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래인줄 착각하고 있는 하얀 뚜밥의 이야기
누군가는 말했다. 내 글을 보며 그저 쉽게 얻은 행운들이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난다고. 또 어떤 단원은 내 글을 읽으면 우울증이 걸릴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나만 행복한 것 같고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어떠한 일이 나에게는 크게 작용하지 않아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또 물론 그의 말대로 나는 행운으로 많은 것을 취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며칠 전 북부 모리타니 국경에 접해있는 리차드톨과 다가나에서 많은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좋은 이야기들만 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래, 어디 나도 힘든 이야기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오늘은 강하게도 들었다.
지난 2월과 3월은 단수로 밤잠 이루지 못한 두 달이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나오던 물이 어느 날은 새벽 1시가 넘어야 물이 나왔고 아침 7시까지는 나오던 물이 6시가 되기도 전에 끊기기도 했다. 물을 받고 자야 했고 아침에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하마탄으로 온 집안이 엉망이 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그렇게 4월을 맞이 했고 바캉스였지만 부재자 투표로 4시간 거리의 수도를 히치하이킹과 미니버스를 이용해 갔다 왔다. 그리곤 굳이 일주일간 현지인 집에서 머물며 월로프어를 급하게도 습득했다. 그렇게 바캉스가 끝나자마자 나는 보고서를 써야 했고 활동물품을 구매하러 다시 수도를 가야 했고 돌아왔을 땐 북쪽 모리타니 국경지대에 다른 단원의 개관식과 협력사업을 하러 가야 했다. 그리고 밀린 보고서와 물품 리스트 정리가 께베메르에서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어제까지 나 이렇게 바쁘고 힘들고 열심히 지냈다!라고 떵떵거리고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몸살이 났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매일 하던 청소는 뒷전으로 한채 24시간을 망고 하나와 약한 알 먹고 잠만 잤다. 이 문단에서 나의 숨참이 느껴지는가?
내가 억울하고 화가 나는 건 어떤 단원들이 그렇게 쉽게 나의 가짐 들을 말해서도 아니고 내가 무리한 스케줄을 잡아 아파서도 아니다. 단원의 말은 그만큼 내가 잘 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아픈 거야 며칠 약 먹고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 나는 최근 몇 달간 공교육이 얼마나 힘든 교육인가에 대해 심오하게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나는 대학 내내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고 프리랜서로 카페 창업하시는 분들 기본적인 초콜릿 교육을 해 드렸다. 대부분 이윤을 꽤 취득하는 교육을 진행했었고 이윤을 꽤 취득하는 교육은 학생들이 수업 집중도가 꽤 높다. 큰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 무상교육에 가까운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아이들의 발랄(?)함에 초기에 많이 힘들었다. 아니, 수정하겠다. 여전히 도 힘들어하고 있다. 어느 날엔 한 학생이 수업 내에 핸드폰만 만지고 있기에 내 수업에서는 절대 핸드폰을 사용해선 안된다고 강하게 공지를 했다. 내 수업에서는 흰 티셔츠를 착용하고 바지를 입어달라고도 했다. 머리는 머리카락 한올 나오지않게 두건을 해달라고 했고 여전히도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분들께서는 부정하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학생들은 내가 본인들 또래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내 수업의 학생들은 18세-22세로 구성된 아이들로 나보다 키가 크고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어려 보인다. 하하. 아무튼,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아이들이 나를 막대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처음부터 서열을 강하게 잡기 위해 노력했다.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강하게 서열을 잡지 않으면 내가 학생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까이! (이리와!)"
내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내 학생이 나에게 내뱉은 말이다.
"너, 마담 아이다(다른 요리 선생님)이나 마담 기세(기관장님, 교장님)한테도 까이!라고 하니?"
"빠흐동 (미안해)"
"다음부터 그러지 마."
"응 알겠어."
이 일상이 일상다반사였다.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으로서 인지해주지 않았고 그러면 나는 계속 저렇게 같은 말만 할 뿐이었다. 이로 인해 내가 월로프어를 배워야겠다고 강하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수업의 학생 중 두 명이 프랑스어가 전혀 되지 않았고 항상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월로프어로 통역을 부탁했던 것이다.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하니 학생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불어마저도 실력이 미비하니 우스워보일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의 시간 동안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월로프어 과외를 강행했다. 월로프어를 배우고 나서 양쪽 어깨에 뽕을 장착하고 당당하게 수업 엘 갔고 역시 아이들의 반응이 조금씩 재미있어진다. 첫 번째로 더 이상 월로프어로 나를 욕할 수가 없어졌다. 모든 걸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기초적인 아기 대화라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그들은 더 이상 월로프어로 욕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인지 그 날 두 아이의 반죽이 분리가 일어나 급하게 해결해주고 나니 아이들의 눈빛이 다시 한번 달라진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좋아졌는지 알았다.
*분리 : 수성 성질인 계란과 지성 성질인 버터가 제대로 섞이지 않아 분리되는 현상
한주쯤 흘렀을 까, 어느 날 나는 학교에 다른 일로 출근을 했고 내 수업의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내일 우리 뭐 만들어?"
"비밀이야. 내일 수업에서 만나"
라며 헤어지려는 찬라, 그 아이가 내 턱을 툭 치며
"시계 이쁘다?"
.. 응?
어머니께서는 나를 비폭력적으로 키우시느라 어릴 때 그 흔한 싸우는 만화영화조차 보여주지 않으셨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 세상 모든 폭력적인 영화의 주인공이 될뻔했다.
"너 왜 내 턱을 이렇게 치는 거야?" 라며 똑같이 턱을 쳐줬다.
"빠흐동(미안해) "
유독 그 아이가 나를 무시 해댓고 그 아이가 유난히도 심하게 나를 대했던 것이다. 당장 일어나 오븐을 보러 가라는 나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일명 어깨빵이라는 걸 하며 지나갔고 모든 내 레시피에 태클을 걸었다. 이것은 외국인 이여서일지, 또래 정도로 보이는 내가 선생 나부랭이라며 와서 흉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우스운 건지 혹은 동양인이기에 우스운 건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곳 세네갈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강하게 자란다. 많이도 맞고 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윽박지르며 키운다. 그래서 웬만큼 소리 지르지 않으면 간지럽히는 수준이다. 싸울 때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근조근 따져대는 성격의 나는 큰소리를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얼추 반년) 다음날 수업시간에 쉬는 시간에 먹을 멜론을 챙겨갔고 멜론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 어제 엄청 화가 났었어."
"왜?"
"oo가 내 턱을 이렇게 치는 거야! 세네갈은 보편적인 일이니? 내가 이곳 문화를 잘 이해 못하고 있니?"
"아니야~~~~ 보편적인 일이 아니야~~!!"
"그런데 너는 왜 자꾸 나에게 이렇게 하는 거니?"
"미안해.. 안 그럴게.."
"나는 열심히 이곳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네가 자꾸 나에게 이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미안해.. "
그렇게 또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끝이 난 줄 알았다. 잦은 그녀의 횡포로 나는 무뎌져 갔지만 오늘 사건이 터진 것이다. 강하게 대해 긴장을 주고 조금씩 풀어줬다가 긴장을 줬다가 하면 될 줄 알았다. 긴장을 풀어주는 순간 세상 모든 고삐가 풀렸다. 이곳 세네갈에서는 대체로 가루우유를 쓰는데 수업 재료로 가루우유로 뜨거운 물을 섞어 우유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 내에 가끔 아침으로 빵을 먹는데 우유가 수업 재료로 쓰고 조금 남아 같이 먹으라고 줬더니 모든 수업 재료로 아침 뷔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계란이라는 계란은 오믈렛으로 변신해 있었고 다음 수업에 써야 할 우유도, 계란도 전쟁을 치르지도 못한채 이미 아이들 뱃속에서 사망하셨다. 다음 수업시간에 써야 하는 재료들이니 다음부터 이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정리하라고 했더니 한 아이는 두통이 있고, 한 아이는 매주 토요일 병원에 가 진료를 받을 만큼 빈혈이 있고, 한 아이는 복통이라며 약을 내놓으란다. 약은 약국에서 찾고 병원은 토요일에 가니 오늘은 화요일이고 두통인 친구는 다음부터 두통일 땐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개판오분전이다.
"너는 오븐을 보고, 나머지 학생들은 여기 정리하도록해!"
"너가 누굴말하는거야?"
"oo는 오븐을 보고 나머지는 정리하도록 해 "
"네"
"oo, 너는 왜 계속 앉아있는 거야? 오븐 확인하지 않고?"
"저 아파요"
"어디가?"
"음.. 배가?"
"나도아파. 좋아. 그럼 우리 모두 아프니까 오늘 마담 기세(기관장, 교장선생님)에게 가서 면담을 해야겠어. 당분간 내 수업을 중지해달라고. 모두 아프니까 다음 주에는 수업에 나오지 말도록 해."
(아이들 이구동성)"아니야!!!!!!!!!!!!! 안 아파!!!!! 안 아파!!! 정말로 안 아파!!! 미안해!!!"
"왜 너네 아프다며? 아프면 쉬어야지 왜 수업을 들어~ "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이야!!!!"
"오늘 수업 전 한 학생이 자꾸 휘핑기를 쓰는 수업을 해서 너무 피곤하대. 너네 피곤하니?"
"응"
"그럼 앞으로 피곤한 사람은 내 수업에 나오지 말도록 해."
"아니야~~!!! 안 피곤 해!!!!"
"그리고 다시 한번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마담 기세에게 학생들을 바꿔달라고 할 거야. "
"마담, 누썸 데졸네. (선생님, 우리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
그간 가볍게도 빠흐동으로 끝난 이야기가 드디어 데졸네 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믿어보기로 한다.
"좋아. 그럼 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어. 마지막 기회야 다음 주 수업을 한번 더 보고 그때 마담 기세와 면담을 할지 말지 정하겠어.
그리고, 너네가 내 턱을 치고 선생님에게 이리와! 저기 찾아봐! 이런 식으로 착하지 못한 학생으로서 행동을 한다면 나는 모든 세네 갈래는 보편적으로 이렇게 못땐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한국에다가 이야기할 거야. 모든 세내갈래는 이렇게 행동한다고. 너 하나의 행동이 한국인들은 모든 세네갈래는 이래~라고 알게 될 거야. 이해했니?"
"마담, 우리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음 수업시간 지켜볼 거야. "
"네 지켜봐주세요!"
이렇게 오늘의 기싸움은 끝났다. 오늘의 기싸움은 이겼지만 내 몸살은 가혹해졌다. 대체 누가 이겼다고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글 쓰며 헛웃음이 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글을 쓰고 있자니 또다시 아이들이 귀엽게 느껴진다. 수업 학생들을 바꿔달라 요청하겠다는 나의 말에 싹싹 빌며 잘못했다는 다 큰 아이들이(심지어 나보다 큰) 꽤 귀엽게도 느껴졌다. 또 사진을 바라보니 하나같이 이렇게 이쁠 수가 없다. 이렇게 미운 정이 들기 시작하나 보다. 어릴 때부터 너무 강하게 커온 아이들이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같이 열폭하기도 한다. 대체 교육이라는 건 무엇일까? 이렇게 아이들을 거르치면 이 아이들은 나의 가르침에 잘 따라오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길을 인도하고 있는 걸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내 수업은 수업이 끝나면 제품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학교 사람들에게 판매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 나오기까지 내가 끝까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반죽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 날이면 다 같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오븐을 맡기기 시작했다. 매일 아이들 옆에서 오븐을 지시했다면 최근에는 아이들이 굽기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을 하게끔 하려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컨디션이 꽤 중요하다. 아무래도 날이 더운 날이면 모두 쳐지고 늘어지기 마련이다. 다음 달이면 라마단이 시작이 되는데 우리 아이들의 짜증을 내가 다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벌써부터 생긴다. 바캉스 시작하기 전에 우리 좀 더 열심히 달려보자! 밉상 이쁜이들아!
글쓴이. 김은빈
직업. 영감님처럼 동네 시찰 나가기
부업. 세네갈의 작은 마을 께베메르에서 아이들 요리교육을 하며 지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