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친구가 다 좋을 순 없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다방면에 걸쳐 형성됩니다.
은채도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노는 것 등의 취향이 나름 견고하게 구축 되어 있고 구축 되어가고 있죠. 그 중 하나의 취향이 사람의 취향입니다. 어른들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있고, 그에 따라 사람을 가리기도 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우린 나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가려 사귀곤 하죠. 물론 그것이 사람을 차별하는 도구로 쓰여선 안 되겠죠. 그러나 그 취향이 있다는 걸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부부가 십년 넘게 살아도 결국엔 해결 못하는 취향이 남아 있으니까요.
은채랑 친한 친구들의 공통점은 발랄하면서도 차분하고, 위아래 형제가 있어서 나름 양보를 할 줄 안다는 겁니다. 박지유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여동생이 있고, 전지유도 오빠가 있습니다. 하영이도 6학년 오빠가 있죠. 어린이 집에서 친했던 서희나 예지, 승유도 동생이나 오빠, 누나가 있었습니다. 승유 같은 경우는 누나가 두 명이나 있었죠.
이런 친구들의 공통점은 어울려 노는 것에 능숙하다는 것입니다. 또 적당히 양보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자기 것을 자연스럽게 챙길 줄도 알죠. 정치적 능력과 사회성이 좀 일찍 발달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어린이집에 은채를 데리러 가면 승유나 형이 있는 재하 같은 경우엔 저한테 와서 인사도 잘 했었죠.
남자 어린이의 경우엔 누나나 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큰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제가 육아 전문가는 아니어서 뭐라 단정 지어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오히려 더 리더십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누나가 있는 친구들은 여자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습니다. 누나들과 어울리는 것이 여자 친구들을 대할 때의 어색함을 없애주는 것 같았습니다.
은채도 자기 나름의 친구에 대한 호불호가 있습니다. 일단 편식을 하는 친구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첫 번째 짝이 제법 편식을 했던 친구-코딱지를 먹는다는-였는데 은채는 그것 때문에 너무 애 같다고 짝을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딱히 장난을 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두 번째 짝은 키 큰, 그래서-은채 표현대로라면-초등학교 3학년처럼 보이는 유찬이었는데 이 친구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엊그제 새로 짝이 바뀌었는데 영찬입니다. 영찬이는 저도 길에서 한번 봤는데 아담하고 귀여운 소년입니다. 옷도 깔끔하게 입고요. 또 은채하고는 주민 센터 프로그램도 같이 해서 안면이 있는 친구고 그걸 하면서 은채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나름 관계 형성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4월 첫째 주 목요일-아침에 엄마랑 걸어가면서 영찬이가 싫다고 했답니다. 은채네 반은 원래 남자 애가 두 명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남자끼리의 짝이 있었죠. 그런데 그중 한명인, 은채와 어린이집부터 알고 지냈던 은율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남자 애 한명이 외롭게 남게 됐죠. 선생님은 이때부터 고민을 하시기 시작했고 짝을 수시로 바꿔서 남자 아이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세 명이 짝이라는 개념이었죠. 그래서 한명이 뒤에 남아 앉게 되더라도 그 앞에 두 명과 짝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죠. 얼마 전 짝을 바꾸는 날에도 남자 애 두 명이 남게 됐고 그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통해 원하는 짝 옆에 앉기로 했죠. 마침 영찬이가 이겼고 영찬이가 은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찬이와 며칠 앉아 본 은채는 영찬이가 맘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유인즉슨 영찬이가 여전히, 좀 느리다는 것이었죠. 사실 주민 센터에서 하는 <미술과 놀자> 프로그램에서 은채가 영찬이를 도와주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때는 넘어 가던 영찬이의 느림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니까 맘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은채에게 엄마는 맘에 안 드는 짝꿍을 만날 때마다 그 짝꿍의 장점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어른도 실천 못하는 걸 딸에게 말한 것이죠.
아이들은 한 달 정도 같이 생활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서로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누가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예쁘고 선생님 칭찬을 많이 받는지, 누가 편식을 하고 아직 유치한-자기들 기준으로-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지, 누가 같이 놀 때 떼를 쓰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이런 파악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벌써부터 자기와 맞는 아이, 자기와 어울리는 아이하고만 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취향이 비슷하고 성격이 비슷한 친구와 잘 통하고 어울려 노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은채가 자기와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타인에 대해 벌써부터 편견과 차별이라는 담을 쌓고 지낼까봐 걱정입니다.
전 십 대부터 어머니와 둘이 살았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편모 가정에 대한 편견이 심했습니다. 특히 이혼 가정엔 더 그랬죠.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이사해서 살기 시작한 평택의 작은 동네의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들의 십대 자녀들이 저와 친해지는 걸 경계하고 심지어 말리기까지 했죠. 또 연애를 할 때도 번번이 편모 가정인 것이 걸림돌이 되어서 헤어지곤 했었습니다.
제가 이런 편견이나 차별을 겪어서인지 은채가 작은 차이로 친구들의 호불호를 갖게 되는 것이 걱정 됩니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가치관과 편견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요. 어린이집에서도 그랬고, 지금의 학교에서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말이 좀 더딘 친구도 있죠. 은채가 그런 아이들을 행여나 무시하거나 폄하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군 부대 지역에서 살아서 일찍부터 다문화 가정을 봐 왔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지 봐 왔죠. 아이들은 뜻도 모르면서 혼혈 아이들을 튀기라고 불렀고, 혼혈 아이들은 한국인 부모를 둔 아이들의 무리와 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국 아이들이 껴 주지도 않았고요.
요즘 은채를 보면서 어른의 편견과 그 완고함의 출발점이 생각보다 어린 시절부터 출발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잘 교육하면 다양한 문화, 인종, 언어에 대해 편견과 차별 의식이 없는 진정한 글로벌한 시민으로 성장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