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 L양이 가나를 시작으로 스페인으로 향해 횡단을 하며(물론 자동차로) 께베메르를 스쳐지나갔다. 우연히 건너 건너 알게 된 L양은 나와 연락이 닿았고 우리 집에서 이틀 머물게 된 것이다. L양과 내 친구 맘 소다와 롱 뿔에 가 수영을 하러 갔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맘 소다는 수영을 하는 우리를 보며 얼른 나오라며 소리 질렀던 것이 엊그제 같다. 어젯밤 급하게도 맘 소다가 불랑제리로 부르더니 동생 결혼식에 초대를 하며 L양의 안부를 묻더랬다. 순간 최근에 께베메르로 이사 온 새로운 한국인 M양을 칭하는 줄 알고 물었더니 그 이름이 아니었단다. 혹시 L양?이라고 했더니 맞다며 너무나 반가워하며 어떻게 지내냐는 것이다. 지금 L양은 영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여행을 하지 않냐는 그녀의 말에 L양의 의사 따위 무시한 체 "응 돈이 없대. 영국에서 일해서 돈 모아서 다시 여행한대"라고 했더니 맘 소다의 한치의 망설임 없는 한마디가 나온다.
"니가 돈 보내주면 되잖아. 왜 안보내줘?"
"응????? L양 일하고있잖아. 곧 돈모을수 있지않겠어? 그리고 보통 한국은 자기가 벌어서 자기한테 쓰거나 가족들한테 쓰는 편이야. "
"오! 말도 안 돼! 지금 돈이 없다잖아!"라며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한국에도 간혹 친구가 많이 어려우면 도와주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는 나의 설명에 참 인색하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가 힘들고 어려우면 도와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당장 많이 어렵고 긴급한 상황이면 말이 다르겠지만 본인이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 돈을 모을 시간이 있는데 내가 왜 도와주어야 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있으면 도와줘야지! "
세네갈은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언제나 충격적이지만) 은행에 계좌를 오픈하러 갔는데 매달 한화로 약 8천 원씩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매달 돈이 들어온다고 했더니 이곳도 적금 계좌는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모든 입출금계좌도 소량의 이자가 붙는다고 했더니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나는 매달 8천 원씩 수수료를 낼 수 없다는 말에 마담 귀세는 "빈따는 돈을 너무 좋아해!"라는 것이다. 전 선배단원을 이야기하며 한국인은 돈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의 씀씀이에 대한 가치관에서 부딪힘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적으면 초조해지는 나에 비해 내 친구들은 모두 다 쓰고 "빈따 나 근데 돈이 없어!"라고 할 때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내가 가진돈이 5 만세파(한화 약 10만 원)인데 당장 눈앞에 보면 큰돈이지만 만약 이 돈으로 몇 달을 살아야 한다면 결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들 눈에는 앞으로의 3달을 살아야 하는 돈으로써 생각되지 않고 당장 나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 돈을 모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많이 달랐던 것이, 이곳의 부자들은 아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고도 남으면 '쌓이는'개념으로써 부자들은 정말 부자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껴 모아둔 돈을 보며 '부자'라는 인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당연히 도와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빌라지나 이쪽 사정은 잘은 모르지만 최빈 국치고 세네갈은 생각보다 굶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모두가 요리를 넉넉하게 준비하고 나눔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해서 모든 음식을 먹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면, 이들은 남겨서 길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미덕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이곳에와 어마 무시하게 큰 쟁반 위에 요리를 보며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평생을 음식을 남기는 것을 죄악으로 배워온 탓이랴. 적어도 나의 경우 한국에서 넉넉하게 요리를 준비하거나 무언가를 넘쳐흐를 만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의 욕구를 모두 충족할 만큼 쇼핑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배웠고 돈이 생기면 알뜰하게 분리해 한 달 생활비를 빼고, 적금을 넣고, 비상금을 만들고 이런 식의 뿌리 깊은 절약정신 때문인지 특히 돈 이야기가 나오면 자주 부딪히는 의견 차이 문화 차이를 새삼스레 느낀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며 자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물론 발전은 느리지만 함께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요즘이었다. 하지만 내 뼛속 깊이 박혀온 절약의 정신은 변할 수 없나 보다. 여전히도 매일 싸우는 것을 보면.
"빈따, 나 200원만 줘. "
"왜? 내가 너에게 200원을 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 "
"음.. 나 배가 너무 고픈데 돈이 없어. "
"배가 고프면 일을 해야지.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지. 왜 일을 하지 않는 거야?"
"배가 고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 "
"어제도 배가 고팠을 텐데 밥을 먹었을 거 아니야? 근데 왜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모으지 않았어?"
"음.. 그냥 200원만 줘 배고파. "
"내가 지금 200원을 주면 일을 시작할 테야?"
"응 인샬라. "
지금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더럽게 200원 가지고 쪼잔하게 구는 뚜밥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돈달라며 내게 찾아오는 아이가 한명이 아니라는것을 친구들이 알아주면 좋겠다.(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