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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n 07. 2022

워킹맘의 수다메이트

워킹맘에겐 수다 메이트가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 친구, 조리원 동기, 회사 워킹맘 동료가 있으면 만사 오케이. 

수다엔 힘이 있다. 남편과의 수다에는 답답함만 쌓일 때도 많지만 같은 엄마로서의 수다에는 사이다, 콜라, 소주에 버금가는 시원함이 있다. 물론 진짜 술과 함께 곁들이면 좋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불어 애를 봐줄 사람도 없어 호프집에서의 수다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게 한이다; 



제주도에서 수제맥주를 마시던 게 선사시대 일이 되어버렸다 

조리원 동기들과 늘 이야기하는 '소원'은 바로 애들을 두고 자유부인이 되어 호프집이나 이자카야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다. 아주 독립적으로. 이 사소한 일상이 소원이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깨톡과 전화, 카페에서의 수다가 제격이다. 미혼, 아니 애가 없었을 때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아이라는 공감대 하나 있을 뿐인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심지어 같은 월령일 경우 우리 아이의 발달 상태, 양육 태도부터 시댁 뒷담화까지 수다의 반경도 깊이도 남다르다. 


조리원 동기들이 없었으면 산후우울증을 어떻게 견뎠을까. 마흔한살 늦맘인 덕분에 내가 왕언니. 그 밑으로 7살 아래, 띠동갑 동생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초보엄마라는 타이틀 아래 똘똘 뭉쳐 도너츠 방석을 깔고 수면양말을 신은 채 수다를 떨었다. 

달밝은 밤이면 수유하다 내가 젖소가 된 거 같다는 말에 조리원 동기는 슬픈 젖꼭지 증후군(sad nipple syndrome)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다. 모유 수유시 생기는 우울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밤마다 라디오 틀어놓고 유축하면서 눈물 흘리는 게 미친 게 아니었다니. 지극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에 안심했다. 


"슬픈 젖꼭지 증후군이 있다고? 
밤마다 나만 우는 게 아니었어." 

학자들은 이 현상을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인간의 뇌 중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대뇌의 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추측한다"고 한단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셀프위로에도 불구하고 달 밝은 새벽, 코 골며 저 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원망도 하면서 애를 안고 있다 보면 여행에서의 바람, 다시 못 만나는 사람들, 엄마 얼굴이 횡경막까지 차오른다. 그러다 울고 애가 울면 나도 따라서 울고 미친년 널 뛰듯이 그러다 보면 아침이 된다.  

두 달여를 그러다 애도 나도 죽을 거 같아서 남편에게 아무래도 산후우울증 같으니 토요일 반나절 휴가와 집안일을 요청했다. 남편은 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야기 후 젖병 씻어놓기, 밥해두기, 주말 반나절 독박육아를 시전했다. 무서워서 기저귀도 못 갈았는데 하드 트레이닝 후 완벽해졌다.


독박육아에 괴로운 이들, 시댁의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들, 너무 울어제끼는 애 때문에 기진맥진했을 때 조리원 동기들의 채팅방은 불이 났다. 울고 웃으면서 종교나 직업을 초월한 유대감이 생겨버렸다. 손목 시리다 하면 어디 한의원이 좋고 살이 쪄서 고민이라면 어떤 항산화제에 식욕억제제가 있다더라는 정보를 줄줄줄 올린다. 아토피가 심해진 아이를 위한 병원 정보, 기저귀 핫딜, 장난감 물물교환 등이 이뤄지기도 한다.  <아침마당>보다 더 핫한 정보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론 
부부상담소 및 남편 욕을 들어주는 공공 해우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린이집 친구 엄마도 여러 정보 및 기댈 수 있는 좋은 정보군이다. 담임과 어린이집의 동태, 다른 어린이집 친구들의 동태와 우리 아이의 관계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든든한 메이트인 셈이다. 동네 터줏대감이라면 맛집 정보까지 꿰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어린이집 친구 엄마와는 적정한 거리 유지가 필수다. 


조리원부터 어린이집 친구들 모임까지 어찌 보면 애가 아니라 내가 살려고 쳐둔 보험 같은 관계이다. 이런 관계들이 모여 힘이 되고 자극도 받는 게 아닐까.  

이제 슬슬 둘째를 낳는 조리원 동기들이 생겼다. 또 그 전쟁터에 뛰어든 조리원 동기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마흔다섯에 둘째는 꿈도 못 꾼다) 안쓰럽다(요 근래에는 코로나 때문에 지금 출산하는 산모들은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강제로 없어졌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둘째를 낳는 조리원 동기들에게 '우찌 그 힘든 걸 잊어버리고 또 시작하네'라고 했는데 둘찌들은 왜 더 이쁜 건지. 우리가 아픔을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아이의 웃음 앞에서는 다 무용하다. 그래, 저 이쁜 걸 내가 낳았지, 그러니 좀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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