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Present.
무엇이 달라졌을까? 흔히들 하는 말처럼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것일까?
"아마, 많이 달라졌을 거야. 춤의 형태도 그리고 극의 흐름도 말이야."
"그래도 전 보고 싶은걸요."
아마도 갈 수 있을 것 같던 여행이 내내 미뤄지면서 나의 모든 스케줄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약속도 잡지 않고 몇 주를 내리 시간을 보내며 나의 가장 고루한 취미라 할 수 있는 현대무용을
보러 갈 기회를 놓치며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리기 일쑤였다.
하루에도 몇 편의 영화를 내리 보면서 현실과 현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던 어느 날,
반드시 봐야만 할 것 같던 그 공연은 매진되었고 나의 여행도 함께 취소되었다.
"티켓이 아예 없나요?"
"네, 삼일 연속 매진입니다."
"티켓, 없을까요?"
"네, 매진이네요. 삼일 모두."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전화를 할 수밖에 없는 멍청한 앱을 탓하며
어떻게 하면 그 공연을 볼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며 잠들었더니
꿈에 그녀가 나왔다.
그들의 여행에 잠시 동행했던 난 빙 - 둘러앉은 그들 중 한 명에게 티켓을 받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혹시, 티켓이 있나요?"
"네, 토요일 두 좌석 남아있습니다."
"오! 그럼 한 장만 예매해 주세요."
찰나 동안 누구와 함께 갈까를 고민하다가 함께 가 봤자 눈치만 볼 게 뻔한 공연이라
뭐, 혼자 가야지. 라며 드디어 티켓을 손에 얻곤
무엇보다 기쁜 마음에 들뜬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날은 한기가 가득한 날이었다.
오전 스케줄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누구보다 빠르게 걸어 겨우 도착한 예술의 전당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새로운 단장님은 정치인들의 그것과도 같은 새파란 색의 머플러를 소담스럽게 목에 두르고
새신랑처럼 이곳저곳에 인사를 하고 계셨다.
언제나 차가운 로비는 모처럼 뜨거워 보였다. 아마도 재빠른 걸음 탓에 내 몸이 달궈졌기 때문이겠지.
닥터 페퍼 한 캔을 들고 소파 구석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한다.
저마다 "나 이런 공연쯤 쉽게 보는 고상한 사람이야."라는 눈빛으로 걸어 다닌다.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것 같은 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보다가 중간에 나가도 되나?"라는 수다를 떤다.
학부 시절 내 모습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음악이 싫었던 나는 필참 음악회에 가면
맨 뒤에 앉아 멍 때 리거나 당시 피처폰으로 게임을 하곤 했다. 참, 예의가 없었지 싶다.
코트를 벗고 힐끔 시계를 한 번 보곤 공연장에 들어간다.
아마도 내가 처음 현대무용을 접한 건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었을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몸짓은
경쾌했으며 내가 생각하던 그것보다 훨씬 고상하고 파격적이었지만 뭔가 다가갈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어떤 남자가 새빨간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암흑의 시간은 언제나 좋다. 대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상상하는 그 시간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내가 그녈 어디에서 보았던가?
새 한 마리가 앵두를 머금고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을 내가 어디선가 보았던가?
익숙한 무늬들 - 사제의 몸짓과도 비슷한 그녀의 몸짓은 보는 시간을 영원의 시간으로 바꾸었다.
무엇이 그들을 춤추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우뚝 서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교감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지난 몇 년간의 국립현대무용단의 퍼포먼스는 점점
한국스러움 = 혼적인 움직임
의 피상적 형태였다면
단순히 長이 바뀐 것만으로 달라진 건 아니겠지만
이번 공연은 유일하게 한국적인 것을 미적으로 객관화시킨 것처럼 여겨졌다.
나의 미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그들의 선도 점점 달라지는 걸까?
아님,
그들은 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지는 걸까?
고유한 그들의 선적인 행위가 언제까지나
아름답고 파격적이며
순수하고 농염한 모습일지
너무나 기대된다.
그리고 참, 잘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영향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