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페드로, 서쪽 여정기 -2편

by 은콩



지난 이야기에 이어, 낯선 이의 도움을 받기에는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함께 있었던 독일인 마리는 히치하이킹은 그렇게 잘하면서 낯선 이의 집에 가는 것은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물었다. 히치하이킹 또한 사건 사고가 간혹 있듯이 완전히 안전하다 할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의 내 촉을 믿고 따라갈 수가 있다. 상황판단을 하고 아니면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낯선 이의 집은 내가 타인의 공간에 감으로써 위험의 노출이 더욱 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치서핑의 프로필과 레퍼런스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두 개의 레퍼런스는 거짓으로 받아 낼 수 있을지언정 열댓 개의 다양한 나라의 국적의 사람으로부터 레퍼런스를 받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나의 감각은 그가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의 직업, 아버지의 직업 등을 캐물어가며 30분여간의 실랑이 끝에 나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금을 속옷에 숨기고 그의 동네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감각은 옳았고 정말 그 동네에서 그의 아버지집이 가장 부자라는 사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4층짜리 빌라 같은 집에 세명의 와이프와 16명의 아이를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서아프리카의 문화인지 무슬림의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어른들을 만날 때 여성들은 악수를 하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피는 것이 예의이다. 그곳이 무슬림의 집안이어서였는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꼭 세네갈에서 알고 지내던 문화권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편하게 그의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소개를 했고 하루 신세 지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내가 책에서만 보던 혹은 말로만 듣던 주술 사였던 것이다.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주술로써 사람들을 낫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의 테라스에는 실 뭉텅이가 있었고 이게 무엇이냐 물으니 엮고 엮어 팔찌로 만들어 전쟁에 차고 나가면 총알도 칼도 그의 몸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노후된 장비들과 칼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호스트 해주었고 아침밥까지 만들어주었다. 사실 당시 핸드폰에 배터리가 없어서 독일 여자애가 그 장비들과 모습들을 찍었고 사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받질 못했다. 이러다간 글을 쓸 수 없을 것 만 같아서 글을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진을 받게 된다면 추가하는 것으로.



20190301_091313_HDR.jpg 그랑 베레비 가는 바카 안 (상페드로-그랑 베레비 1000 세파)

우리를 이렇게 호스트 해준 그 첫째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다. 나는 그를 A 군이라고 칭하겠다. A군은 처음 본 내게 밤하늘의 별을 보며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그는 내 나이를 가늠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23살이라던 그에게 내가 30대라는 것을 이야기하니 세상 동공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짝꿍이 있단 소리에 아쉬워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아버지 차로 Grand bereby까지 데려다주는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우리는 결국 총 3시간이라는 시간을 걸려 그랑 베레비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해변으로 향하였다. 그곳은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해변에서 놀다 보니 해변 끝자락에 리조트가 보였고 우리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간단히 음식을 시키고 종일 먹고 책 읽고 수영하고 그런 휴양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타이 공원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그 지역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호텔 음식은 세상 맛이 좋았고 밤 11시까지 즐기고 놀다가 그랑 베레비 시내로 나와 하루에 15000 세파 하는 호텔에서 묵었다. 우리가 놀던 La Baie des Sirenes는 1박에 약 8 만세파(16만 원)이었고 시내로 나와 묵은 La Flotte는 1박에 15000 세파였다. 밤늦게까지 그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다가 나온 것은 참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 날 나는 지나가다가 한 레스토랑의 아줌마를 만나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Chez jojo를 듣게 되었다. 그곳은 이곳에 오기 전 그랑 바쌈에서 이탈리아 아저씨한테 들은 Chez Gus의 옆에 있는 리조트였다. 그랑 베레비로부터 오프로드를 타고 9킬로미터를 들어가게 되면 있는 리조트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꼭 가야 한다고 강추했고 나는 타이 국립공원을 가는 대신 이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곳 다 비슷한 느낌의 리조트이며 Chez Gus는 내가 흥정할 때 1박에 25000(5만 원) 세파였고 조식은 인당 3500(7천 원)이라고 했다. 흥정은 두 명이 조식 포함한 28000 세파였다. 결국 우린 가지 않았고 Chez jojo에서 그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동양인의 외모로 그 아저씨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나였음을 바로 눈치채곤 왜 오지 않았냐며 서운한 말을 하였다. 하지만 그랑 베레비에서 Chez jojo주인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그녀의 차를 얻어 타고 들어갈 수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가 준비해준 점심식사는 맛이 좋았고 (8000 세파) 단점은 외부에서 그 어떤 음료도 음식도 들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곳에서 다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파라다이스 비치는 정말 평생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 상페드로를 가겠다고 다짐했을 때 누군가가 그랑 베레비를 추천해주었고 그랑 베레비에 갔을 때 메 네케를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 타이 공원을 가기 위해 가려했던 Tabou까지 너무 아름다운 비치들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랑 베레비를 시작으로 그 아래쪽 해변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와 쓰레기 하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내 인생에 다시 그곳을 갈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꿈만 같은 그곳을 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교통

아비장-상페드로 : 아비장에서 SBTA를 타면 상페드로를 갈 수 있으며 차비는 6500 세파? 정도였던 것 같다. 마지막 야간 버스는 7시경이었으며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해 출발하니 아침 5시쯤에 상페드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간 버스는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므로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긴팔 잠바 하나 정도는 챙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페드로 - 그랑 베레비 : 바카를 타면 Agnie에 내릴 수 있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그랑 베레비로 들어가면 된다. Agnie 가는 길에 경찰 검문이 있고 신분증을 요구하므로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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