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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25. 2022

엄마라는 이름의 노동

그놈의 밥이 뭔지.

일찍 출근하는 남편 덕분에 나도 이른 하루를 시작한다. 거하게 한상을 차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간단하게 사과 한 알 정도를 깎아둔다. 미숫가루나 콘푸레이크, 스프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과일을 주거나 안 챙기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다 양심의 가책이 쓸데없이 느껴져 요즘에는 간에 좋다는 시금치에다 바나나를 갈아서 준비해둔다.

남편은 자취를 오래해 아침을 먹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서 괜찮다며 회사에서 간단히 커피를 마신단다. 그럼에도 왜 한국의 시어머니들은 안부 전화할 때마다 요즘 무얼 먹는지 궁금해하신다. 과일을 먹고 출근한다고 하면 새벽에 가는데 과일을 먹어서 되겠냐고 시비를 건다. 왜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강요당하는 거 같지?

   

나 역시 남편이 출근을 하면 아이 때문에 줄어든 나의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새벽 노동을 한다. 말이 프리랜서이지 집안일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통에 늘 노동시간이 부족하다. 이를 채우기 위해 나의 잠과 개인시간을 줄여가며 일을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엄마 역시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여느 대한민국 아버지들처럼 아버지는 누워서 꼼짝 않고 일일이 다 엄마의 시중을 받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누워서 '물 떠와'가 통하던 시대를 엄마는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밥솥에 밥을 하셨을 정도니 말이다. 엄마는 그 시간을 어찌 견디며 살았을까 싶다.

 

건조기에 에어프라이어에 가전제품의 눈부신 발달 덕에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그놈의 밥이 문제다. 왜 돌아서면 늘 밥때이고 밥은 왜 반찬에 국까지 세트인가. 밥하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넘는다. 늦은 출산으로 손발 무릎 허리 안 아픈데 없는 중년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오죽할까. 게다가 엄마들은 계절마다 나물에 오이지, 간장, 고추장, 된장에 매실청까지 담는다.    

여자의 노동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심지어 결혼한 딸의 집에까지 가서 애들을 봐주고 밥을 차리고 집에 와서는 또 남편의 밥을 차린다. 그냥 알약이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대를 건너 나까지 이어진다. 바람은 바람이고 여지없이 꼼짝없이 밥해대고 있으니 그놈의 밥이 뭔지.

밥은 사먹는 게 최고다. 걸쭉하고 사진빨 받는 스파게티는 외식에서만 가능

<나의 해방일지>의 엄마가 비로소 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런데 '죽어서'다. 평생 밥만 하다 죽기 전에 밥을 앉혀놓고 죽은 엄마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씽크대 앞에서가 아닌 게 어디야. 엄마가 사라지고 나서야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밥을 하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낀다. 엄마에게도 해방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밥 좀 안 하고 살고 싶다. 어디서 밥 대신 먹는 약이 나오면 공구 예약 알림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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