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소리

by 타프씨

이 나이쯤 되니 자주 들리는 소리가 누군가의 사망, 장례식 소식이다.

불과 한 달 전에도, 이번 주에도

내가 직접적으로 알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죽음이라는 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고3, 대입 학력고사를 약 한 달 정도 앞둔 때였다.

성적, 대학, 디데이, 시험 같은 말들이 우리 인생을 꽉 채우고 있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됐다.


우린 전날 밤 10시까지도 그렇게들 모여있었다. 그리곤 집으로 흩어져 잠시 눈을 붙였다가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해뜨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좀비처럼 또다시 어스름한 새벽부터 하나둘 학교로 모여들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삼시세끼 밥 먹듯 쪼르르 들리는 곳은 커피 자판기 앞이었다.

하나씩 밀크커피를 뽑아 들고 책상에 둘러앉아 에이스 봉지를 뜯으며 하루가 시작되는 일상이었다.

말랑했던 정신이 카페인과 수다의 힘으로 차츰 초점을 맞춰가던 즈음,

같은 반 친구 몇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야 사고 났대! 문과반 남자애들 타고 있던 봉고래!"


순식간에 학교, 아니 고3 교실이 모여있는 5층은 어순 선해졌다.

우리 반은 유일한 여자 이과 반이었다. 당시 흔치 않던 남녀공학이었지만 합반은 아니어서 남자 문과반 애들은 사실 잘 모르는 애들이 많았다. 얼굴은 모른다지만 어쨌든 나와 같은 학교였고, 무엇보다 대입 시험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고 3까지 묶여있는 그 학업의 껍질을 깨고 대학이라는 사회에 나가면 완전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은 로망을 꿈꾸던 때였다. 지금이야 인터넷만 치면 대학 생활에 기숙사 생활, 알바 얘기까지 내가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널렸지만, 당시엔 주변에 아는 대학생 언니나 오빠라도 좀 있어야 주섬주섬 그 세계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모르는 세계이다 보니 환상까지 더해져 왠지 대학만 가면 지금과는 180도 다른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은 그런 꿈을 꾸며 버티던 우리였다.



지금도 사당에 가면 새벽에 운행하는 총알택시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차고 차량의 속도가 그 정도였을 거라 추정된다. 이른 새벽이니 다니는 차들은 별로 없었을 테고, 새벽부터 몸을 실은 아이들은 차에 앉자마자 모두들 잠들었던 상태였다.

12인승 봉고에 운전사 아저씨와 조수석에 탄 여학생 하나를 제외한 뒷자리 9명 남학생은 다 우리 학교 애들이었다. 유일한 그 여학생은, 우리 학교와 오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같은 운동장과 같은 교문을 사용하는 옆 여학교 학생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져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학원을 3개 이상 보유한 재단은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장은 같은 교문으로 등교하고 같은 운동장을 쓰는 두 건물의 이름을 각각 남녀 공학 학교와 여고로 만들어 놓았다.


당시 우리 학교 아이들의 통학 수단 90프로 이상이 봉고차였다.

친한 애들끼리, 혹은 비슷한 지역 애들끼리 9명 이상 사람을 모아 봉고차를 섭외해 통학을 하고 있었다.

사고 학생들은 오산에서 수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로 만들어진 이 차에, 옆 학교 여학생이 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원래 타던 차량이 뭐가 문제였는지 더 이상 탈 수 없게 되어 새로 차를 섭외했는데, 멀리서 오는 차량이 많지 않다 보니 우리 학교 남학생들만 타는 그 차를 타게 됐다고 했다.

바로 옆이지만 같은 학교도 아니고, 죄다 시커먼 남자애들이 타는 차에 혼자 타려니, 그 여학생 혼자 앞자리에 앉아 다녔다고 한다.


아마 졸음운전 때문이었을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

오산에서 수원으로 오는 곳엔 공군이 있다. 전시에 활주로로 쓸 수 있게 만든 도로라고 했다.

고속도로도 아닌 국도 치고 꽤 직선으로 시원하게 나있다 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도로였다.

전쟁은 나지 않고 넓고 말끔한 도로는 항시 비어있다 보니, 어젠가부터 그곳에 불법 주차 차량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광버스나 포클레인 같은 대형차들이 저녁이면 슬그머니 그곳으로 와 주차되었다고 한다.

사고 차량도 그렇게 주차되어있던, 아스팔트를 깔 때 바닥을 누르며 지나가는 크고 둥근 쇳덩어리가 달린 차와 부딪혔다고 했다.

새벽부터 아이들을 싣고 오던 아저씨가 깜빡 졸다가 자기도 모르게 주차된 차량과 부딪힌 거다.

사고로 운전사와 운전사 바로 뒤, 등을 대고 앉는 자리에 있던 남학생 둘만 살아남았다. 본능적으로 운전사가 부딪히는 순간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아는 애들은 없었지만, 믿을 수 없는 소식에 한동안 학교는 술렁거렸다. 난 보지 못했지만 어느 방송 뉴스에도 나왔다고 했다.

사고를 당한 반 아이들과 친구였던 아이들은 그 애들의 책상에 꽃을 갖다 놓았다.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은 하필 하루, 일분일초가 아까운 고3 우리에게 일어나서 우린 오래 슬퍼할 수도 없었다. 금세 또다시 좀비 같은 원래의 생활로 복귀해야 했다.

샘들은 아이들이 동요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 간혹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아이들을 다잡았다.

직접 아는 친구가 없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에게 사고, 죽음이라는 말은 익숙하게 듣던 말들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또 빨리 잊혔던 것 같다.

내 기억에서 가장 처음 가까운 주변에서 죽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때였다.



이후로 들리는 소리는 계속 달라졌다.

대학에 간 후엔, 씨씨.. 사귄다.. 누가 누굴 좋아한다.. 학점..

졸업 때가 다가와서는 취업.. 시험.. 진로..

얼마 후엔 결혼 소식이 가장 많이 들렸다.

그 후엔 돌잔치를 한다느니, 이혼을 했다느니, 뒤늦게 누구랑 누가 결혼을 했다느니..

이곳에 나온 후로는 들리는 소식이 좀 적어졌다.

그나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과는 누구 애가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대학생이 된다는 얘기들.

그리고 사십이 넘어서는 나이가 되서부터

누가 죽었다는 소리를 가장 자주 듣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나의 가족이기도 했고, 지인의 부모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에게, 누구집 아이의 돌잔치 소리 같은 건 전해지지 않는다. 내 주변에 그럴 만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땐 죽음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듯, 지금의 나에겐 출산이나 돌잔치 같은 소식들이 낯선 소리가 되었다.



마음을 먹고 있다.

대비한다 한들, 지인의 사망 소식에 슬프지 않을 리야 없겠지만, 차츰 그런 말들에 익숙해지고 있기는 한 것 같다. 예상치도 못한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삼십 년 전보단, 훨씬 적응돼가고 있긴 하다.

다만 그런 소리들이

들을만한 때가 되어서 전해지는, 자연의 이치처럼 들리는 소식이길 바랄 뿐이다.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어떤 상황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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