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 괜찮아

4부: 노력이의 다음 걸음 (새로운 시작을 좋아하는 사람)

by 비니루

2025년 여름 서면. 흑백사진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체험은, 낡은 시간을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보는 경험이었어요. 결과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은 ‘성공한 청춘의 한 페이지’ 같은 뿌듯함이었죠.


하지만 열흘이 지나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만족감은 ‘더 탁월한 선택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으로 변해 있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저의 모습과는 달리 빛 한 줄기 없는 명암 짙은 부분을 보며, 저는 마음속 부정적인 부분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진은 저에게 "너는 지금, 네가 되고 싶은 모습만 보려 하는구나"라고 말해주는 듯했죠.


제가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완벽하게 밝은 모습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모두 존재하는 저의 온전한 모습이었어요.


심리 상담에서 '이렇게 밝으려면 얼마나 많은 어둠이 있었을까요?'라는 질문에 눈물을 쏟고서야, 저는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불안이라는 '성실한 어둠'이 있었기에 제 삶의 빛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깨달았죠.


어둠이 짙었기에, 저의 빛은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었어요.


사진 속 유난히 짙고 어두운 명암을 보며, 저는 제 마음속의 흑백논리를 떠올렸어요.


그때, 누군가 제게 ‘회색’을 보라고 말했죠.

흰색에서 검은색이 되기 전,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단계의 회색이 존재한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그동안 저는 저 자신을 너무나 가혹한 흑백의 잣대로만 재단해왔다는 것을.


회색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것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어요.


흑백사진을 인화하는 수고로움에 몰두하면서, 저는 그 회색의 가치를 배웠고, 그 과정 자체가 저를 돌보는 가장 다정한 시간임을 느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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