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너의 해방일지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어디에 갇힌 건진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 거지'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나의 해방일지> 중에서-
나는 아직 어디에도 해방되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출근하고 또 돌아온다. 때론 가족이라는 이름이 서로에게 짐짝이 되기도 하고 쉴 그늘이 되어주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사랑도 일도 그리고 나에게도 해방이 필요한 것임을 생각해본다.
<나의 해방일지>가 끝난 후 '영혼이 먼저 안다'라는 이민기의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나에게는 여행이 그랬다. 떠날 때를 영혼이 먼저 알았다. 탈탈 탈수기에 털리듯 내 바닥까지 내려가 바닥을 칠 때,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러면 땡처리 티켓들을 찾아본다. 그러다 아무 준비 없이 떠나고 또 돌아왔다. 크로아티아로, 쿤밍으로, 캄보디아로.
또 그렇게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다.
한국어가 듣기도 싫었다. 내가 하는 말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누군가 하는 이야기도 알아듣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크로아티아였다.
2010년 크로아티아는 한국에 그리 알려진 곳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기였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이라 물속에서처럼 무념무상이 가능한 곳, 내가 찾던 바로 그곳이었다.
의욕은 사라지고 사랑은 또 떠나고 돈도 떨어지고 있던 시기라 마음이 더 급해졌다. 퇴직금을 깠다. 가진 게 없으니 선택도 포기도 쉬웠다.
무엇이든 바닥이었던지라 전세계 항공권 호텔 유스호스텔을 정성스레 비교분석하고 찾아낼 자신이 없어 호텔과 항공편을 정해주는 여행상품을 크로아티아 전문여행사에서 예약을 했다. 아무튼 급히 보름 후에 떠나는 여행상품으로 겟!
스플리트의 해 지는 광장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저들 사이에 무명으로 거리를 헤맸다.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늘 도망만 치는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등을 돌렸지만 나까지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했다.
광장을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길을 무작정 걸었다. 횡단보도가 보이길래 무심코 건넜다가 묘지를 만났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의 마지막 자리에서 울었다. 친구가 세상을 먼저 버리고, 번아웃이 왔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크로아티아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묘지였다. 이름 모를 젊은 청년의 무덤 앞에서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었다. 영혼이 안다는 드라마 대사를 보자마자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10년이 지난 지금, 묘지를 헤매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뭐든 다 끝이 있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