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혼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날이었다.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에 냉큼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친구는 다짜고짜 내게 별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같이 마음 둘 곳 없을 때면 캄캄한 곳에서 하늘 가득 뜬 별을 보고 싶다고. 쏟아져 내리는 별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마음이 편해진다는 너는 요즘 무언가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우리 별 보러 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만나기엔 물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도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별을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나는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별이 온다.’라고 표현한다 했고 너는 ‘별이 진다’는 표현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뭐 사실 문법상으로 따진다면 친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다.
지다라는 것은 꼭 상실의 느낌을 주었기에 나는 별이 온다고 했지만 너는 별이 져서 떨어져야만 비로소 내게 오는 것이라고 했다. 표현 하나에도 이렇게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나는 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에는 별을 관측하는 동아리에 있기도 했고, 어릴 때는 엄마 아빠를 따라 캠핑을 다니면서 별을 볼 일이 많았지만 자랄수록 그럴 기회는 줄어들었다.
도심의 불빛은 너무 밝아서 별이 빛날 수 없었고, 까만 밤하늘에 덩그러니 떠있는 달만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타지에 혼자 산지 10년이 넘어가는 내게 반짝이는 별은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고, 달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었다. 캄캄한 밤하늘 위에 홀로 뜬 달은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너도 나와 같이 느꼈을까. 그래서 별이 보고 싶어졌던 거였을까.
별을 볼 때면 항상 누군가를 떠올리곤 했다. 하루는 친구였고, 하루는 가족이기도 했고, 어느 하루는 사랑했던 사람, 또 어느 날은 너무나도 멀어져 버렸지만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별은 사랑이기도 했을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세상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만 같던 그때.
손을 잡고 걷는 길도,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들도 꼭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인 것 같았던 그때. 아마 그날 우리가 서있던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빛났을 거라 나는 믿었고, 그 별들처럼 네가 내게 왔다고 여겼다. 별이 온다는 말은 아마 내 곁에 네가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썼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 같았던,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우리 관계도 끝은 있었다.
뻔한 이별이었다. 누구나 겪는.
나는 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찾곤 했다
별은 지는게 맞다는 너의 말, 아마 너의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다’라는 단어가 싫었던 건 그 단어가 주는 상실감이 싫었던 건데 상실은 마냥 잃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냉소적이었을까. 사라지면 끝이겠지, 어차피 잊혀질 거 무슨 소용이냐고 세상에 믿을 건 없다고 그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고 느꼈을까.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듯 저무는 것들에도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일 테니까.
그렇다면 저물어 가는 것들과 새로운 것들은 똑같은게 아닐까.
지금 사랑이 저문다 해도 또다른 사랑은 찾아올 테니까.
나에게도 별이 올까요. 사랑이 찾아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