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거 다 제치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
정말 세상이 이렇게 살기 어렵고 무서운 줄은 몰랐다.
살면 살수록 더욱 그 현실과 가까워지고 피부에 와닿는다.
나의 가족은 아버지. 오빠 둘. 이게 전부다.
어머니의 부재로 내게 남은 사람들은 이 셋 뿐이었는데.
세 남자에게 새로운 반려자들이 생기면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나의 외로움은 조용히 그렇게 찾아왔다.
언제까지 이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라는 현실에 늘 불안감을 안고 하루를 시작하며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무도 반기지 않는 불 꺼진 자취방에서 끼니를 챙겨 먹는 일.
‘여자 혼자’라는 이유 하나로 생필품 배송도 남성의 이름으로 주문하며 배달음식은 아예 주문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거의 모든 구매는 온라인 쇼핑을 하는데 요즘은 문 앞에 놔주세요 문구를 잘 사용한다)
밤늦은 시각에 초인종 모니터 불빛에서 일면식도 없는 낯선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두려움이 앞서고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집 비밀번호를 고민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고도 큰 사건 사고들, 그리고 사람들과의 사사로운 접촉.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일들은 안전불감증으로 무방비 상태였다가 갑작스럽게 마주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주제넘는 참견은 오지랖이란 것도
나의 고민을 얘기해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는 걸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말도 줄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나는 이 모든 순간들을
사회생활을 시작으로 자취생활을 하며 살아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도 잠시뿐이고 사건 사고는 항상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긴장 속에 사는 나의 일상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오늘도 열심히 잘 살 아내 보자.”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밤에는 “오늘도 열심히 잘 살아냈다.”
가끔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와 실행하는 즐거움과
언제까지 이 생활이 이어지는가에 대한 걱정과 사회에 대한 불안은 연속이지만
지금까지 나는 그럭저럭 잘 적응해왔고 또 잘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