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행복하면 됐어.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0

by 최영훈

개인의 취향

앞서도 얘기했듯이 딸이 다닌 어린이집은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몇 년 다녔고 거리도 가깝다 보니 딸이 다 읽은 책이나 안 갖고 노는 장난감을 기증하곤 한다. 아내가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하신지 물어보고 원장님이 오케이 하면 배달은 내가 한다. 뭐, 그런 구조다.


딸이 입던 옷은 청주에 사는 사촌 동생들한테 보내곤 한다. 여러 사정상 아빠와 고모는 얼굴을 못 본 지 이십 년 가까이 됐지만 자기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보내고 있다. 다른 영화 칼럼에도 썼듯이 동생도 좋아하고 고마워해서 다행이다.


딸의 영유아 시절 물건을 감사히 가져가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아내의 직장 부하 직원들. 두 명의 여직원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들을 낳았는데 요즘 막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그 아이들에게 자잘한 물건들이 몇 개 갔는데 올해는 또봇이 갔다.


소중한 또봇들

4월 말, 병원에서 하는 어린이날 행사에 기증품을 내놓기 위해 딸 방을 둘러보던 아내가 딸에게 물었다.

“딸, 이 또봇 이제 애들 줄까?”

딸의 망설임이 눈에 보였다. 그 또봇들이 보통 또봇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세 살 때 처음 간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에 아이들이 받을 선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아내가 딸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딸이 냉큼 또봇의 쏘울을 갖고 싶다고 했다. 또봇 만화에 흠뻑 빠져 있는 건 알았지만 설마 그 로봇을 갖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또봇 만화 앞뒤로 나오는 변신 로봇 광고를 유심히 볼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내와 난 약간 당황했지만 이 또한 개인의 취향이니 사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 변신 로봇을 포장해서 보냈더니 원장님이 아내에게 전화했다. 정말 이걸로 괜찮겠냐고.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그 후, 조카가 소방차로 변신하는 또봇도 갖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삼촌이 바로 빨간 또봇을 사줬다.


나도 이걸 갖고 노는 재미가 있었다. 내 또래 아빠들이라면 왕년에 아카데미 완구에서 나온 프라모델 한 두 개쯤은 조립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주먹이 발사되는 맥칸더 브이를 갖고 놀았던 기억도 있을 테고. 끼웠다 뺐다 할 것도 없이 요리조리 잘만 돌리고 맞추기만 하면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로봇에서 자동차로 변하는 신기한 로봇을 안 그런 척하면서 재미있게 갖고 놀았다. 그 변신 과정이 만화에서의 변신 과정과 거의 같아서 딸은 더 실감 나게 갖고 놀았다. 로봇과 함께 딸려온 자잘한 소품과 블록 장난감 등을 종합해서 그때그때 상황극을 만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가운데, 비교적 신형 로봇은 2학년때 <보니하니 쇼>에서 실시간 댓글 참여 시청자 당첨으로 받은 선물이다. 도착한 선물을 본 딸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다.


여하간 딸은 이 애들한테 최근까지도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런 애들을 이번엔 흔쾌히 보내기로 한 것이다. 병원 행사에 기증하기 전 사무실에서 로봇 얘기를 꺼냈더니 두 명의 부하직원이 눈치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 다 사내 녀석들이니 말이다. 잘 합의를 봐서 나눠가진 걸로 알고 있다. 역시 애들보다 아빠들이 더 좋아한다고.


소확행이 별건가

딸은 그렇게 컸다. <또봇> 이전엔 <뽀로로>와 <타요>를 열심히 봤고, 그 이후엔 <겨울왕국> 광풍에도 휘말렸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프리파라>와 <시크릿 쥬쥬> 같은 아이돌 판타지 만화와 그 소품 장난감, 게임에 흠뻑 빠져 있었고 말이다. 그때의 장난감들은 이젠 건너 건너 동생들 주고 졸업한 어린이집에 보냈다.


젠더 중립성이니 뭐니 하는 고상한 이유 때문에 아무 장난감이나 사준 건 아니다. 그냥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사주고 놀아줬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방송 댄스, 음악줄넘기, 바이올린을 방과 후 교실에서 배우고, 엄마와는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한 적도 있다. 아빠와는 농구와 축구도 하고 최근엔 롱 보드도 탄다. 뭐가 됐든 자기가 좋아하고 하면서 행복하면 됐다고 여겼다. 하면서 행복하고 그 행복을 더 오래 누리고 싶어서 그걸 더 잘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게끔 하는 그 무엇이 재미있는 것이고, 그걸 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 아닐까?


딸이 앞으로 무슨 취미를 더 할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하고 싶었던 철인 3종을 할지도 모르고, 요즘 종종 보는 폴 댄스를 해보고 싶다고 할지도. 무슨 직업을 가질지도 솔직히 예측할 수 없다. 자기 말로는 환경운동가를 하겠다는데 요즘 흠뻑 빠져 있는 건 댄스 프로그램이고 얼마 전 F1 경기를 본 후로는 메카닉과 크루들이 멋지다고 하니... 뭐, 폴 댄스가 취미인 자동차 엔지니어도 멋지겠다는 생각이다. 뭐, 이것 또한 내 생각이다. 그저 이래저래 균형 잡힌 인간으로, 자신이 뭘 해야 행복한지 제대로 아는 어른으로 커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