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시작은 한 TV 프로그램이었다. 도심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돌 테러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누군가 자신의 집을 향해 누군가 돌을 던진다. 작은 자갈부터 성인 남성 주먹만 한 돌덩이까지 자칫 잘못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이웃끼리 합심하여 옥상에서 잠복까지 하였지만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는 테러범 때문에 허탕치기 일쑤다. 급기야 피해 주민들끼리 서로를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평화로운 빌라에 갑자기 등장한 돌 테러범 그는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한밤중 돌벼락이 떨어지는 혼돈의 현장을 잠입 취재한 결과 범인은 그 빌라에서 애 셋을 독박육아하는 엄마였다. 독박육아라는 말만 들어도 한숨이 나온다.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녀는 매일 새벽이면 옥상에 올라가 돌을 던졌다.
누군가는 행복한 하루를,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집의 창문, 벽에 돌은 큰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범인을 찾으려는 빌라 사람들과 시치미를 떼는 그녀는 우연히 현장에서 맞닥뜨린다. 결국 그녀의 일탈은 발각되고 만다.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풀고 있었다. 그 화가 바뀔 수 있을까. 남편의 따스한 말 한마디만 있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옥상에 올라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 셋을 혼자 돌보던 그녀는 남편에게도 학대당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기댈 곳은 돌이 주는 희열감밖에 없었을 것이다.
육아는 언뜻 매일 반복되는 듯하지만 매일매일은 결코 똑같지 않다. 아이는 매일매일 다르다. 하루는 장화를 하루는 털신발을 신는다고 떼쓴다. 한겨울에 핑크퐁 샌들을 신거나 숲체험을 가는데 레이스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는다고 떼쓴다. 하루는 씻길 때, 하루는 옷 입힐 때, 하루는 놀이터에서 떼쓰느라 눕는다. 육아는 노답이다. 애들마다 다르고 때마다 다르다.
그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의 가장 큰 위안은 맥주 한캔이나 드라마다. 안식처가 남편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전쟁터를 함께 헤쳐나가는 동지로서 일을 나누고 육아를 함께해야 한다. 서로 수고했다는 따스한 그 말한마디에 하루치의 화와 수고가 사라지는데, 서로 날을 세우다 사달이 난다.
나 역시 소파 위에 누워 있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정적이고, 알뜰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소파 위에서 게임하고 있는 걸 볼 때면 피가 뜨거워진다. 이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빠가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꿈이 되어버렸다.
밤마다 돌을 던지던 TV 속 그 엄마는 지금은 행복해졌을까. 다들 무탈하게 이 터널을 잘 빠져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오늘도 육아에, 화를 다스리느라 수고한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