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던 것도 같고 전생이었던 것도 같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번째 집은 한대문 안에 서너 집이 모여 살았던
'이모 할먼네'였다.
엄마의 이모였던 이모할머니가 딸네로 들어가시며 엄마에게 와서 살라 하셨다고 했다.
그 외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고 아직도 그때 얘길 할 때면 엄마와 난 그곳을 '이모 할먼네'라 부른다.
너무 어릴 때라 여러 기억 조각들을 이어야 간신히 전체 모양이 그려지는 곳이다.
박물관처럼 그 집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존재한다면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커다란 대문.
둥글었는지 사각형이었는지, 그곳의 전체 모양을 헤아리기엔 난 너무 어렸다.
기억나는 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맞은편 정면이 우리 집, 대문 양 옆으로 ㄷ 오빠네와 기름집..
그 집들과 우리 집 사이에도 또 작은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화단은 어린 내가 한 발에 딛고 올라서지 못할 정도의 높이여서
먼저 올라간 누가 손을 내밀어 주던지 뒤에서 누군가 나를 안아 올려줬어야 했다.
둥근 테두리를 길고 큼직한 돌로 둘러 꽤 그럴듯하게 보이는 화단에는
중앙에 소나무였던 거 같은 작은 침엽수와 둘레에는 꽃이 피는 자잘한 나무들로 꾸며져
어느 집 어느 방에서 내다봐도 둥글고 아담한 화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화단 어느 옆에 수돗가가 있었다.
네모나게 시멘트로 공간을 표시해 둔 수돗가에는 나 같은 꼬맹이는 절대 나오게 할 수 없는
주전자처럼 생긴 얼굴에 긴 팔을 뒤로 뻗치고, 둥글게 뚫린 주둥아리로 물을 콸콸 쏟아내는
펌프가 있었다.
어린 내가 그 긴 팔을 아무리 잡고 위아래로 휘저어도 철커덕철커덕 얼굴 안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조그만 바가지로 그 주전자 얼굴에 물을 조금 부어주며 동시에 힘껏 긴 팔을 잡고 흔들어야
쿨럭거리던 수도가 확- 하고 물을 쏟아냈다.
마중물.
지하에 고여있는 맑고 차디찬 샘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했다.
그땐 이름도 이유도 몰랐다. 그저 아빠나 아저씨들이 그렇게 하니 그러려니 보았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주면 땅은 넘치도록 많은 샘물로 보답했다. 펌프는 땅이 주는 선물을 신명 나게 끌어다 날라주었다.
한 손으로도 시원하게 물을 뽑아내던 아빠도 옆집 아저씨도 큰 오빠들도,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펌프질이 너무 하고 싶었던 꼬맹이는 아빠가 긴 팔을 잡고 물을 퍼올리려 할 때 슬쩍 끄트머리에 손을 대고 있다가, 물이 확 쏟아지면 얼른 아빠를 밀어내고 신나게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이보라며, 내가 한 거라고 뻔뻔하게 자랑하면서.
겨울이면 펌프는 갖가지 색상의 담요, 이불, 옷가지 들로 치장됐다.
혹여나 얼게 될까 그 대문 안 식구들은 펌프를 정성껏 감싸주고 싸매 줬다.
그럼에도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을 땐, 팔팔 끓인 물을 가져와 살살 달래주면
얼음덩어리였던 펌프는 온몸으로 허연 김을 뿜으며 다시 살아 돌아오곤 했다.
재밌는 놀이터 같았던 수돗가에는 속상한 기억도 남아있다.
어느 날, 엄마 아빠는 밖에 내다보지 말라며 마루 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가셨다.
애들은 옹기종기 우리 집에 모여있었는데, 나보다 큰 언니 오빠들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개 잡는대"
설마.. 우리의 엄마 아빠들이 개를 죽인다고...?
어린 나는 믿고 싶지 않았고 확인하고 싶었다.
아주 조금 문을 열었다.
뒤에서 열지 말라는 오빠 언니들도 있었고 궁금해 같이 문틈을 들여다본 사람도 분명(!)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역했다.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에 더 이상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수돗가를 빙 둘러서 있던 대문 집 사람들 바짓가랑이 사이로
빳빳하게 뻗은 누런 개의 다리를 보고 말았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더 있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문 틈으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뭔가를 봤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각자의 집과 방은 달랐지만
한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만날 수 있던 가족들이었다.
ㄷ오빠를 졸졸 따라다녔던 난, 나중에 크면 오빠에게 시집간다며 미용사였던 아줌마를 시어머니라고 부르고 살았다. ㄷ오빠는 그런 날 보기만 해도 도망치기 바빴고, 아줌마는 내 며느리라며 머리를 수시로 잘라주셨다.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고데기도 미래의 며느리를 위해 뜨겁게 달궈 한 번씩 말아주기도 하셨다.
기껏 도망쳐봤자 이 대문 안 식구였던 ㄷ오빠는, 결국 나와 같은 대문 안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같이 살던 그 사람들이 다 식구였던, 그런 곳이었다.
2년 전, 치료를 받으러 6개월 만에 한국에 들른 때였다.
내 오랜 기억 속의 동네 근처를 지나가는 노선의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분명히 6개월 전에 왔을 때도 없던 것들이 보였다.
재개발. 금지구역.
시뻘건 글씨와 테이프들로 표시된 주택지들.
수원 바닥을 손금 보듯 하는 아빠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어려서 살던 동네부터 어디 어디까지 다 재개발로 묶였다고 했다. ㅈ형사 아저씨네도 누구 누구네도 이미 다 이사를 나갔다고 했다.
오기 전까지 몇 차례 그 버스를 타고 병원을 오가며
흉물처럼 되어버린 재개발단지의 모습에 마음이 이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었는데, 거짓말 같았다.
인적이 빠져나간 그곳은 더 낡고 더 초라해 보였다.
부서지는 건 오래된 집들이 아니라, 내 추억인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몇 년 후면 번듯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다.
그럼 아마 난 이모 할먼네 집이 어느 정도 즈음에 있었는지도
이제 찾지 못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