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파랑 작전이 실패했다

나의 색을 찾아서

by una

사실 나는 파란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도 아니다.


인생에서 내가 파랑을 가장 좋아했던 시절을 돌아보니 10살쯤이었던 것 같다. 내 검정 단발머리에는 파란색 머리띠가 늘 붙어있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학교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마다 몸통 로봇을 조정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작아져서 몸통 속으로 들어가고, 버튼을 눌러서 말을 하고 팔다리도 움직인다고. 부끄러운 일들도 그렇게 하면 용기가 났다. 몸통 로봇의 스위치는 파란 머리띠였다. 머리띠를 쓰는 동안은 내가 아닌 로봇이 나를 대신한다 여겼다. 그러다 5학년 즈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떠한 일로 머리띠가 두 동강이 났는데, 한동안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했다.


그 후로 내 삶에 중요한 파란색은 없었다. 파란색 다이어리를 몇 번 사고, 바다를 건너 도착한 영국 고등학교에서의 첫 파티 드레스로 파란색 미니 원피스를 골랐고, 퍼스널 컬러 테스트에서 겨울 쿨톤은 남색과 파랑이 잘 어울린다는 결과지를 받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무형문화재와 전통 쪽 염색 문화에 대한 연구로 석사 졸업 논문을 썼을 때도, 이 논문이 인연이 되어 엄마와 함께 쪽 염색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을 때도. 그저 내 배경 때문에 생긴 우연이라 생각했다.



나의 엄마는 쪽 염색과 농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연구가이다. 한국의 파랑에 대한 사랑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열정이 그녀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엄마의 파란 에너지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나는 엄마의 파랑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을 했다.


파랑은 늘 타인의 색이었다. 손으로 파랑을 만들어내는 엄마의 색이고 아티스트들의 색이며 블루 마니아들의 색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놀라울 정도로 파랑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왔다. 파랑으로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며 작품을 만들고, 공방을 열고, 파란색으로 가득한 책방을 운영했다. 그들은 파랑에 대해, 그리고 쪽빛과 함께 살아갈 멋진 계획에 대해 빛나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이토록 파랑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노라면, 왜인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파랑 세계에 소속되지 않은, 그들의 여정에 잠깐 임시로 머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파랑을 탈출하기로 했다.


내 계획은 완벽했다. 이 회사를 잘 키워놓고 나는 떠나리라. 그리고 파랑이 아닌 나의 색을 찾고야 말 것이다. 내가 없어도 굴러갈 수 있도록 준비한 후, 타인의 여정이 아닌 내 여정을 찾아 떠날 계획을 세웠다. 3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이직이라는 첫 탈출 시도를 감행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내가 가진 경험은 정석적인 이력서에 반듯하게 들어가지 못했고, 회사가 좋아하는 언어로 풀어내기엔 나의 언변이 모자랐다. 면접관의 질문에 말문이 막힐 때마다 10살 때 쓰던 파란 머리띠 생각이 났다. 내 심술은 애꿎은 파랑에게 화살을 쏘아댔다. 이후 1년간, 나는 파랑을 덜어내고 기업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나를 색칠했다. 그리고 독립에 성공했다.


모든 게 빠른 속도로 쌓여가던 시간. 이대로 쭉 달려가면 내 색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파란 그림자를 가려줄 만큼의 경력을 쌓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했던 시간이었다. 스스로 일궈낸 것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졌다.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드디어 나도 색을 찾게 되는 걸까. 더 이상 남들이 찾은 색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 새벽까지 야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도 콧노래가 나왔다.


그러나 내 색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 큰 회사, 더 좋은 포지션을 가져도 내면의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이 자꾸 다른 데로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길을 잃었던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도대체 언제쯤 나도 좋아하는 색에 대해 노래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퇴근 후에 자꾸 공방으로 발길이 간다. 오랜 습관 때문일까. 피곤에 절어 잿빛의 안색으로 지하철에 앉아있다가도, 나도 모르게 집으로 가는 역을 지나쳐 공방으로 연결된 상현역까지 몸을 싣는다. 마치 몸통 로봇 안에 들어간 내가, 안전한 그곳으로 가라고 버튼을 눌러준 것 같이.


어쩌면 파랑으로부터 가장 위로받고 있는 사람은 나였을까.

그렇게 오늘도, 나는 공방 문을 연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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