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에서 첨벙

1부: 말하지 못한 마음들 (나와의 시간을 쌓는 법)

by 비니루


"비가 온다. 네가 싫다던 비가 주르륵 내린다. 나를 만나러 오는 길 너는 움푹 파인 웅덩이를 몇 번 피했을까? 웅덩이처럼 나를 피하고 싶었을까...“


예전에 썼던 제 연애소설의 한 구절이에요.

웅덩이.


저는 유독 그 웅덩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오래 머물러요. 어쩌면 저는 평생 무언가를 피하며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그 웅덩이가 타인의 마음일 때도 있었지만, 저의 가장 첫 웅덩이는 '가난'이었어요.



가난.

난 가?


'난 가난한가?'와 같은 말장난이지만, 진짜 가난은 저에게 꽤 오래 깔려있는 그림자였어요. 그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불안이라는 웅덩이를 파냈죠.


어린 시절, 교사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것은 저의 위생상태와 의복이었을 거예요. 그 덕분에 저는 늘 수급자나 사회배려전형의 단골 후보였죠. 어쩌면 제게서는 지울 수 없는 냄새도 났을 거예요.


용돈이 모이면 친구들과 향수를 사러 다녔어요. 그것은 단순히 좋은 향을 입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하는,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의 절박한 불안을 감추려는 몸부림이었죠. 박박 지우고 싶은 것은 냄새가 아니라, 가난하다는 사실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어요.


물론 그 시절에도 빛은 있었어요. 한 평 남짓의 구멍가게를 일부러 이용해 주시던 동네 어른들. 제가 가게를 보고 있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 가게 앞에서 기지개를 켜며 안부를 물어주시던 사장님들.


그분들의 눈에는 안쓰러움, 미안함, 그리고 '너는 우리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미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죠. 그 따뜻함에 감사하면서도, 저는 그 시선 아래에서 ‘동정받는 아이’가 된 것 같아 불안했어요.


그 불안을 연료 삼아 20살이 되면 너 스스로 독립해야한다는 부모님의 가치관 아래에 저는 필사적으로 공부했어요. 국가장학금이 유일한 희망이었거든요. B+라는 성적은 목표가 아니라, 낭떠러지 위에 걸린 아슬아슬한 동아줄이었어요. 이 줄을 놓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는 불안이 매일 밤 잠을 갉아먹었죠.


19살에는 어머니가, 20살에는 아버지가 병과 싸우셨어요. 가족의 생계와 부모님의 건강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져, 저의 불안은 숨 막히는 압박이 되었어요. 쪽잠을 자며 저를 다그쳤던 것은 성실함이 아니라, 어쩌면 공포에 가까운 절박함이었답니다.


46,400,000원.


한 가난한 아이가 세금을 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했던, 저의 불안의 최솟값이에요. 태종대에서 태어난 제 안의 고래는, 어쩌면 이 가난이 주는 불안을 먹고 그 어두운 심해 속에서 몸집을 불려나갔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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