딸랑...
ㅣ지나가는 아이스크림 장수인가.. 야채장수 올 때가 됐나..
딸랑딸랑....
장사치들의 소리와는 좀 달랐다. 그리고 꽤 가까이에서 들렸다.
몸을 일으켜 대문 밖이 보이는 집 앞을 내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갸웃거리며 거실로 돌아오던 나는
집 안 화단이 보이는 창문 넘어, 자기 방 앞 턱에 쪼그려 앉아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인형에서 들리는.. 소리..
딸랑딸랑...
소름이 돋았다.
표정 없는 왜소한 아이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한데, 웬 인형이라니..
그날 저녁, 남편에게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자고 했다.
그 애가 좀 무서웠다.
다음날, 아이는 퇴근한 남편을 또 부엌 밖으로 불러냈다.
들어온 남편은, 아이가 몸이 안 좋아 가야겠다고 했다. 우리 마음을 알아챘나 싶어 좀 미안했지만 그렇게 아이를 내보냈다.
세 번이나 사람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뭘 잘못됐나.. 팔자에 없는 식모를 쓰려니 나도 모르게 갑질을 했나..
괜히 나를 돌아보게 되고,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남편은 그냥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종일 집에서 함께해야 할 나에게는
고민되는 문제였다.
세 번째는 소개소가 아니라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아는 집 식모로 꽤 오래 일하고 있는 아줌마가 친구라며, 자기가 보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줬다.
yani. 야니.
나보다 한두 살 어린 나이었으니, 이나라 식모 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짧은 파마머리에 듬직한 체격. 활짝 웃는 이가 새하얀 늠름한 톰보이 느낌의 아이였다.
그 정도 나이면 이미 결혼해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야니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였다.
소개해준 식모는, 야니는 절대 그렇게 무책임하게 며칠 일하고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확실하긴 개뿔...!
하루가 지나고, 남편이 퇴근해 오자, 야니는 어김없이 남편을 부엌 밖으로 불러냈다.
가슴이 철렁했다. 짜증도 좀 났다. 아니 왜?! 도대체 뭐가 문젠데!!
몇 안되지만 여태 내가 본 식모들 중엔 가장 맘에 드는 아이였다.
내가 그 새 뭘 잘못했나? 내가 진짜 문제가 있나..?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들어온 남편은, 일단 오늘 야니가 돌아갔다가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고 했다.
"대체 뭐가 문제래? 내가 뭐 실수했대? 아니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들 나간대?!"
남편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얼버무렸다.
뭔가 이상했다.
"뭐야 진짜 귀신 있대?!"
"........ 엉......"
남편은 그동안 임신한 나를 배려해, 하지 못한 얘기를 털어놨다.
소개소를 통해 온 첫 번째 아줌마부터였다.
남편을 불러낸 아줌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나가겠다고 했다.
또 그 소리구나.. 알았다고 하던 남편은, 근데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던 거 같은데 갑자기 그 소릴 하는 게 이상해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고 한다.
ㅣ뭐 다른 문제가 있냐...?
머뭇거리던 아줌마는, 무서워서 못 있겠다고 했다고 한다. 화단이 너무 어둡다며..
자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웬 할머니와 아이가 손을 잡고 서서 내 방이니 나가라고 했다는 거다.
자기는 더 이상 못 있겠다며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때만 해도 남편은 부모 얘기 말고 다른 핑계를 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왔고, 며칠 별 얘기 없이 지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아이도 남편을 불러냈고, 몸이 아파 일을 못하겠다는 아이에게 남편은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할머니 아이가 와서 자꾸 나가라고 한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확실하게 사실을 확인해줄 만한 믿을 만한 사람을 주변에 물어봤고
지인의 식모를 통해 믿을만한 야니가 온 거였다.
하룻밤이 지난 저녁, 야니는 기다렸다는 듯 남편을 불러냈고
또 똑같은 소리를 했다.
ㅣ밤에 자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웬 할머니와 아이가 손을 잡고 나가라고 했다는..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전혀 접점이 없는 세명의 식모들 입에서 똑같은 얘기가 나온 거였다.
그제야 남편은 혹시나 싶어 식모를 통해 차 키를 넘겨받던 기사(에르윈)에게 물어보니
맨 처음 부모가 죽었다고 나간 그 아줌마도 밤에 무섭단 소리를 했다고 했다.
황당했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좀 웃겼다.
뭐야 말도 안 돼.. 아니 무슨 귀신이...?!
남편도 첫 번째 아줌마 때까지도 전혀 믿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그 아이 입에서 할머니와 아이 얘기가 나왔을 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그 아이이가 그런 말을 해서 더 무서웠다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니가 하는 말을 듣고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정말로 야니는 책임감 있는 아이였다.
잠은 잘 수가 없으나 출퇴근을 하겠다고 했다. 입덧에 힘들어하는 배불러오는 한국 뇨냐가 불쌍해 보였을 수도 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삐쩍 마른 이 아줌마를 귀신 나오는 집에 두고 그렇게 가버릴 만큼 매정한 아이가 아니었던 거다.
난 궁금했다. 근데 왜 우리 눈엔 한 번도 안 보였을까?
야니 왈, 한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이곳 이슬람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송곳니 가진 짐승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와 남편은 왠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맞아... 굿 할 때도 왜 돼지머리 올리잖아. 고사 지낼 때도 잘 되게 해달라고 돼지머리 올리고.."
"그게 다 귀신 쫓자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은 말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게 야니의 말을 합리화시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있다고 생각하니 사실 무섭긴 했다.
밤에 들리는 온갖 소리들에 한껏 예민해졌다. 이전에도 들렸겠지만, 그때부턴 모든 게 예사롭지 않은 소리들로 들렸다.
밤에 물 마시러 내려오지도 못했다.
일층은 어둡고 식모방과 화단이 내다보이는 큰 창문도 있었다. 게다가 부엌은 거실 밖, 식모방과 연결된 곳에 있는 아주 무서운 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우린 자러 올라갈 때 밤에 마실 물통을 들고 이층으로 향했다.
ㅣ우리 눈에만 안 보이면 됐지 뭐. 우리한테 뭐 해코지 한 것도 없는데 뭐.
그렇게 서로를 세뇌시키며, 다행히 둘이 함께여서, 하루하루 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후, 얘기를 듣게 된 사장님은, 이런 집에서 애를 어떻게 낳느냐며 다른 집으로 이사 가게 해주셨다.
사장님은 가톨릭이시다. 하지만 귀신은 안 된다 하셨다.
괜찮다고, 저흰 안 보인다고 했지만 결국, 2년 계약해 채 일 년도 살지 못한 집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게 하셨다.
임신 8개월쯤, 배가 점점 남산만 해 지던 시기에
그렇게 우리 부부는 첫 번째 신혼집에서 인니 귀신한테 쫓겨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연락을 주고받던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뭔 소리냐고 했다.
귀신 때문에 이사 간다는 말을 한 번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쫓기듯 이사하던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 소동 덕에 한뚜란 말은 참 빨리도 알게 됐다.
내 나라 귀신도 못 본 내가 인니 귀신에 쫓겨 이사 간다는 게, 난 쪼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