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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May 10. 2016

아빠를 만났다.

세네갈레인줄 착각하고 있는 하얀 뚜밥의 이야기


며칠 전 루가 주 여권 관리국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아직 거주증을 재발급받으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왜 오라고 하느냐의 나의 질문에는 아무 문제없으니 오라는 말만 한다.



'아무 문제가 없으면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5월 5일에 오라고 했다가 새벽 한 시가 넘어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5일은 휴일이니 우리 금요일 만나도록 해. 즐거운 연휴 보내고 금요일 봐!



아니 뭐 이런! 휴일에 오라했다 새벽에 메세지보냈다, 내 한국이름을 이야기하지않았더라면 무시하고 안갔을텐데. 마담 은빈 킴?이란말에 일단 가보자 마음먹어본다



그리고 5월 6일 아침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선다. 가라쥬(터미널)에가도 미니버스나 버스밖에 없을 테니 일단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시골에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스킬이 필요하다. 게 중, 나처럼 가라쥬(터미널)에 차가 없는 경우는 히치하이킹할만한 철판과 다정함 그리고 웃는 얼굴이 필요하다. 지속된 히치하이킹 속에 점점 스킬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번 수도 갈 때 현지인이 알려준 히치하이킹의 좋은 스팟은 바로 이곳이다.



바로 방지턱 앞!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이므로 나의 로케이션을 외쳤을 때 응답을 가장 많이 해주는 핫스팟이다. 바로 집 앞에 방지턱이 있어서 시도했고 5분도 채 되않아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에 히치하이킹을 통해 알게 된 친구의 이름은 오마르, 그리고 그의 형(미안 이름 까먹었어ㅠㅠ). 다카르에서 자동차 판매원을 하고 있고 루가를 지나 고향집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중이라고 한다. 마침 여권 관리국에서 전화가 왔고 나는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마르에게 전화를 넘겨 위치를 좀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오마르는 설명을 듣더니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쯤 되면 눈치들 채셨겠지만 그렇다. 처음엔 루가 초입에 주유소에 내려달라고 하며 탔지만 결론은 '나 여권 관리국까지 데려다줘'라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여권 관리국에서는 다시 전화가 왔다. 이곳 세네갈 사람들은 해외를 나갈 일이 그렇게 잦지가 않기 때문에 특히 이 시골 루가에 여권 관리국 위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간판도 없을뿐더러 그냥 한 집에 사무실이 딱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이 오마르는 위치를 잘 모르니 본인의 집을 안내해 줄 테니 본인 집으로 오면 사무실로 함께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매소드 연기가 시작되었다.


"집으로 오라고!!?? 왜 내가 너네 집으로 가야 해!!??"


라며.. 그의 말은 다 이해했지만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오마르는 내 통화소리에 꽤 심각해졌다. 그리고 꼬치꼬치 케뭇기 시작했다. 통화 전 오마르 형과 월로프어로 대화하기 하고 있어서 어렵게 월로프어로 대화하니 형에게 "있어봐! 프랑스어로 말해. "라며 심각하게도 물어댄다. 그와 아는 사이인지, 그 사무실을 왜 가는 건지, 그 사무실에 가본 적은 있는지, 그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의 걱정과 우려는 우주를 뚫을 기세였다. 그리곤 오마르가 전화를 바꿔달라 했고 설명을 해주면 근처에 갈 테고 루가 사람들은 알 테니 그쪽에서 택시를 테워 보내겠다고 하며 멋지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시어머니 잔소리보다 무섭게도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마을 안에까지 들어가 오마르 형이 택시를 잡아 월로프어로 내가 가야 하는 곳 위치를 설명해주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이 있었다. 오마르 집이 유숙소 근처라는 소리에 다음에 다카에서 밥이나 한번 먹자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곤 헤어졌다.



거의 6개월 만에 여권 관리국에 방문을 했다. 여전히 도 고요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여권 관리국 디렉터와의 만남에 나는 경악을 했다. 아빠가 그곳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내 친구에게 아무리 아빠랑 닮았다고 해도 믿지 않았지만 이 사진을 본 내 여동생은 "헉!! 정말 닮았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이 사진과 함께 아버지께 어버이날 인사 메세지를 보내드렸다. 하하.

하여튼, 이 무슈 코미세르 죱은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세네갈에 오기 전에 세네갈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응, 축구로 유명하잖아! 그리고 한국에서 세네갈 생선들이 수입이 돼!


-세네갈은 왜 선택한 거야?

나는 아프리카에서 살고 싶었고 그때 남자친구는 브라질에 있었어. 그래서 제일 가까운 세네갈을 선택했어!


-.. 응? 내가 이해 못한 것 같아. 왜 세네갈을 선택한 거야?

내가 대학 때 탄자니아에서 온 친구랑 같이 살았었어. 그때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싶었어. 그리고 코이카를 통해 쓸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라 중에 남자친구가 있는 브라질이랑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오고 싶었어! (지도를 보여주며) 봐봐, 바다만 건너면 되잖아!


-그럼 왜 께베메르를 선택한 거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까올락, 다가나, 께베메르였는데 코이카가 나를 께베메르로 보내줬어!


-한국에서는 요리가 프로페셔널했어?

(매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응..? 응! 나 잘했어.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 공부를 했었어! 대학 때는 요리보다 메니즈먼트쪽으로 공부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 요리도 잘하고 경영도 잘해! 가끔 초콜렛 강의도 했었어. 그리고 아버지께서 제과,제빵,요리 학원 운영하셨었어 엄마는 제과점 운영하셨었고! 그래서 엄마 아빠가 많이 도와주셔!


...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 이야기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같은 계열에서 든든한 백업이 될 수 도 있지만 그만큼 기대에 부흥해야 했고 시작도하기전에 나는 그 기대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아버지 이야기하는 게 정말 싫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도 이젠 제빵인의 길을 접으시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지만 당시엔 그 누가 '아버지 잘 계시니?'라는 말이 정말 싫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실력이 그만큼 미치지 못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고 베이커리 현장 쪽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싫었던 부모님 이야기를 이곳에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당하게나 말하고 있다니, 못 믿을 일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어디야?

께베메르 여성 기술 교육원이야! (그러나 그는 이해하지 못했고 나의 기관장과 결국 통화를 시켜준 끝에 믿어주었다..)


-사람들은 어때?

물론 의사소통하는 것이 너무 어렵지만 재미있어. 사람들도 너무 좋고 착해. 가끔 학생들이 못 살게 굴지만 세상 학생들은 모두 그렇잖아?


-세네갈래 남자친구를 사귀어보는 게 어때?

... 응? 나 남자친구 있어!(없어도 있다고 해야 이곳 삶이 참 편하다.) 근무가 끝나고 나면 결혼할 거야!(이미 그는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남자친구랑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좋아~ 세네갈래를 찾아봐

사랑은 단 하나야! 이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때 세네갈래를 만나볼게! 참, 근데 브라질리언 친구가 세네갈에서 일하려면 비자받기가 어려워?


-응 한국인은 카테고리 B야 그래서 쉽게 올 수 있는데 브라질은 카테고리 C라서 초청비자가 필요해.

헉 그런 거야!?


-응 세네갈 현지인한테 초청비자를 받아야 해.

그럼 네가 써주면 되겠다! 네가 초청해줘!


-싫은데? 세네갈 남자를 만나봐~!! 브라질리언 남자는 세네갈에서 환영하지 않아

괜찮아 내가 환영해줄 거야!


-싫은데~~~?? 하하



그리고 그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예전에 다카에서 한 한국인을 만났는데 이걸 줬어!

 너.. 북한 사람 만났니?


-하하 나도 몰라 근데 아마 남한 사람일 거야. 이게 너무 좋았어. 피로 해소에 좋더라고!

알겠어 구할 수 있나 찾아볼게! 인삼차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고마워 이게 이름이 뭐라고?

인삼! 인삼이라고 해. 내가 이거 구해주면 내 친구 초청비자 해줄래??


-그래! 좋아! 인삼 구해오면 초청비자 해줄게!

알겠어! 어차피 다음 달에 다시 비자 연장하러 와야 하니 그때 만나!


-한 달이면 충분하지! 그래 한 달 뒤에 만나!

근데, 너 너무 우리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사진 한 장 찍으면 안 될까?





그렇게 그와 사진을 찍고 한참을 수다를 떤 후에야 여권 관리국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무슈 죱, 다음 달에 인삼 구해서 갈게요! a bientot!



 


세상 곳곳에 자꾸만 늘어나는 나의 엄마, 아빠들로 내 부모님께서 많이 서운하실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는 서울에도 엄마가 계시고, 지리산에도 엄마아빠가 계신다. 띠에스에도 엄마아빠가 계시고 이곳 께베메르에도 엄마가 있다. 다카르에도 엄마가계시고 이제 루가에도 아빠가 생겼다(내마음대로). 근사하게도 어버이날 감사를 하지 못했지만, 세상 곳곳에 있는 엄마, 아빠들로부터 많고 많은 사랑을 머금고 나날이 더 이뻐지고 더 행복한 딸이 되겠다는 말을 꼭 해주고싶다.

세상에 이곳저곳에 계신 나의 엄마, 아빠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하루 늦은 어버이날로부터, 은빈 올림.







글쓴이. 김은빈

직업. 영감님처럼 동네 시찰 나가기

부업. 세네갈의 작은 마을 께베메르에서 아이들 요리교육을 하며 지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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