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슬람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인 이슬람 최대 국가다.
종교 얘기는 예민한 소재이지만 인니에 대한 얘기에서 종교를 빼먹을 수는 없다. 이들에게 종교는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특별한 종교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 제삼자의 시각에서
내가 이곳에서 만난 보통의 무슬림들을 통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말하고자 한다.
인니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현지인들도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신분증에 내가 믿는 종교가 표기되어있다.
현지인들의 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중국계들은 대부분 가톨릭과 개신교를 믿는데, 신분증에 표시된 종교의 차이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
도리어 각 종교의 큰 명절, 석가탄신일이나 부활절,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인니에 처음 와서 주택에 살던 시절, (물론 날씨와 주택의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곳과는 정말 다른 나라라는 걸 가장 깨달았던 순간은, 시간에 맞춰 지역 전역에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를 들을 때였다.
낮에도, 밤에도, 알고 보니 내가 잠들었던 새벽녘에도
높은 아파트에 살던 주택에 살던, 좋은 집에 살던 빈민촌에 살던, 어디서나 코란을 읽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게 들리는 기도 소리에, 처음엔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민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구의 80프로 이상이 무슬림인 이곳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귀신 소동 후 계속 일을 하게 된 야니도 당연히 무슬림이었다.
평소엔 머리에 히잡을 쓰지 않아 속된 말로 날라리 신자 인가 싶었는데, 무척 독실한 아이였다.
일을 하던 중간 갑자기 그 애가 보이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자신의 방에 카펫을 깔고 발끝까지 내려오는 커다랗고 하얀 히잡을 입고 '메카(사우디의 도시)'를 향해 코란의 말씀을 중얼거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낮잠을 자나 싶어 슬그머니 그 애 방문을 열었다가 경건하고 또 생소한 모습에 놀라 슬그머니 문을 닫기도 했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는 무슬림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 중 하나이다.
이들에게 이 기도시간은, 시간 되면 하고 바쁘면 건너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들은 무슬림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기고, 걷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가 때가 되면 아침, 점심, 저녁을 먹듯, 그렇게 기도를 드린다.
이 사실은 현지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민기 초반, 인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부딪혔던 문제가 바로 직원들의 이 기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이었다면,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던 직원이 갑자기 기도를 하겠다며 불쑥 일어나 나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 상식으론, 정 해야겠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마무리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우리 상식이다.
이들에게 그 어떤 것도 신에게 기도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모든 일에서도 최우선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수백 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기계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기도를 하겠다고 하나둘 자리를 이탈하니, 아마 처음 상황을 접한 한국인 공장장은 기가 막혔을 거다.
기도 시간은 그들과 타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감수하고 배려해 줘야 할 것 중 하나였다.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건물에는 화장실 말고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
기도실.
큰 몰에도, 놀이동산에도, 큰 음식점에도,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존재하고, 그 문 앞에는
간단히 손 발 정도라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화려하고 큰 몰에서 쇼핑을 하다가도 시간에 맞춰 기도실을 찾는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는 각자 알아서 시간을 조금 늦추기도 하지만, 기도를 빼먹는 일은 없다.
세계 어느 곳이던, 어느 장소이던, 어느 방향에 서있던지 그들은 엎드려 머리를 숙여야 하는 방향, '메카'를 알고 있다.
기독교나 유대교와 뿌리를 함께 하는 이슬람은 '알라'를 신으로 부른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이슬람의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다.
그날 지역 이곳저곳의 사원(mesjid. 머스짓)에는 납작한 모자를 쓰고 전통의상 바틱을 입은 무슬림 남자들이 줄지어 모여들어 예배를 드린다. (특히 금요일 이 시간은 가능한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머스짓은 사람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여기저기에 많이 위치하기 때문에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된다.
머스짓은 항상 모두를 위해 개방되어 있지만, 특히 금요일 낮에는 남자들만 참여하는 기도가 진행된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어느 곳을 향해 걷는 그 모습도, 처음 접했을 땐 깜짝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하루에 다섯 번, 빼먹지 않고 기도를 한다는 것도 대단해 보이는데, 절정은 라마단 기간이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인 르바란 한 달 전부터 시작하는 금식 기간을 말한다.
한 달 간의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삼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미로 죄지은 몸을 깨끗이 하고자 침 조차 삼키지 않고 뱉어내야 한단다.
기사였던 에르윈도 독실한 무슬림이었는데, 그처럼 종일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요즘은 물 정도는 마시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첫 기도를 하는 새벽, 4-5시 사이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해가 뜨기 전에 밥을 먹고
보통 적도의 해가 떨어지는 6시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를 버틴다.
금식을 puasa(뿌아사)라고 하는데, 이렇게 종일 뿌아사를 하고 6시가 넘어온 나라에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면 비로소 식사를 할 수 있다.
특별히 이 기간에 많이 팔리는 음식들이 있는데, kurma(꾸르마)라는 대추야자 열매와 과일 시럽이다.
종일 빈속이었던 위장을 위해, buka puasa(부까 뿌아사)가 시작하는 6시가 되면 먼저 달달한 과일 시럽 음료와 대추야자를 조금 먹어준다. 그리고 12시간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한다.
인니에 오기 전까지 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떤 종교 인지도 잘 몰랐다. 그냥 주워들은 알라.. 메카.. 중동 사람들이 믿는 종교.. 가 고작이었다.
식모였던 야니를 통해 라마단을 지키는 무슬림의 모습을 처음 접했다.
그때까지도 난 설마.. 어떻게 이렇게 하루 종일 굶으면서, 하던 일을 똑같이 하면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기간은 한 달이라지만, 좀 하다 말다, 다시 하다 그러지 않을까... 내가 보지 않는 데서 몰래 뭔가 먹지 않을까...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 정말 한 달을 꼬박 하루 12시간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시간에 맞춰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솔직히 놀라웠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종교라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대단하면서도 무조건적인 그들의 모습에 살짝 겁도 났다.
그들에게 라마단 기간의 뿌아사 역시, 매년 돌아오는 하나의 일상이었고
그 일상을 받아들임에 불평이나 불만, 어떤 반발도 있을 수 없는, 그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방식인 거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의 라마단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오후 6시 부까 뿌아사가 되면 먼저 속을 풀기 위한 음료를 마신 후, 외출하고 오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식모들이 하나둘 밖으로 모여 그들만의 만찬을 즐겼다.
라마단 기간 동안의 그들 모습은 정말 '즐겼다'라는 표현이 맞는 그런 모습이었다.
대부분 십 대 후반에서 이십 초반인, 아직 어린 나이의 식모들은, 그들만의 축제기간처럼
함께 모여 깔깔거리고 조잘대며 그날의 저녁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설거지와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기도 할 때 쓰는 길고 흰 히잡을 입고 사원에 기도를 하러 다녀오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하얀 천으로 온몸을 덮고 앳된 얼굴만 말갛게 드러낸 이 집 저 집의 식모들이
신나게 수다를 떨며 정문에서 가까운 머스짓으로 기도를 하러 몰려나갔다.
그리고 정말 그들은 한 달을 꼬박, 낮 시간에는 고작 입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물로 입을 축이고 해가 떨어지면 함께 모여 신나게 만찬을 즐기며 라마단을 보냈고, 그 기간 동안엔 저녁 기도 시간부터 새벽 기도 시간까지 밤새도록, 머스짓을 통해 온 나라에 기도 소리가 이어졌다.
주택보다 아파트 살 때 사원이 더 가까웠던 까닭에 기도 소리도 훨씬 컸다.
평소 하루 몇 차례 듣는 기도 소리는 차츰 적응할만했는데, 라마단 기간 한 달 동안 밤새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는, 정말 버티기 힘든 환경이었다.
초반 일주일 정도는 잠드는 자체가 힘들었고, 조금씩 선잠만 잘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새카만 한밤의 적도에는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머스짓과 거리가 좀 있어 기도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 같다. 다행이다^^;)
공식적인 르바란 연휴는 이틀 정도지만, 당일인 날짜를 전후로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 정도 이슬람 최대 명절, 르바란이 시작된다.
언젠가 르바란 연휴에 반둥이라는 화산지대로 가족 여행을 갔다.
온천과 화산으로 유명한 그곳을 관광하다 저녁을 먹으러 한 식당엘 들어갔다.
우리 식구를 제외하고 모두 현지인들이었어서, 특히 현지 아이들이 대 놓고 우리 식구를 빤히 구경했다.
종업원이 오고 음식을 주문하는 사이, 꽤 넓은 식당 안 테이블은 현지인들로 가득 찼고 각 테이블마다 모두 주문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먹으려던 우리는,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부터 대놓고 쳐다보던 애들 말고도 슬쩍슬쩍, 힐끗힐끗 우리를 쳐다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많았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이 정도로 쳐다보진 않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음식이 놓인 탁자는 우리 가족의 자리뿐이었다.
아직 6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다. 불과 몇 분 전이었지만.
도저히 그 많은 시선을 아랑곳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 주문은 했지만, 아직 부까 뿌아사 시간이 되지 않아 모두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배가 고팠던 딸과 아들은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집어먹었고, 나와 남편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몇 분 후, 온 천지에 퍼질듯한 머스짓의 기도 소리가 시작됐고,
멈춰있던 영화 화면이 플레이되듯 순간적으로 시끌 복잡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테이블로도 줄줄이 음식들이 배달됐고, 먼저 음료로 목을 축인 그들은 신나게 만찬을 즐겼다.
우리도 그제야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지구촌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이슬람을 종교로 삼고 있다.
기독교에 이어 세계 두 번째란다.
최근 한국의 관광지나 몰 같은 곳에 이슬람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을 만드는 건 사실 다소 늦은 시도이긴 하다.
하지만 이태원에,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이나 무슬림 관광객들을 위한 사원이 생겼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그곳이 이태원의 또 다른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고 하니 약간의 변화는 시작된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무슬림들, 유학생 들이나 노동자들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게 바로, 사원이나 기도실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의 큰 몰에도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마련되고 있는데, 기도실이 없을 땐 옷가게 안 피팅 룸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할랄'이라는 인증을 받은 것들만 먹고 사용할 수가 있다. 돼지고기를 절대 금하는 이들 문화에 따라 해외에서 수입되는 많은 식품들도 할랄을 인증받아야 이들에게 판매를 할 수가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먹는 신라면과 이곳에서 팔리는 신라면은 다르다. 한국 내수용에는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있는 반면, 이곳의 할랄 인증을 받은 신라면은 맛은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성분은 다르다는 거다.
심지어 최근 코로나로 들여온 백신도 할랄 인증을 받은 후 사용이 허가되었다.
중국산 시노백이 가장 먼저 할랄 인증을 받아 인니의 백신 접종은 시노백부터 시행되었고, 이어 수입된 다른 백신들도 할랄 인증 절차를 마치고 시행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신께 기도드리고 신이 허락한 음식들만 섭취하며 생활하는 이들이지만, 그렇다고 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다. 생활하는 모든 시간을 의식하지 않은 채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종교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생활을 맞춰가는 우리네의 종교생활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맹목적. 절대적.
그들이 이슬람을 대하는 모습에는 상당히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단 종교들에서 보이는 광적인 느낌은 아니다. 말한 대로 종교적인 삶이 그냥 그들의 생활이고 문화인 셈이다.
얼마 전, 이슬람 사원을 지으려는 한국의 어느 동네에서 주민들이 반대로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정말 사견이지만,
이슬람이라는 이 종교가 생산성이나 발전성의 관점에서 보면 꽤 효율적이지 못한 종교라는 생각은 든다.
지고지순한 신앙심으로 구원을 확실하는 그들은 (물론 지형적 영향, 기후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현세에서의 치열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느 해인가, 세계 여러 나라의 행복지수에서 인니인들이 1등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분명 이들 나라는 세계적인 강대국이나 부국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아직까지 관료들의 부정부패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평범한 일반인들은, 그 삶에도 크게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신에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거다. 친절하고 온순하고 배타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그 뉴스를 접하고 잠시 생각이 스쳤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의 무슬림들이 타 종교를 가진 소수의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이슬람이 어색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소수의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에는
꽤 큰 선입견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는.
한국인들이 주로 접하는 이슬람이, 중동지역의 종파 싸움으로 인한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일면 말고, 그냥 보통의 순수하고 순종적인 수많은 무슬림들을 선입견 없이 바라봐야 할 태도와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