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를 기억한다

by 타프씨

그 애는 '차'씨였다.

'차'씨와 그 애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차'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를 보면 이름보다 성이 먼저 떠올랐다. 결국 그 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차 0 0'

어렴풋한 그 애의 모습과 함께 기억하는 거라곤,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차'라는 성씨다.



초등학교 4, 5학년쯤이었다.

학교 교문 밖으로 일 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몽당연필처럼 짧디 짧은 건널목을 건너면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주택들이 쪼르르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학교 쪽에서 첫 번째 문방구 집을 지나 세 번째 집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셈이다.

오빠 언니와는 네 살, 세 살 터울. 중학생 언니 오빠가 등교 준비를 할 때, 막내도 따라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한 탓에 늘 교실에 일등이나 이등으로 도착했다.

학교도 바로 코앞이어서 대문에서 나와 몇 발짝 걷지 않아 짜리 몽땅한 건널목이 나왔고

그 도로를 건너면 바로 학교에 도착했다.


그 애가 누구랑 친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찌감치 교실을 차지하고 있던 나는 오는 애들마다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었는데, 그 애도 꽤 일찍 오는 편에 속했다.

그렇게 그 애와 다른 몇 명의 아이들과 놀고 있다 보면, 단짝 패거리들이 하나 둘 나타났고, 어느샌가 그 애는 내 곁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난 그 애가 멀어졌는지도 모른 채 단짝들과 공기놀이를 하거나 수다를 떨었다.

특별히 더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언제건 만나면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사이였다.


집이 너무 가까웠던 나는 하교 길이 긴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량식품도 같이 사 먹고 비밀 얘기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것들을 하기에 우리 집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교문에 딱 서면 우리 집 대문이 보였으니 말이다.

하교 시간이 되면 난 등교 때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느릿느릿 최대한 오래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행동으로 친구들과의 시간을 잡고 늘어졌다.

어떤 애들은 같이 수다를 떨며 집으로 가다 얘기가 끝나지 않으면 그대로 한 친구의 집으로 직행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흐름에서 우리 집은 너무 빨리 나타나버려 난 먼저 퇴장해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땐 친구네 집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혼자 되돌아오기도 했고, 친구네 가게 되는 날이면 다 같이 우리 집에 먼저 들러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함께 움직였다. 코 앞이었으니까.


어느 날 하교 길에 그 애가 슬며시 다가왔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당연하지! 당근이지!

그날도 그 애와 함께 먼저 우리 집에 들렀다. 엄마에게 그 애를 소개하고 같이 숙제하고 놀다 오겠다는 허락을 받고 간단한 가방을 챙겨 신나게 따라나섰다.

그 애 집은 우리 집에 비하면 몇 배나 더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교문 아래쪽 비탈을 내려와 학교 앞 도로보다 훨씬 큰,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의 건널목 다운 건널목을 건너고도 얼마간 더 걸어야 도착했다. 난 친구와 수다를 떨며 그렇게 걷고 지나치는 과정 모두가 너무 신났다.


당시 흔히 볼 수 있던 평범한 모습의 주택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친구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이유도 모른 채 그 애를 따라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애는 나를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언니와 함께 방을 쓰고 있던 나에게 혼자만의 방을 갖고 있는 친구들 역시 선망의 대상이었다.

처음 오는 친구의 집도, 혼자 쓴다는 그 애의 방도, 모든 게 나에겐 새롭고 신나는 것들이었다.

상을 펴고 앉아 숙제부터 하려는데

갑자기 확 문이 열렸다.


"언제 왔어?! 왔으면 얘길 해야지.... 라면 끓여와"


중간에 욕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모습과 말투와 표정이, 그 자체가 다 욕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놀란 나를 보고 그 애는 민망하게 웃었다.

오빠라고 했다. 네 살 차이 나는 나의 오빠와는 다른, 어른인 오빠였다.


"먼저 숙제하고 있어 잠깐만"


진짜로 그 애는 라면을 끓이러 부엌으로 갔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더 놀라웠던 건, 그 애가 혼자 라면을 끓이러 부엌으로 갔다는 사실이었다.

부서질 듯 문을 열고 뻔히 보이는 동생의 친구에게 인사도 안 하는 오빠보다,

내 상식에 있는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처럼 보이는 사람이 그 애 오빠라는 것보다,

난 그 애가 직접 라면을 끓인다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그때까지 난 직접 라면을 끓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부엌에 들어가 혼자 무언가를 만들고 요리하는 일은 나에겐 어른의, 엄마가 하는 일로 여기던 때였다.

살짝 문을 열고 하얀 커튼이 늘어진 안쪽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 그 애를 보았다. 진짜 가스레인지를 켜고 뜨거운 라면을 혼자 끓일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고 걱정도 됐다.

그 애는 꽤나 능숙하게 가스에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려 라면을 털어 넣었다.

친구가 아니라 언니 같아 보였다.


잠시 후 문 밖에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문 앞에 뒀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그 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숙제를 하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우리도 라면 먹을까?"

말해 뭐해! 당근이지!


쪼르르 그 애를 따라 부엌으로 나갔다. 라면을 먹는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우리 둘이 라면을 끓인다는 그 상황이 너무 신이 났다.

눈 앞에서 보니 언니가 아니라 엄마 같았다. 엄마가 하듯 한 번에 휙 손잡이를 돌려 띡띡 거리는 가스에 불이 올라오게 했다. 대단해 보였다.

다 끓인 라면 냄비와 받침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휙 오빠 방 문이 열렸다. 방 안에 한 여자도 보였다.

싹 비운 라면 그릇을 방문 앞에 내려놓으며 오빠는 그제야 나를 쳐다봤다.


"친구냐?"

"엉.."

"이거 치워라"


그 오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마 내가 그 얼굴을 쳐다보지 못해서 인 것 같다. 꾸벅 인사는 했지만 얼굴을 쳐다보진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었지만 왠지 혼날 일을 하다 들킨 것 같은 분위기에 난 그냥 쫄았었다.

하지만 친구와 내가 끓인 라면은 참 맛있었다.

방안의 그 여자는 새언니라고 했다.


올케라는 단어도 몰랐을 나이였다.

우리가 라면을 다 먹고 치우러 나갈 즈음,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나갔다 오겠다며 휑하니 사라졌다.

마음이 한결 편했다. 대놓고 뭐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서울 것 같은 그 애 오빠와 새언니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 애는 설거지하는 동안 집 구경이나 하라고 했다.

오빠와 새언니가 나왔던 방 쪽으론 갈 생각도 못했다.

거실을 둘러보고 안방 문을 열었다.

불상이 있었다.

엄마 아빠 따라 몇 번 가본 절에서 봤던 무섭게 생긴 그림들이 보였다.

촛대와 촛불, 울긋불긋한 천들과 쌀, 과일.. 단상 한쪽 끄트머리 벽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럴싸해 보이는 번쩍거리는 칼도 보였다.

내가 본 게 무당 집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신기하게 안방을 둘러보던 내게 설거지를 마친 그 애가 다가왔다.

엄마 방이라고 했다.



엄마는 친구네서 잘 놀고 왔냐고 물었다.

라면 끓여 먹은 얘기를 하고, 벌써 결혼 한 오빠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 방이 꼭 절 같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는 내 속에 잠시 갈등이 있었다.

내가 본 게 평범한 집은 아닌 것 같다는 건 어린 나도 짐작됐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좀 이상한 집이었다는 느낌을 품은 채 그 생각을 입에 담는 건, 왠지 그 애를 욕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빠에게 라면을 끓여다 준 얘기와 새언니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장난감 같지 않았던 칼 얘기도 뺐다.

생각해보면 어린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날 이후 그 애와 관련된 별다르게 기억나는 일들은 없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그 애를 보면 수다를 떨다가 단짝들이 오면 또 공기놀이를 했다.

또 자기네 집에 놀러 가자고 했지만, 합창부였던 난 대회를 앞두고 방과 후 연습을 해야 했다.

아마 연습이 아니었어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사실 난 안방에 있던 불상보다 그 애보다 한참 어른이었던 그 애 오빠를 또 보고 싶지 않았다.

대회를 얼마 앞둔 날, 합창부 샘은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지 않게 노래하는 연습을 한다며 아침 등교 시간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돌계단에 우리를 정렬시켜 합창 연습을 시키셨다.

정문으로 등교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돌계단을 지나 교실 건물로 들어가야 하는 학생들은 죄다 우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은 우리가 노래하는 모습을 웃기게 따라 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아는 친구는 저만치에서 걸어오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산만하고 어수선한 우리 눈동자 때문에 합창부 샘은 집중하라며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더 크게 지휘를 하셨다.

등교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지각해 정신없이 뛰어오는 애들 몇몇을 빼고는 텅 빈 운동장이 된 시각이었다.

학교 전체가 울릴 정도로 열심히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던 그즈음,

그 애를 보았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가방을 멘 그 애가 나란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가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될 시간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름을 불러 어디 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난 입 맞춰 노래를 부르던 중이었다.

그렇게 연습이 끝날 때까지 그 애와 그 애 엄마는 점점 작아지다가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교실에 돌아와 보니 역시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 말로는 전학가게 되어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엄마와 나갔다고 했다.

그 애 집에 놀러 가 라면까지 얻어먹었던 나는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그 애와 헤어졌다.



정말 짧은 추억뿐이다.

고작 한번 그 애 집엘 갔었고, 이후 별다르게 더 친해졌거나 멀어졌거나 하지도 않았다.

전학 갔다는 그 애 소식을 이후 누군가에게 전해 듣지도 못했고 알아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건망증 백 단인 내 기억 속에 그 애는 여전히 남아있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 애 집에서 겪은 일들 때문이기도 할 테고, 나이가 들고부터는 과연 그 애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던 거였으며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한 물음 때문인 것도 같다.

그 애 역시 철없는 아이였기에 스스럼없이 친구를 집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어쩜 그 애는 나에게 손을 내민 것 일지도 모르겠다. 더 철이 없던 나는 모든 걸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 걸지도..

한 발 다가서기 위해 물러서 자신을 보여줬던 거라면, 난 그 애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 미안함 때문에 내 기억 한 귀퉁이에 아직도 이렇게 그 애가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는 성씨가 주는 느낌은, 화사한 듯 흩날리지만 알 수 없는 사연을 잔뜩 품은 눈송이가 따뜻한 살갗에 닿았다가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 기억에 남은 그 애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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