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8일에는 새로운 강좌를 개설했다. 케이크 데코레이션 수업이다. 사실 21일에 개강일이었지만 19일 날 마갈뚜바로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거나 뚜바라는 성지에 순례를 떠났기에 학생들이 오지 않을 거란 조언을 듣고 28일에 시작을 했다. 그동안 맡았던 학생들이 아닌 새로운 학생들로 구성된 수업이었다. 그동안 맡았던 아이들은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길들여져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 시점에서 새로운 클래스를 맡는다는 것이 은근한 부담감으로 와 닿았다. 무엇보다 세네갈래들과의 기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수업 전날 조깅을 나갔다가 그 클래스의 학생들을 만났고 게 중 한 녀석이 "에! 빈따음바이! 어디가!?"라며 아랫사람 내려다보듯 팔꿈치를 내 어깨에 올리곤 삐딱하게 선체 말을 거는 것이었다. 덕분에 첫 개강 전날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프레젠테이션과 나의 소개를 준비했고 확실히도 올해 초 2월경 새로운 수업을 배당받았을 때와 또달른 느낌의 시작이었다. 수업이 다가왔고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만났고 "에! 빈따음바이! 안녕!!"이라는 말에 반갑게 답변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갔고 아침에 내게 말을 걸어주었던 녀석이 다시 말을 건다.
"마담 빈따, 오늘 휘퍼 쓰나요?"
너무나 당황했다. 수업시간 내에 아이들이 (그들에 비해) 작은 체구와 어려 보이는 얼굴로 동생 대하듯 막대하는 행동에 1년을 넘게 스트레스받아왔는데 강의실 들어오자마자 '마담'이라고 칭하는 아이들에게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 초 2월 첫 수업을 배당받던 날 어리바리하였던 나의 모습이 불현듯 스쳐가며 그날과 조금 달리 성장한 나의 모습으로 나의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 너희들이 알듯 나는 빈따라고해. 오늘 아침 나는 너무 행복했어. 강의실에 들어오니 너희가 나를 마담 빈따라고 부르더라고. 고마워. 나는 이곳에 요리교육으로 왔는데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모두들 마담빈따라고하지않고 빈 따라고 부르더라구. 그래서 나는 이곳 세네갈의 어린 청년들의 보편화된 성향이라고 생각했어. 강의실 밖에선 괜찮지만 적어도 내 클래스에서는 마담이라고 불러주길 바래. 나는 요리 및 메니즈먼트 분야에서 약 8년을 공부했어. 그래서 너희를 가르치러 온 거고.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했어. 왜냐하면 한국은 첫 번째 언어가 한국어고, 두 번째 언어가 영어거든. 그래서 아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잘 부탁해. "
이 간단한 인사를 10개월 전에는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1년이 지나고 나니 여유가 생긴 탓일까,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니 아이들의 나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도 자리가 잡힌 것 같다. 물론 이 아이들이 기존에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과 다른 등급의 클래스의 아이들이라 더욱 작업이 수월하고 빠르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잔소리하다 혈압 올라 퇴근하던 지난날에 비해 웃으며 강의 종료했던 첫날이었던 것 같다. 또 내가 배운 조리 용어들이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죽박죽 섞여있기에 아이들이 프랑스 용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함께 배워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 기존에 잘 알고 있던 단순한 베이킹이 아닌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접함으로 인해 아이들이 흥미도가 매우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수업을 진행하며 서로의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만 조급했던 나였다. 또 초반에는 낯설고 서툰 내 모습을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 열 살 남짓한 꼬마 아이들이 나를 때리고 도망가거나 조롱하듯 칭칭이라고 부르는 세네갈래들 모습에서 내가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 던 것 같다.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본인들보다 작은 체구에 어려 보이는 외모의 낯선 동양 여자애가 와 왜 마담이라 부르지 않냐 왜 이렇게 하냐 왜 청소하지 않냐 갖은 잔소리를 해댓으니 아이들도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었을 테다.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우고 부딪히고 울고 웃으며 정들며 생긴 관계 형성인 것이다. 초보 선생님의 서툰 교육방식이 아이들에게도 많이 힘들게 적용했을 거라 생각하니 미운 마음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우리는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왜 화가 났고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학생들도 쉽게 이해를 하게 된다. 물론 다음 수업이면 다 잊혀 가겠지만.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큰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나도 아이들도 서로가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제 아이들과 실습실 청소를 했다. 1년간 묵히고 묵힌 숙원사업이었다. 수업시간 아이들이 실습하는 틈을타 조금씩 청소를 했지만 나 홀로 청소를 백날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기관장에게 이야기를 해 나의 수업시간을 이용해 청소를 시키겠다고 선포를 날렸다. 코이카는 심의회를 통해 통과한 단원에게 현장 사업의 기회를 준다. 단원이 모두 기획을 하고 진행을 하고 정산, 결과보고를 하는 프로젝트이다. 나는 실습실 위생환경개선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 이렇게 정리하지 못한 실습실에 위생환경을 위해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 적용되겠냐고 기관장, 부기관장, 요리과 선생님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날렸다. 정리되지 않은 물품들로 사용하기조차 어려운데 새로운 물품을 사는 것이 과연 학교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들은 그동안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변명들을 한다. 필요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습실이 깨끗해야 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이번 아이들과 한 청소는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실습실을 모두 뒤집어놓으니 아이들이 아주 당황스러워한다. 게 중 한 녀석은 이렇게 말한다.
"마담, 이렇게 정리해도 내일 되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여기는 세네갈이에요. 세네갈래는 원래 정리안 해요."
"원래 그런 건 없어. 우리는 조금씩 변화해야 해. 요리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위생이야. "
또 다른 녀석이 말한다.
"마담, 마담 쟈이가 마담빈따처럼 이렇게 다 뒤집어서 청소를 했지만 결국 이렇게 더러워졌어요"
"왜 더러워졌다고 생각해?"
"다른 학생들이 쓰고 이렇게 만들어놨거든요"
"너희는 깨끗하게 썼어?"
"그럼요! 우리는 잘 쓰고 있어요!"
"그럼 다른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왜 말하지 않았어?"
나의 질문에 그새 입을 꾹 다물곤 청소를 시작한다. 식기구를 보관하는 장안에는 거미줄과 먼지들로 가득했고 도마는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1년간 열심히도 참고 참았다. 처음부터 잘못되었음을 말했다가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를 이야기하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꽤 털털한 성격임에도 처음에는 손도 못 댓던 현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고 빵집에서 산 빵이 곰팡이가 피어도 묵묵하게 넘어갔었다. 선물 받은 빵에서 곰팡이가 피어있는데 차마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포장해 배가 부르다며 가방에 넣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지켜보고 싶었다. 이들의 위생상태와 사고방식을.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문제들이 많았다. 설거지를 함에 있어서 항상 락스와 세제를 섞어 쓰지만 헹굼이 옳지 않았고 상한 음식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낮았던 것이다. 곰팡이가 핀 빵을 먹고도 아프지 않은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내성이 생긴 건지 티를 내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개선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첫 번째로 주방 위생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옥스팜에서 나온 글에서 니제르의 영양실조 가장 큰 원인은 식량부족이 아닌 더러운 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러운 물을 마심으로 인해 설사병에 걸리고 구토를 하고 체중이 급감하여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섭취하는 것들은 위생이 가장 중요하고 개도국에서 개선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사고방식과 인식들을 바꾸는 것이다. 큰 변화를 당장 기대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우리 아이들이 위생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