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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Jan 18. 2017

저보수 공생사업

코이카는 매년 현장사업 심의회라는 것을 통하여 기관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 단원이 직접 기획을 하고 사업 피티를 통해 승인이 난 경우 프로젝트 진행을 하며 정산, 결산까지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과의 많은 대화가 절실하다. 특히 이 사업은 개인적으로 최대한 기관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어느 정도 기관의 사정이나 일을 진행 해본 후 기관과 함께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실습실 위생환경 개선에 대해 프로젝트를 준비했는데 기관에서는 나의 프로젝트를 머리로는 이해하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한국과 너무 다른 위생인식으로 인해 그저 유난 떠는 외국인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실습장에 쥐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접시 위에 수많은 쥐똥들과 개미, 바퀴벌레들로 곤욕을 치렀던 1년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깨끗하게 닦아서 쓰면 되는데 왜 꼭 깨끗하게 유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또 비싼 스테인레스 수납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 지난 반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 대화하며 스스로가 너무나 한국의 기준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 왔다. 무리한 진행을 준비하는 것인지 혹은 이것이 내가 진행해야 하는 교육의 일환인 것인지 꾸준히 대화 해왔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과 대화 한 결과 머릿속으로는 위생이 중요하다는 것이 인지되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며 진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 지난 여름 한국에 있는 조리전공자 및 근무경험자 81명을 상대로 설문을 해 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위생이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때때로 이곳에서 살면서 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한국에서의 내 삶과 생각에 대해 혼란이 올 때가 있다. 특히 이 위생개선사업에 대해서 시작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 했던 것이 나중에는 이것이 이들에게 정말 옳은 방향인가에 대해서 흔들렸던 것 같다. 그 설문지와 현지 교사들과의 대화에서 다시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위생 인식에 대하여 내가 설명을 했던 방식으로 이미지 연상하기였다. 특히 이곳은 길거리에 말 마차나 동키, 각종 염소, 양들이 많다. 그 덕분에 길거리에는 그들의 분비물이 득실거린다. 그곳들을 쥐가 지나와 접시에 옮기고, 접시나 각종 식기구에 쥐 배설물이나 많은 더러운 것들이 올려있다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좀 많이 지저분하지만 그 접시에 밥을 먹고 있을 때 연상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다가 지속적으로 강하게 이미지를 연상 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더니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더 심각하게 잔인하게(?) 설명했다고 상상하면 되겠다.     


  

또 이 사업을 통해 기관은 1차원적인 그릇들과 접시, 각종 식기구들만을 원했었는데 그 식기구들을 왜 학교가 필요 하는지 그것을 통해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교사들이 직접 기술하도록 하였다. 또한 그것을 이용해 교묘하게 위생 교육을 진행 했었다.  수업 이후 사용하였던 접시나 포크 등이 그냥 실습대 위에 올려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설거지를 마무리 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다. 내 수업의 경우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타 수업에서 수업에서 만든 요리를 교무실이나 다른 과 선생님들이 맛 보고 돌아온 접시들로 추측되는 그릇이었다. 학생에게 설거지하라고 했더니 본인이 사용한 접시가 아니기 때문에 설거지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접시를 들고 현지 교사를 찾아갔다. 우리 프로젝트로 구매한 그릇들이 이렇게 쓰여진다면 결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기본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학교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다. 매번 학생들에게 설명하지만 학생들이 잘 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기에 다시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것이 우리 선생님들이 해야 하는 교육이 아니냐고 다시 되 물었다. 이 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실습실 모습을 보며 그 현장을 사진만 계속 찍어댔다. 그리고 내가 사진 찍는 족족 학생들은 쫓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사실 다른 단체에 비해 코이카 단원이 사용하는 금액이 적지가 않다. 활동물품이라는 것을 통하여 2년간 2500불의 지원금이 나와 기관이나 단원이 근무하는 데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 할 수 있다. 또한 이번에 내가 진행하는 현장사업의 경우 3만불 이하의 금액으로 심의회를 통과 한 경우 사업진행을 할 수 있다. 다른 지카나 피스콥, 프랑스 봉사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이렇게 후하게 돈을 지원해주는 단체는 없었다. 그렇기에 단원으로써 그 돈이 모든 한국인들의 피와 땀이 섞인 세금이라는 사실이 항상 물품을 사거나 사용을 할때마다 책임감이라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나는 기관에 코이카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해주려고 한다. 코이카라는 이 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며 이 자금은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항상 설명을 하는 편이다.      



“코이카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게 있어. 한국에 있는 우리 부모님께서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셔.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일을 할 거야. 그리고 그 많은 한국인들이 정부에 세금을 내. 그리고 정부는 코이카에 그 세금의 일부분을 주고 우리는 그 세금으로 생활비를 받고, 활동물품 및 현장사업비를 받아. 그렇기 때문에 돈을 잘못된 곳에 사용하고 싶지 않아. 이 모든 돈은 모든 한국인들이 지불한 돈이야. 이 돈이 아무 의미없거나 유용하지 않게 사용된다면 나는 너무나 슬플 것 같아. “


    

 매번 설명을 하지만 사실 모두가 그렇듯 본인의 일이 아니기에 직접적으로 와 닿아 하지는 않는다. 코이카가 그냥 돈만 내 주는 기관이 아님을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매번 이 설명을 할때마다 기관에서도 도움을 주는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아프리카가 원조로 인해서 망하고 있다고. 모든 원조에는 단기, 중기, 장기적인 계획과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관은 단순히 코이카가 한 단원을 무상으로 보내주어 선생님 몫을 한 명 줄일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것 같다. 사업을 자기주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현지 교사가 직접 한 꼭지를 짜오도록 하였다. 현지 교사와 기관이 나에게 식기구가 필요한 이유와 기대 효과에 대해 설명해 준 바로,  식기구들로 케이터링 사업을 진행   있으며 추후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을  있다는 것이었다. 코이카 사업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나는 똑같이 설명을 했다고 말하며 한마디를  붙였다.     



“사실 우리가 필요한 사업은 창고였잖아, 이 사업을 통해 나중에 돈을 모아 창고를 학교가 직접 짓고, 실습실이 부족해 레스토랑을 실습실로 개조 해서 쓰니 레스토랑을 학교가 직접 지을 거라고 설명했어. 언젠가 코이카가 단원을 그만 보낼 텐데 평생 도와줄 순 없잖아. 기관도 자립해야지”


    

 이 사업을 진행하며 기관에서 가장 먼저 요청했던 것이 창고 건축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기존 레스토랑을 실습실로 사용하고 있으니 새로운 레스토랑을 건축해 달라는 것이었다. 코이카는 현지 건축사정이 많이 열악하기 때문에 단원의 선에서 소액으로 건축을 진행하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사실 우리기관은 2012년도에 룩셈부르크에서 신축을 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웃긴 사실은 2013년 천장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임지에 파견되고 보수공사를 완료 하긴 했지만 룩셈부르크처럼 그냥 지어주고 잊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책임이라는 무게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도 않을뿐더러 지속적으로 파견되는 단원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 될 부분에 대해서는 애초에 지양 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건축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은 사무소에서 직접 전문가를 동원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편이다. 그런이유로 건축 부분은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튼, 기관장이 쇼크를 받았던 부분은 첫 번째로, 단 한번도 단원 파견이 끊길 것이라는 것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세네갈의 정부에서 선생님들의 월급을 지급하듯 코이카는 당연히 단원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해 져 온 것 같다. 두 번째로, 그 기관에서 낸 수익금은 학교에서 다른 부분에 사용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기관이 요청 했던 창고와 레스토랑을 직접 학교가 짓는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히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고 기관이 그런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아프리카가 원조로 망하는 이유가 아닌걸까.      



단원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든 일이 나 혼자서는 일을 잘 할 수 있는데 현지 교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적어도 내 수업 안에서는 학생들이 나의 기준에 맞게 위생관리나 수업스타일이 맞춰져 있다. 뒷정리하는 방법도 타 학생들에 비해 꽤 흡족하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학생들 외의 학생들의 정리나, 위생관리를 위해서는 교사교육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위생관리에 대해 백날 세미나를 열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제는 잘 안다. 내가 실습실 사용의 매뉴얼을 만들어 붙여놔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현지 교사들은 왠 동양의 한참 어려 보이는 애가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또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실제로 초반에 이곳에 오자말자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두 개의 통에 하나는 물과 세제를 잔뜩 풀어서 씻은 후 두 번째 통에 담긴 고인 물에 헹구는 것이었다. 한 교사에게 마다(세제이름)는 몸에 좋지 않다고 했더니 내게 되물은 질문은 “빈따, 그럼 어떤 세제를 써야 하는데?”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1년간 입을 다물었고 지켜봤다. 곰팡이가 핀 빵을 건네주면 배가 부르다며 조용히 포장해 가방 속에 넣었고 개미가 드글거리는 실습실을 묵묵히 청소만 했다. 쥐똥이 드글거리는 접시를 락스물에 담궈 묵묵히 소독을 할 뿐이었고 바닥에 놓여진 도마에 뜨거운 물을 계속 부어 소독할 뿐이었다. 1년간 실습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지켜보았고 현지 교사들과 신뢰를 쌓은 1년쯤 되었을 때 교사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 기관장과 부기관장에게 부단히도 설명했다. 내가 직접 교사들에게 설명하는 것 보다 기관장과 부기관장이 교사 공지를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옆에서 교사들이 위생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이 맞다고생각했다. 예를 들면 현지교사들이 실습실 사용 매뉴얼을 직접 쓰고 직접 실천하도록 했다.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저 깨끗해져서 고마울 뿐이라는 것을 1년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말은 모두 그럴싸하나 사실 관리가 여전히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포크, 나이프, 숟가락, 휘핑기 구분을 지어 정리를 해 놓아도 이틀 뒤면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선생님들 또한 그렇게 한평생을 자랐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강하지 않아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10년 전 대학 원서를 쓰며 조리학도로써의 꿈 꾸던시절 다짐했던 것이 있다. 요리사는 의사보다 더 우리삶에 중요한 직업이라는것이었다. 의사는 병든자를 고치는 사람이지만 요리사는 음식으로써 아프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식품이나 먹거리를 통한 질병발생과 사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남은 9개월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위생교육이 지쳐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봉사활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끔 한 일이 있었다. 나 또한 초반에 나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불렀던’봉사단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동안 착각해 왔던 ‘봉사’에 대해 그녀 또한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초반에 내가 썼던 글 중에 봉사단원, 봉사활동이 아닌 ‘저 보수 공생사업’혹은 ‘무보수 공생사업’ 정도로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업준비와 각종 보고서들 때문에 조금 바쁘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 거기 일하러 간 거 아니지 않니? 그냥 봉사하러 간줄 알았어.”    


대체 일하는 것과 봉사활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했다. 물론 오해할 수도 있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말 중 ‘봉사’라는 단어가 일으킨 오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저 단순노동에 지나지않는, 벽화그리기같은것만이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다. 아프리카 원조의 늪이 만들어진 과정이 이 모든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1년간 단원생활을 하며 결론내린 내가 생각하는 나의 봉사단원으로써 정체성은 기관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하여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있는 2년간은 힘들테지만 먼 훗날 언젠가 기관이 지금처럼 갑작스레 쫓겨나듯 창고를 비워야만 했을 때 창고를 빌려달라고 더이상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요청하지 않고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돈을 모아 직접 건축을 진행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많은 단원들이 그저 ‘공짜인력’이나 ‘돈줄’이라고 생각하는 기관의 태도에 많이 화를 낸다. 나 또한 그 부분에 대해 많이 화를 내고 억울해 했다. 하지만 오늘 기관과의 대화에서 느낀 바,그것이 과연 기관만의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우리 기관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코이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 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코이카에서 단원이 파견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단원과 기관이 나아가야할 방향성, 원조의 최종 목표에대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비단 우리 기관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원조를 통하여 기관이 스스로 자립을 하고 스스로 운영이 되게끔 이어져 가야 하는데 그들의 삶에 한 지방덩어리처럼 붙어있게 만든 이 상황이 결코 기관만의 과제는 아니었다.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그저 ‘공짜인력’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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