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의 3, 6, 9 게임

4부: 노력이의 다음 걸음 (새로운 시작을 좋아하는 사람)

by 비니루

12년 차 언어재활사. 돌이켜보면 '3, 6, 9년 차마다 위기가 온다'는 말은 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 위기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불안을 제 삶에 '출력'시켰답니다.


3년 차 : 1일 1통닭과 수신오류 3년 차의 저는 매일 퇴근길에 '1일 1통닭'을 먹고 혼자 스터디를 했어요.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케이스가 익숙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더 잘하고 싶었거든요.


'1일 1통닭'은 저만의 타협점이었어요. 닭가슴살로 식단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현실 사이에서 '튀기지 않은 통닭이면 괜찮지 않을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죠. 그렇게 제 생활 전반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죠. 매일 통닭을 먹자 언제부터인가 지갑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어요. 제 머릿속도 마찬가지였고요. 자꾸 '입력'만 하려니 '출력'이 되지 않았어요. 수신오류가 난 게 분명했죠.

결국 저는 모든 것에 지쳤어요. 첫 직장을 3년 다니고 나니 이 공간의 인간관계가 다 싫증이 났거든요. 저는 소도시에서 연구하던 케이스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대도시 지역으로 '증발'해버렸답니다.


6년 차 : 순수한 악과 자진퇴사 6년 차의 저는 어린이들과 일대일 수업을 하며 하루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했어요. 아이가 가위로 본인 머리카락을 잘랐거나, 혹은 자르려고 대기 중이거나, 껌이나 아이클레이로 가발을 만들거나, 그냥 무단히 자빠지거나 얼굴이 긁혔죠. 그런 사고들을 지켜보는 제 마음은 매일 조마조마했어요.


이 긴장감. 벗어날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는 불안감. 저의 마음속 '불안이'를 더욱 증폭시켰어요. 불안을 참기에 저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했죠.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순수함은 보이지 않고, 그저 '순수한 악'같은 마음만 보였어요. 저는 완전히 지쳤답니다.


결국 저는 '자진퇴사'를 선택했어요. "한 달만 마음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한 달에 8회기,그러게 하루에 9시간을 주기적으로 40분 수업이 끝나고 울리는 바우처 결제 알람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9년 차 : 벼랑 끝에서 들은 맑은 파도 소리 저와의 약속은 단 한 달이었어요. 바우처 금액으로 한 달을 사는 것이 제 소비 습관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쉼이었죠. 하지만 쉼도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제 몸은 그동안 억눌렀던 '출력된 불안'을 신체 곳곳에 붙인 채였거든요. 명치가 아픈 화병이 주원인이었고, 명치를 주변으로 어깨와 배, 허리, 다리 부종까지, 불안에 시달렸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3년 차 '노력이'의 상징이었던 스터디와는 영원한 이별을 한 듯 멀어졌죠. 더 이상 지식을 '입력'하는 방식으로는 저를 구할 수 없었어요.


저는 내면의 치유를 위해 '책 처방'을 하러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보조치료제는 음악. 페스티벌과 함께 저에게 새로운 처방전을 내렸죠. 그렇게 5개월을 방랑자처럼 지냈어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은 음악." 저는 아편 중독자처럼 음악을 챙겨 들었어요.


공연장 스피커 가까이 다가가 그 '공명'을 함께 즐겼죠. 더 이상 뽀로로, 아기상어 노래가 아닌 제가 듣고 싶은 노래를 불렀어요. 그중 잔나비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답니다. '잔나비 시대'에 사는 게 행복이라며 스피커와 저의 마음이 하나로 공명되었어요. 잔나비가 점점 대중성을 지니게 되듯, 저도 조금씩 멈춰있던 어린 마음이 자라나는 것 같았죠.


하지만 방랑 끝에 마주한 현실은 9년 차의 위기였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 일을 다시 하고 있었죠. 전문가라는 길을 막고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죠.


하지만 '가임기 여성'에게 이전 경력은 중요했고 새로운 도전은 '나이가 아주 어려야' 했어요. 적은 돈으로 잘 구슬리고 싶은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았죠.

저는 가업을 이을 것도, 지인의 일자리에 들어갈 기회도 없어, 다시금 '어린이를 다루는 불안에 저를 가두기로' 했어요.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이었죠.


딱 1년만 더해 10년 차가 되고, 그다음엔 새로운 공부를 하든, 뭐든 해보기로 했어요. 제 눈앞은 벼랑 끝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답니다.


♦10년 차 : 조력자로서의 자기 확신


신기하게도, 벼랑 끝에서 들은 파도 소리는 '맑았다'고 느껴졌어요.


다시 돌아온 현장에는 중증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많았어요. 문득 그들도 저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언어발달이 평생 느릴 수 있다'는 이름표를 단 학생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이름표를 단 나. 우리 사이에는 '율동'이라는 유희가 있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이 아이들의 '전 생애 발달 주기'를 외면할 수 없었어요. 단순히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곧 청년이 되어야 하기에 '주거 문제'가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죠.


저는 그렇게 <장애학의 도전>이라는 책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이런 아이들은 커서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거든요. 장애학,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해부학처럼 이야기한 책은 없었어요.


제가 이들에게 어떤 상황과 말을 훈련시켜야 하는지, '큰 물줄기'가 느껴졌어요. '한 사람의 생의 발달'이라는 거대한 몸짓에 위축되지 않고, '파도들'에게 유영할 수 있는 지식들을 쌓기 시작했죠.


방대한 지식 속에서 유영하자니 불안하지 않았어요.


"겁먹지만 않으면 빠져 죽지는 않는다."


9년이라는 세월 속 불안이 제 마음에 새겨준 신념이었죠. 9년 차에 만난 아이들이 시도하는 다양한 '도전 행동[2]'에 응원을 보내는 '조력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요.


이제야 제 직업에서 제 역할이 확립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저 '안 돼'에 가려져있는 욕구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다른 안전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 저의 새로운 수업 준비였어요.


이제야 제 직업에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들었어요.





[2] 에릭 에머슨(Eric Emerson)의 정의에 의하면 도전행동(Challenging Behaviour)이란, 문화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으로서 그 강도, 빈도 또는 지속 시간으로 인해 당사자나 타인의 신체적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거나, 일상적인 지역 사회 시설의 이용을 심각하게 제한하거나 거부당할 가능성이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전 13화슬픔 옆에 우정 한 스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